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명절 끝날에는…

아이들이 와서 구정 명절을 함께 쇠고 각각 자신들의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서 우선 집부터 치웠다. 로아가 어질러 놓은 이곳 저곳을 치우고 청소기로 청소를 하고 대걸레질을 했다.

청소는 남편 K선교사의 담당이어서 남편이 했다. 나는 바구니 한가득 세탁기에 넣어 돌려둔 세탁물을 세탁기에서 꺼내어 널었다. 얼마 안있어 집안은 정돈되고 깨끗이 청소가 되어 쾌적한 분위기가 되었다.

안정되고 정돈된 거실을 바라보며나는 감귤차를 끓인다. 무농약 자연산 감귤껍질을 잘 말려 두었다가 유리 주전자에 감귤껍질 말린것과 물을 넉넉히 붓고 30분정도 끓인다. 그러면 색깔도 아주 예쁜 노오란 감귤차가 만들어진다.

나는 잘 끓여진 감귤차를 하얀 두 개의 머그잔에 따랐다. 비타민 함유량이 높다는 감귤차를 겨우내 끓여서 마셔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겨울을 나는것도 신기했다. 아무튼 나는 열심히 감귤차를 끓여서 마신다.

커피를 좋아하는 남편의 커피량을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감귤차를 열심히 끓였던것 같다. 오늘도 나는 명절 끝날에 자녀들이 돌아가고 난 후 마음을 정돈하고 남편과 따뜻하고 향기로운 감귤차 한잔으로 피로를 풀려는 것이다.

하얀 김이 피어나는 찻잔위로 지나간 며칠동안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특히 외손녀 로아와 지냈던 즐거운 시간들이 금새 그리워진다.
로아네는 4박 5일 일정으로 와 있어서 적지 않은 시간을 우리와 함께 보냈는데도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오늘 두번이나 계양역을 다녀 왔다. 대구 내려가는 아이들이 기차 시간이 각각 달라서 출발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로아네는 서울역에서 절친 지인을 만나서 점심을 함께 먹고 교제를 나눈후 대구로 내려 갈 계획이어서 오전에 출발을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좋다. 그러나 이별은 슬프다. 우리는 계양역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지하철역으로 들어섰다. 남편 K선교사가 자신 있게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플랫폼까지 들어갔다 올께. 난 경로 우대증이 있어서 공짜거든.”

그러더니 나를 보고는 ”당신도 지하철 티켓하나 끊어서 들어갔다 나오든지…” 한다. 나를 두고 자기 혼자만 로아를 배웅하고 오기가 미안하니까 하는 말인거다. 나는 남편의 말에 아무 대답없이 지하철 역원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방금 남편이 나에게 자기는 경로 우대증이 있어서 무료로 개찰구로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것 보다 더 당당하고 자신있게 역무원에게 말했다.

“이 문좀 열어 주세요. 우리 손녀딸이 설쇠고 내려 가는데 배웅좀 하고 올께요.” 역무원은 내가 너무 당당하게 말해선지 순간 당황하더니 곧 상황을 알겠다는 듯이 “아… 네… 저… 그런데 시간은 몇분이나 걸리십니까?” 나는 두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곧장 대답해 주었다.

“몇분은요. 지하철 들어오는 시간이면 되지요. 지하철 들어오면 아이들 차 타는것 보고 곧장 나올겁니다.” 역무원은 더이상 할말이 없다는듯이 철커덕 하고 쇠문을 열어 주었다.

문이 열리자 마자 나는 앞서 들어간 남편을 곧 뒤쫓아 지하철 에스컬레이트를 탔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더니 대단하다는듯한 표정으로 씩~ 웃는다. 이순간 남편의 경로 우대증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동안 남편이 로아를 안고 있다가 내가 로아를 안았다. 나는 로아의 체온을 좀더 느껴보고 싶었다. 로아의 작고 부드러운 몸을 꼭 안고 있자니 이별이 참 아쉬워지기만 했다.

지하철이 들어올 기미가 보이자 로아 아빠인 사위가 로아를 넘겨 받으려고 한다. 내가 로아를 안고 사진을 한번 찍겠다고 하자 사위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별을 감지한 로아가 슬픈 얼굴을 하며 우는 소리를 내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헤어지는 것이 로아도 슬픈 것이다. 아기지만 감수성이 유난히 예민한 로아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아이였다. 며칠동안 로아는 잠이 깨면 외할아버지부터 찾았다.

우리가 새벽기도를 하러 교회에 와 있으면 영낙없이 딸에게 호출 전화가 걸려온다. 매일 아침 로아가 아침에 잠을 깨서 제일 먼저 다다(외할아버지)를 찾는다는 것이다.

로아는 잠이 깨자마자 외할아버지 서재로 가서 외할아버지를 찾는단다. 그리고는 외할아버지가 없다고 제 엄마에게 돌아와서 울고 떼를 써서 딸은 별수 없이 우리를 호출하는 것이다.

그 호출을 받으면 우리는 곧장 집으로 달려간다.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나면 로아는 통통통 뛰어와서 다다 나나를 맞이하고 안기곤 했다. 그렇게 네밤을 자고 네번의 아침을 맞았던 로아와 우리 부부였다.

그렇게 살갑게 굴었던 이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로아가 우리 품을 떠나 대구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갑게 굴면서도 다다하고 나나하고 여기서 살자고 하면 대답을 안하는 로아였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무리 좋아도 제엄마를 떨어지기는 싫은것이다. 로아의 마음속을 만약 들여다 본다면 로아는 아빠 엄마하고 다다 나나 하고 전부 함께 살고 싶다고 할 것이 분명했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선교사 이셔서 선교지에 계시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국에 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인 우리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기 때문에 더욱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점심을 먹고 출발할 아들만 남아 있었다. 남편은 아이들 오면 윷놀이를 하려고 윷을 사다가 놓았는데 어쩌다보니 윷놀이 한판 못하고 로아네는 떠났다.

나는 로아네 떠나기 하루전에 아들, 사위와 함께 핸드폰 포인트로 무료 영화를 보러갔다. 아들도 사위도 다 포인트로 무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동네 홈플러스안에 영화관이 있었지만 풍무동에 이사와서 한번을 안갔던 영화관이었다.

아들과 사위와 함께 영화 감상도 했으니 만족할만도 했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윷놀이 한판 못해 보았으니 아들 내려가기 전에 윷놀이 한판 하자고 하였다. 남편과 아들은 별 수 없이 윷놀이를 해야 했다.

내가 그냥 윷놀이 하면 재미 없으니 만원씩 걸고 하자고 했다. 세번 윷을 놀아서 두번 이긴 사람이 다 가져가는 것으로 하는데 만약 각각 한번씩 이겼으면 가위바위보로 일등을 정하자고 하였다.

첫판은 내가 이기는줄 알았는데 남편 K선교사가 이겼다. 두번째 판은 아들이 이겼다. 세번째 판은 내가 이겼다. 윷놀이는 다 이긴것 같다가도 상대방에게 말이 잡히거나 상대방이 모와 윷등 한살이가 쏟아져 나오면 승부가 뒤집어 지기가 일쑤여서 대단히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놀이이다.

우리는 깔깔 소리를 지르며 한참을 웃으며 거실이 떠들석하게 윷놀이를 했다. 셋이 한번씩 이겼으니 가위바위 보를 해서 승부를 결정해야 했다. 셋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남편이 먼저 떨어졌다. 다음에는 내가 아들과 가위바위보를 했다. 아들이 이겼다.

아들에게 상금 3만원이 돌아갔다. 내가 이긴것 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대구 서울을 KTX로 왕복하면 10만원 가까이 들기 때문에 차비 라도 보태준 셈이 되었으니 좋았다.

우리 부부는 이젠 30살이 다 넘은 자녀들에게 세뱃돈을 안준다. 그대신 외손녀 로아에게 몰빵을 해서 세뱃돈을 준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손자 손녀 손녀사위에게 세뱃돈을 주셨다.

내가 몰래 봉투를 들여다 보았더니 손자 손녀 손녀사위에겐 만원짜리 한장씩을, 증손녀 로아에게만 더블로 2만원을 넣어 주셨다. 어머니도 이젠 다 자란 손자손녀 보다 증손녀가 더 사랑스러우신가 보다.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며 생겼던 이런 저런 일들이 이제 다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얀머그잔에 따뜻한 감귤차를 따라서 마시며 잠시 마음을 추수려야한다.

자녀들과 보냈던, 특별히 이쁘고 사랑스러운 외손녀 로아와 보냈던 명절의 기억에 행복감을 느낀다. 따뜻한 감귤차의 온기처럼 내마음을 따뜻하게 적셔 준다. 창가엔 벌써 봄볕이다.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 부셔온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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