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令監) 의 영감(靈感)

지난 주에 대구를 다녀 올 때의 일이다. 현대사회는 모든 일들이 예약과 예정대로 움직이는 시대이지만 종종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특히 예정된 시간에 비행기가 못 뜬다거나 기차가 도착해야 할 시간에 못 온다던가 하는 일 말이다.

나는 딸네 집에서 손주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아들네 집에도 잠시 들려 오기로 했다. 며느리가 저녁을 준비해 놓겠다면서 “어머니! 제가 부족한 솜씨지만 준비해보겠습니다”하고 카톡이 날라왔다.

아직 젊은 며느리가 음식을 곧잘 만든다는 소식은 아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나에게 무얼 만들어 줄까? 직장 다녀와서 하려면 힘들텐데 밖에서 먹자고 할걸 그랬나? 하면서도 아들이 자동차로 데리러 와서 아들네 집으로 갔다.

아들 며느리의 신혼집은 전에 와 보았을때 보다도 더 아늑하고 예쁘게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며느리가 고기를 굽고 있었다. 한식인가 보다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아들이 음식을 날랐다.

양송이 수프가 나오고 곧이어 감자를 으깨서 가운데 놓고 양상치등으로 만든 샐러드가 나왔다. 아깐 고기를 굽고 있던데 양식이 나왔네 생각하면서 먼저 수프와 샐러드를 먹었다.

그런데 이번엔 새우와 버섯등을 올리브유를 넣고 뚝배기에 끓이고 뚝배기 가장 자리에 바게트빵을 빙 둘러 놓은 음식이 나왔다. 이게 무어냐고 물으니 ‘감바스’ 라고 부르는 음식이란다. 감바스는 스페인 요리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음식은 스파게티인데 스파게티위에 아까 며느리가 구었던 돼지고기 목살이 먹음직 스럽게 잘 구어진채 큼직 큼직 잘라져서 얹혀 있다. 한눈에도 영양가가 높은 음식들이었다. 그걸 보고 나는 금방 깨달았다. 아들이 결혼하고나서 그동안 살이 찐 이유를…

스페인 요리 위주로 저녁을 먹고 과일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많은 시간이 없어서 곧바로 서대구역으로 출발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갔다. 여유있게 서대구역에 도착했기에 나는 핸드폰에 내가 구입해둔 KTX표의 좌석번호를 보려고 핸드폰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분명히 카카오페이로 결제하고 표를 구입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약된 표가 없었다. 기차가 올 시간은 아직 10분쯤 남아 있었다. 내가 당황하자 아들이 얼른 제 핸드폰을 꺼내어 예매를 해주었다. 다행히 좌석이 있었다.

오후 9시 20분 기차인데 기차가 오지 않았다. 연착이 된다고 방송이 나오더니 22분이나 늦게 기차가 왔다. 그래도 서울역에서 김포공항까지 그리고 김포공항에서 풍무역까지 충분히 갈 시간이라는 계산이 나와서 나는 안심을 했다.

나는 KTX를 탔고 며느리가 플랫폼에서 두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곧 열차는 출발했다. 그런데 방송이 나왔다 열차구간 사정으로 저속운행을 하고 있다는… 결국 예정된 도착 시간 보다 거의 50분이상 늦게 서울역에 도착했다. 나는 열차에서 내렸다. 에스컬레이트를 타러 가려고 하는데 남편에게서 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 어디야? 막차 탈 시간이 7분 밖에 없어 빨리 나와요. 나 서울역에 나와 있어요.” 나는 놀랐다. 한번도 서울역까지 마중을 나오지 않던 남편이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도착지역인 풍무역까지 마중을 나가는 것이 늘상의 습관이었다.

남편이 대구에 가든지 내가 가든지 거의 대부분 풍무역까지 마중을 나간다. 풍무역에서 우리가 사는 아파트까지는 5분밖에 안 걸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출타했다가 돌아오는 가족을 기쁘게 맞아 주기 위해서 풍무지하철역까지 나가서 만나서 함께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은 풍무역이 아니고 김포공항역도 아니고 서울역까지 마중을 나온 것이다. 나야 물론 감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의 다급한 말에 나는 신속히 움직여야 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있었다.

저걸 타고 올라가려다가는 시간이 몇 분이고 훌쩍 지나갈 것만 같았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뛰었다. 저 뒤편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있는 장소를 잘 모르는지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얼른 엘리베이터를 탔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남편은 내게서 캐리어를 받아 서 끌면서 뛰었다.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뛰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들이었다.

남편이 나를 서울역으로 마중 나오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김포공항행 마지막 지하철을 놓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사가 넓고 노선이 많은 서울역에선 보통 10분은 여유를 두고 이동을 해야만 기차나 지하철을 바꾸어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김포공항 가는 공항철도를 타고 나서야 휴~하고 숨을 돌렸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김포공항에서 김포골드라인을 타야 하는데 이것도 마지막 지하철이었다. 우리는 김포공항에서 캐리어를 끌면서 또 뛰었다.

역시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지하철을 놓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물론 심야 버스도 있으니 어떻게 가긴 가겠지만 얼마나 번거롭고 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인가 말이다.

구래행 김포골드라인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나서 나는 휴~하고 두번째 큰숨을 내 쉬었다. 그런데 지하철에 앉아서 이제 안심을 하고 보니 그동안 일어난 일들이 참으로 드라마틱 하기만 했다.

예매 했다고 생각했던 기차표가 예매가 안되어 있어서 아들의 기지로 기차표를 예매한 일이며, KTX가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온것이며 열차구간에 문제가 생기고 기차가 저속으로 달려서 아슬아슬하게 막차 출발 몇 분전에야 도착한 일이며 모든 일이 참으로 드라마틱하기만 했다.

그런데 가장 드라마틱한 일은 남편이 서울역까지 마중을 나온 일이다. 물론 경로우대증이 있는 남편은 무료로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역까지 마중을 나온 적은 거의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풍무역에 내려서 걸어서 집으로 오면서 남편이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도 이번엔 자꾸 서울역까지 마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사실은 어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기도를 하고 났는데 서울역까지 당신 마중을 나가야겠구나 하는 감동이 왔어“

남편은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련히 아내가 잘 올텐데 뭐하러 서울역까지 가야 하지? 그러면 김포공항까지만 마중을 가면 어떨까? 아니야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은 서울역까지 가는 거야 감동을 주신대로 움직이자. 그래서 서울역까지 온 것이지”

나로서는 남편이 서울역까지 마중을 나와준것은 자칫 마지막 지하철을 놓쳐서 그야말로 김태연이 수궁가에서 노래한 것처럼 “난감허네~ 난감허네~” 할 뻔 한 일이었으니 고맙고도 고마웠다. 하지만 참으로 별일이다.

그러니 이 글의 제목은 영감(令監) 의 영감(靈感)이 딱 맞지 않겠는가. 나의 영감님인 남편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순종 하므로서 멀리 출타했던 아내의 귀가를 안전하게 도운 사건이니 말이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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