난망(难忘)의 첫돌잔치

큰딸의 셋째인 조이가 첫돌을 맞았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친가와 외가 직계 가족만 모여서 조촐하게 첫돌 축하를 해 주었다. 장소는 대구에 있는 대백플라자안 11층에 있는 ‘삼대애(爱)라고 하는 일식초밥부페집이다.

따로 돌잔치를 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에 돌잔치상을 차려 주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셋팅해 준 곳에서 조이의 돌잔치를 했다. 예약이 차 있어서 점심으로는 늦은 1:30분에 시작하게 되어서 먼저 식사를 했다.

초밥 전문점 답게 초밥은 아주 맛있었다. 야채와 튀김요리 메밀소바, 과일, 케익, 팥빙수등등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서 돌을 축하 하는 예배를 간단하게 드렸다. 내가 시작하는 기도를, 남편 김목사님이 설교를, 조이 할머니인 곽선교사님이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예배를 마치고 돌잔치 사회를 맡은 직원이 와서 몇가지를 진행해 주었다. 직원은 아이를 어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돌을 맞은 조이가 직원이 소리나는 장난감으로 어르자 그것을 바라 보는동안 잽싸게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다음은 ‘돌잡이’를 했다. 역시 ‘삼대애’ 직원이 여러 물건들을 준비해 둔 쟁반을 들고 첫돌 맞은 조이가 어느 물건을 집도록 하는 것이다. 조이는 첫번째 야구공을 집었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운동을 좋아하고 건강하게 살 조이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말이다.

두번째로 조이가 잡은 것은 엽전 묶음이다. 붓도 있고 마이크도 있고 여러가지 물건들 가운데 재물을 뜻하는 엽전을 조이가 집어 들었다. 가족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정회장님~” 까르르~ 하하~ 호호~ 웃음꽃이 피었다.

평소에 딸이 조이를 부르는 별명이 ‘정회장님’인것을 알고 있던 나는 조이가 재물 혹은 부자가 되는 엽전을 집어 드는 것이 예사롭지않게 보였다. 재미로 하는 ‘돌잡이’ 이긴 하지만 가족들은 이렇게 아이의 미래에 장미빛 소망을 걸어 보는 것이다.

돌잔치를 하게된 유래를 보면 “과거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돌을 못 넘기고 죽는 아기가 많았다. 첫 생일을 무사히 넘긴 것을 기념하고 아기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잔치를 여는 것이 돌잔치의 기원이다. 돌잔치의 ‘돌’은 열두 달을 한 바퀴 돌았다는 뜻이다”(위키백과)

나의 큰딸이 어느듯 자라서 결혼하여 삼남매의 어머니가 될줄은 내가 딸을 키우고 있을때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딸이 낳은 아들 조이의 돌잔치를 하면서 나는 조이의 엄마인 내 딸의 돌잔치를 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가게가 달린 살림방인 단칸방에서 첫돌을 맞은 아이의 돌잔치를 준비했다. 첫돌을 맞는 딸을 위해 목사님을 초청해 예배 드리고 축복기도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전날은 수요일이어서 수요예배를 다녀왔다.

같은 속회(감리교)의 요리 잘하는 친한집사님이 우리집에 와서 돌잔치 준비를 거들어 주었다. 친정엄마는 당시에 멀리 계셔서 오시지 못했다. 밤12시까지 돌잔치 음식을 도와주고 집사님은 자기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밤을 꼬박 새워 음식을 준비했다. 지금 그때 뭘 준비했는지 낱낱이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한식의 기본을 다 준비했을것이다. 딸을 축복해 주러 오는 교회식구들이 풍성하게 먹도록 말이다.

불고기를 재우고 잡채를 만들고 미역국을 끓이고 생선요리를 하고 여러 밥반찬 나물들을 무치고 샐러드를 만들고 전을 부쳤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 푸짐한 돌상이 되게 하려고 잠 한잠 못잤었다.

드디어 오전 10시가 좀 넘어서 목사님과 교우들이 돌잔치 기념예배를 드려주기 위해 찾아왔다. 두개의 커다란 교자상에 음식을 잔뜩 차려 놓고 목사님은 먼저 예배를 인도해 주셨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아기 엄마인 내가 목사님의 축복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나는 밤을 꼬박 새운데다가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있으니 정신없이 잠이 쏟아져 왔다. 아마 나는 정신이 거의 혼미했을 것이다.

예배가 끝나고 나서 나는 변명아닌 변명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밤을 새워 음식을 만들어서 졸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를 목사님은 들으시더니 수저를 도로 놓으시고는 식사를 못하시는 것이 아닌가?

지금도 나는 당시 목사님의 말씀을 잊지 못한다. 당시 내가 나가던 사도감리교회 고박로홍 목사님은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청하게 차린 음식에 손도 안대시고는 “이 음식은 나집사님(나를지칭함)의 피로 만든 음식이니 내가 어찌 먹을 수 있겠어요.” (사무엘하 23:16-17)하시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딸의 첫돌을 기념하고 영적 지도자인 목사님의 축복기도를 받기 위해 밤을 새워 음식을 준비한 20대의 젊은 엄마인 나의 믿음과, 성도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차마 들지 못하시고 목이메어 하며 내 딸을 축복해주신 목사님…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내딸이 복을 받고 살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흔히 자녀들은 자신의 존재를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다고 착각한다. 부모와 상관없이 내가 잘나서 오늘의 내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첫돌을 맞은 조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돌상을 받았지만 거기에는 아빠 엄마의 수고가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를 축복해 주고 싶은 간절한 믿음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잔치를 열어 축복해줄 가족들을 초대한 것이다.

조이가 20년 후, 30년 후 어른이 되어서 복을 받으며 살게될때 조이는 자신의 아기 시절에 자신을 위해 베풀었던 믿음의 첫돌잔치를 기억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조이도 자신이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아빠 엄마가 했던것처럼 아이의 돌잔치를 해주면서 자신의 아이를 축복할 것이다.

지금도 로아 로이 조이 삼남매의 엄마인 나의 큰딸이 첫돌을 맞았을때 입히라고 나의 솜씨 좋은 친정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입힌 앙징맞은 한복을 딸은 보관하고 있다. 빨간치마에 색동저고리인데 얼마나 앙징 맞은지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고인이 되신 나의 친정 어머니가 한땀 한땀 정성을 들여서 첫돌맞이 외손녀를 위해 만들어 주신 빨강치마 색동저고리를 딸의 큰딸인 로아의 첫돌에 입혔었던 기억이 있다.

2대째 입히는 첫돌 색동옷, 이것이야말로 대를 잇는 사랑의 손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가르친다. 자녀의 오늘은 부모의 사랑과 정성 그리고 다함 없는 수고속에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가졌던 외손자 조이의 첫돌 잔치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이가 특히 ‘돌잡이’에서 야구공과 엽전을 집어 들었던것도 우리가족들 사이에서 두고 두고 회자될 것이다.

조이의 돌잔치의 추억과 함께 수십년전 조이의 엄마인 나의 큰딸의 돌잔치를 치르며 감명을 받았던 고박로홍목사님의 믿음의 언행도 나에겐 잊지못할 추억이 되었다. 그야말로 난망(难忘)의 돌잔치이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삼하 23:16-17)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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