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C국의 절친 이웃

누구라도 이웃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일은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한때는 친하게 지냈지만 각자 바쁘게 살다보면 비교적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 만나도 서먹해 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선교지인 C국에서 절친 이웃을 만났다. 그 가족과의 만남은 그냥 평범한 이웃으로서의 만남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의 간절한 기도가 쌓인후 만난 가족이기 때문이다.

N시에서 J시로 선교지를 옮기게 되었을때 우리는 매일 선교지 옮기는 문제를 놓고 몇 달동안을 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 K선교사는 이사가서 만날 이웃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좋은 이웃을 만나게 해 달라고 말이다.

그래선지 우리가 이사간 집 맞은편에 사는 그 가족과는 그곳에 사는 내내 한집처럼 가까이 지냈다. 서로 흉허물이 없이 지냈다. 그 집 아들은 늘 복도를 쪼르르 뛰어와서 우리집에 오곤 했다.

물론 내가 늘상 현관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아침을 준비해서 먹이곤 했다. 그렇게 가까이 지내던 특별한 이웃이었다. 그런 그 가족이 이번에 내가 그곳에 간다고 하자 식사를 함께하자고 초청을 해 왔다.

사실 나는 이번에 C국에 들어가서는 가능하면 많은 사람을 안 만나고 조용히 쉬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지내선지 내 내면에서 쉼을 필요로 하는 빨간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C국에 도착하자 마자 내가 한일이란 시장을 들려 찬거리와 쌀을 사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일단 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밖에 나가지 않고 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왔을때는 주로 밖에서 매식을 했었다. 그만큼 식사를 함께 할 현지 사람들도 많이 많났었다. 그러나 이번엔 일부러 식사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꼭 만나야 하더라도 식사 시간을 피해서 만났다.

그리고 나는 가능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해 조용한 시간을 갖으려고 했다. 그리고는 국내에서 시간을 못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도 짐속에 챙겨 넣어 왔다.

좀 쉬면서 책을 읽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요한 몇몇 사람은 만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절친 현지인 이웃의 초청은 거절 하기가 어려웠다.

약속한 날이되자 나의 15년 절친 이웃은 자동차로 나를 영접하여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평소 잘 가던 딤섬식당이 아니었다. 한참을 자동차로 달려서야 특별한 광동음식점 으로 데리고 갔다.

이웃의 친구들도 와 있었고 우리는 중국식 둥근 테이블에 식탁을 빙빙 돌려가면서 계속 나오는 음식을 먹었다. 짧지 않은 세월을 이곳에서 살면서도 내가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들도 몇 가지가 나왔다.

한국인은 옷 입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중국인은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 있다. 우리 절친 이웃과 교제를 하면서 그 말이 딱 맞는다고 느끼곤 한다. 그들은 정말 외식을 즐긴다. 그리고 먹는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정말 다양한 식당들을 가 보았고 다양하면서도 특별한 음식들을 많이 먹어 보았다. 그런데 그런 식당들은 절대 나 스스로는 찾아 갈수도 없지만 가지도 않을 그런 곳들이었다.

그 외에도 그 도시에 정착 하면서 우리는 그 이웃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선지 우리가 이 지역으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좋은 이웃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만난 이웃이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들이 바로 이가족 이었다.

그리고 외지인이 많은 이 도시에서 이 집 부인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완전 토박이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이 도시에 대해선 훤했다. 같은 중국인 이라도 그 도시 사람이 아니면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히 우리 가정은 이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우리가 그 이웃을 처음 만났을때 그들 부부는 젊었다. 세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벌써 대학을 간다고 한다.

7월달인 다음달에 큰 도시로 나가서 입시 준비를 위한 영어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나는 그 아이에게 용돈을 좀 쥐어 주었다. 큰 도시에 나가서 영어학원 다닐때 맛있는거 사 먹으라면서 말이다.

아이는 얼른 힘차게 ”谢谢罗老师(나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감사 표시를 한다. 그런 이웃집 아이를 보면서 나중에 이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세웠을때를 상상해 보았다.

그 때 이 아이는 어릴때 부터 자신의 성장을 지켜보며 살아온 나에게 제 부모처럼 맛있는 광동음식을 대접할까? 그땐 내가 아주 파파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여행을 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 생각엔 이웃집 아이는 아마도 손대접을 잘 할 것이다. 제 부모를 보고 배운것이 손님 잘 대접하는 것일테니 말이다. 손님을 대접할때마다 우리 이웃집은 대부분 아이들도 데리고 함께 갔다.

지금은 고등학생 이지만 어렸을때 종종 제 부모대신 유아원에 가서 내가 대려오곤 했던 세살 꼬마가 대학을 갈 청년이 된 것이다.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세월이 한자락 바람이 지나간것 처럼 짧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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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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