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비오는날의 후회

며칠전 일이다. 그날은 가을비가 추적이며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날 밤이었다. 나는 밤 10시가 되었을까 평소보다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데 문득 두어시간전에 체육공원에서 보았던 노숙인이 생각났다.

그리고 갑자기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음습한 날씨에 그 노숙인은 공원 화장실 들어가는 복도에 누워 있었다. 나는 우산을 쓰고 걷는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화장실을 사용 하려고 갔다가 처음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이 아파트에 수년간 살았지만 이 체육공원에 노숙인이 머물거나 한 것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 발걸음이 멈칫 거려졌지만 누워 있는 그를 지나쳐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누워있는 노숙인을 바라 보았다.

신발을 벗어 놓고 이불을 얼굴까지 푹 쓰고 있었지만 머리가 보였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하얀걸로 보아 50대 이상의 나이라는것 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그는 차렵이불 같은 얇은 이불을 반자락은 깔고 반자락은 덮은 형태로 누워 있었다.

아마도 비가 오니까 비를 피할 수 있는 화장실 복도에 자리를 깔은 모양이다. 하지만 공용 화장실에 노숙인이 있다는 것을 알면 주민들은 매우 불편해 할 것이다. 남성들 보다도 여성들은 특히나 불안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노숙인이 안쓰러웠다.

다행히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운동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여성장애인 화장실을 열어 보았다. 장애인 화장실은 문이 달려 있으니 아늑한 기운이 느껴졌다. 크기도 작은방 크기만큼 넓었다. 아마 남성장애인 화장실도 똑같을 것이다.

나는 그 노숙인이 장애인화장실에 들어가서 하룻밤 지내는것이 본인에게도 화장실을 이용하는 주민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누워 있는 그에게 그러한 나의 의사전달은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냥 짠~한 마음을 지닌채…

그런데 두어시간이 지나서 자려고 누웠는데 그 노숙인이 마음에 걸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자려고 누워있는 남편을 불렀다. 그리고 그 노숙인 이야기를 꺼냈다. 노숙인이 덮은 이불이 얇던데 비오는밤에 추울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집에 있는 오리털 이불을 꺼내 줄테니 좀 덮어 주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아예 그가 그 오리털 이불을 가지고 가게 하라고 했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를 벼개처럼 벨 수 있는 작은 쿠션도 하나 챙겨 주었다. 그리고 보온텀블러에 물을 덥혀서 따끈한 물도 한병 담았다. 추위를 얼마간 녹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자려고 누웠던 남편에게는 귀찮은 일을 시켜 미안했다.

하지만 그 노숙인이 남성이기에 남편을 보낸 것이다. 아마 그 노숙인이 여성이었다면 나는 데리고 집으로 왔을 것이다. 아무튼 남편은 내가 챙겨준 오리털 이불과 쿠션과 따뜻한물이 든 보온텀블러를 들고 가볍게 들고 다니는 가방까지 그 노숙인에게 준다면서 챙겨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남편이 나가고 나서 나는 미역국을 끓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새벽에 따끈한 쇠고기미역국을 한그릇 담아서 햇반밥하고 그 노숙인에게 가져다 주어서 먹게 하려는 생각에서 미리 미역국을 끓여 놓으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한참 미역국을 끓이고 있는데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나에게 체육공원 화장실 복도에 노숙인이 없다는 것이다. 화장실도 다 들어가 보고 장애인 화장실도 열어 보고 심지어 체육공원을 한바퀴 돌면서 그 노숙인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그냥 돌아왔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온 것이다. 이 늦은 시각에 그는 어디로 간 것 일까? 비는 그쳤다고 하니 그는 다른곳에 잠자리를 찾아서 떠난 것 일까? 어쩌면 공원 관리인의 눈에 띠어 그를 쫓아 보냈을 수도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내 부탁을 들어 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긍휼함이 많은 남편도 그 노숙인을 걱정했다. 잠시후 남편은 잠들었지만 나는 웬일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노숙인에게 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후회가 되었다. 걷는 운동을 하다가 화장실에 갔을때 그를 발견했을때 바로 데리고 집으로 오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노숙인을 도우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남편도 나에게 “바로 집으로 데리고 왔었어야지” 한다.

오래전 C국 선교지에서의 일도 떠올랐다. 추운겨울밤에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누워있던 걸인할머니를 깨워서 집으로 데리고 와서 아들 침대에 재우고 아침을 먹여서 새양말 한켤레와 딸의 오리털점퍼를 입혀 보냈던적이 있었다.

걸인 할머니는 고마워하며 구걸하여 모은 동전잎들을 한움큼 나에게 주었지만 나는 도로 넣어 드리고 오히려 지페까지 몇장 쥐어 주어 보냈었다. 따뜻한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난 할머니의 미소와 홍조띤 얼굴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때처럼 이번에 만난 노숙인 아저씨도 데리고 집으로 왔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자꾸 밀려왔다. 그 노숙인이 예수님 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집으로 영접하는 긍휼을 베풀지 않자 그 노숙인은 그 자리를 떠난것은 아닐까

나중에서야 그를 돕기 위해 남편을 보냈지만 그는 감쪽같이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밤 12시가 넘어가는데도 나는 잠들지 못하고 그 노숙인을 영접하여 집으로 데리고 오지 못한 후회로 가슴을 치고 있었다.

선한 일을 할 기회는 언제나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가 왔을때 선을 베풀지 않으면 기회는 지나가 버린다. 왠지 그 기회를 놓친것 만 같아 나는 자꾸만 후회가 되었다. 누웠지만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나는 그 노숙인을 집으로 영접하여 데려오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차선책으로 남편에게 오리털 이불과 쿠션과 따뜻한물을 보온병에 담아 보냈다.

또 그 노숙인에게 이튿날 아침밥을 먹일 생각을 하며 한밤중에 일어나 쇠고기 미역국을 끓였다. 따뜻한 아침밥을 먹으며 행복해 하는 그 노숙인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없었고 나는 좀더 발빠르게 그를 돕지 못했던것을 후회했다.
내 가슴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어디선가 따뜻한 곳에서 그가 안식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겨우 잠을 청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 3:27)”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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