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어머니를 울린 생신상

올해 나의 시어머님께서 89세 생신을 맞이하셨다. 이제 1년 후에는 어머니는 만으로 90세가 되신다. 집에서 쇠는 나이로는 벌써 90세 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어머니도 장수노인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100세 장수의 시대라고들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90세가 넘으면 이미 장수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는 의학의 발달로 사람의 생명이 길어져 오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반면에 질병과 사고로 인해 자연사 하지 못하고 사고사나 병사하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올해 어머니의 생신축하를 밖에서 해 드리고 싶었다. 좋은 식당을 정해서 형제들도 불러서 함께 축하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한정식집을 몇 군데 알아보고 있었는데 남편 K선교사가 반대를 했다. 그냥 집에서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축하해 드리라는 것이다.

서로의 의견대립으로 실랑이를 했지만 결국 나는 내 의사를 접고 남편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아침상을 차렸다. 미역국과 잡채와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서 아침에 생신상을 차려 드렸다.

우리 식구끼리만 축하해 드리자니 좀 섭섭했다. 그래서 친밀히 지내는 같은 동네에 있는 S여전도사님을 초청했다. S여전도사님은 새벽예배 인도하고 어차피 아직 아침 전일 것 같아서 함께 아침을 먹자고 했다.

S전도사님이 내 전화를 받고 “예스” 하고 곧장 달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드렸다.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드렸다. 그러면서 나는 내년엔 정말 근사하게 어머니의 생신파티를 해 드려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사실 이 결심은 이미 작년부터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작년에 우리 가족이 대구에서 잠시 1년을 살고 있을 때 어머니 생신을 맞았었다. 그런데 그때는 내 딸이 어머니 생신상을 차려 드려서 어머니를 감동케 했었다.

작년 이맘때에 나는 잘 아는 필리핀 선교사님을 만나러 대구의 인터불고 호텔에 갔었다. 필리핀 선교사님은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잠시 한국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마침 대구에서 결혼식이 있어서 나와 만나기로 했다.

나는 약속 장소인 인터불고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본관에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100세를 맞은 어느 할머니의 장수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는 모양이다. 호텔 임직원들의 이름으로 축하 현수막을 걸어 놓은 것이 보였다.

그 현수막을 보면서 나는 어머니가 100세가 되시려면 이제 12년 남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호텔 입구에 걸린 장수기념 현수막을 보면서 어머니가 만 90세 되시는 내후년에는 가족들과 가까운 친족들을 모아 잔치를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가 100세까지 사신다면 좋겠지만 사람의 수한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작년에는 어머니의 88세 생신을 토요일날 가족들이 모여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기로 하였다.

나는 밖에서 식당을 정해 가족들과 생신축하 오찬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큰딸이 연락이 왔다. 엄마가 밥하고 미역국만 끓이면 반찬은 자기가 만들어 오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러자고 하였다. 그런데 딸이 다시 연락을 해 왔다.

아예 할머니 모시고 아빠 엄마가 자기네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밥도 미역국도 자기가 다 준비하겠다고 한다. 나는 딸의 말을 듣고 보니 딸이 아기를 데리고 반찬 들고 오는 것도 번거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어머니를 모시고 딸네 집으로 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작년 어머니 생신에는 음식 준비를 내가 안 해도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연 내가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목욕을 시켜 드리고 어머니의 파마머리에 젤도 발라서 머리도 예쁘게 꾸며 드렸다. 그리고 유니콜로에서 지난번 세일할 때 사두었던 연회색 봄 가디건을 입혀드렸다.

그렇게 어머니를 예쁘게 꾸며 드린 후에 자동차에 모시고 갔다. 내가 직접 운전을 해서 우리집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딸네 집으로 갔다. 현관문이 열리자 한 주간 나를 못 보았던 외손녀 로아가 아주 반색을 한다.

그 당시엔 아직 말을 못하는 로아가 나를 가리키며 아~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제 딴에는 할머니가 매우 반갑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딸네가 좀 멀리 이사를 하기 전까지는 딸네와 내가 한아파트 아래 위층에 살았었다.

딸은 매일 로아를 데리고 ‘할머니 유치원’에 가자고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우리집에 올라왔다. 그래서 나는 매일 로아와 한나절씩 놀아 주었다. 그리고 활동적인 로아를 위해서 나는 자주 가까운 공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그러면 로아는 아주 신이나서 뛰어 다녔다. 특히 공원에 산책 나온 강아지를 보면 로아는 아주 좋아라했다. 강아지를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강아지가 저에게 달려들어도 가만히 있곤 했다.

아직 어린 아기인데도 로아는 강아지가 그렇게 예쁜 모양이다. 로아는 천성적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나와 그런 좋은 추억이 많은 로아가 할머니를 반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남편과 사위가 나가서 어머니 생신을 기념하기 위한 케이크를 사 가지고 들어 왔다. 미리 주문 배달 시켜두었던 양념통닭과 후라이드 치킨도 배달이 왔다. 생신밥상을 차려 놓고 내가 대표해서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 하고 축복하는 기도를 드렸다.

식사를 시작하시는 어머니에게 손녀딸이 어머니를 위해서 이렇게 생신상을 차린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에게 한 말씀 해 보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이렇게 여럿이 내 생일을 축하해 주어 고마워요”하신다.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시면서 말끝이 흐려지더니 어머니 눈가가 촉촉해 진다. 어머니는 순간 감동으로 갑자기 울먹해 지신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손녀딸이 차려 드린 생신상을 받아 보셨으니 퍽 감동이 되신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 어머니는 복이 있는 분이다. 어머니는 처녀의 몸으로 나이 20세에 혈혈단신으로 이북의 흥남부두에서 미군함정을 타고 한국으로 오셨다. 어머니가 도착한 그곳은 한국 제 2의 섬인 거제도이다.

이처럼 부모형제 북한에 다 두고 한국으로 홀로 넘어와서 부모도 없이 어머니는 시아버님을 만나서 결혼 하셨다. 나이차이가 12살이나 나는 남편과 살면서 어머니는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듯 하다.

사실 결혼한 여자에게 있어서 친정은 든든한 빽과 같은 곳이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줄 부모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갈 친정이 없는 우리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기댈 곳이 없는 외로운 삶을 사신 것이다.

그래선지 내가 결혼해서 우리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들은 이야기는 어머니의 친정 이야기였다. 특히 어머니는 어머니의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어머니의 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분이셨는지 늘 이야기 하셨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추운 겨울에 어머니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 가려고 나오면 어머니의 구두가 없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두를 찾고 있노라면 빙그레 웃으시며 어머니의 아버지가 윗저고리 품에 구두를 품고 있다가 신으라고 내 주셨다.

이런 자상하고 따뜻한 성품의 아버지를 둔 어머니는 비록 일찍이 부모와 헤어졌지만 참 행복한 분이다. 왜냐하면 늘 행복했던 어린시절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기억속의 부모님은 좋은 부모님이었기에 말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 이야기 끝에 꼭 붙이시는 한마디 말이 있다. 그것은 그 자상한 아버지를 당신의 큰아들이 꼭 빼닮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빛바랜 외할아버지의 사진의 모습이 나의 남편인 K선교사와 닮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강조 하시는 것은 외할아버지의 외모가 아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친정아버지의 좋은 성품을 내 남편이면서 어머니의 큰아들이 닮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의 아들 자랑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더더욱 행복한 분이다. 그렇게 어머니가 좋아하는 친정아버지를 쏙 빼닮은 큰 아들이 어머니 노후의 부양자가 되어 모시고 사니 말이다. 남편이 어머니를 잘 모시니 손주인 우리 자녀들도 할머니에게 각별하다.

나의 큰아들이 어느날 십자매 한 쌍을 사 가지고 새장에 넣어서 가지고 왔다. 아들은 할머니 심심하실까봐 사 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베란다에서 아침마다 명랑하게 지저귀는 십자매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손자 손녀를 곁에 두신 어머니는 얼마나 복 있는 분인가. 더욱이 나의 큰딸이 결혼 10년만에 첫 딸을 낳아서 어머니는 첫 증손녀를 보셨다. 어머니는 증손녀 로아를 얼마나 예뻐하시는지 모른다. 비록 치매로 인해서 기억을 잊어버려서 증손녀가 아들이냐 딸이냐를 수십 번도 더 물어보시긴 하지만 말이다.

모쪼록 어머니께서 건강하게 장수하며 사시기를 나는 기원한다. 그래서 남북통일이 되면 어머니를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모시고 어머니의 고향인 함흥에 갈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어머니의 90세 생신잔치를 함흥에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관계 가운데 가족으로 묶여진 관계처럼 특별한 관계는 없다. 결혼을 통한 가족관계는 우리의 일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번 가족으로 맺어지면 그 관계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대부분 함께 간다.

그런데 그 관계의 역할이 바뀔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서 키워주고 결혼시켜 주지만 어느덧 그 부모님이 늙어서 스스로 생활을 감당 못하시게 되면 부모님을 내가 모실 때가 오는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애기 일 때 그리고 경제적 독립을 못하는 학생시절에 부모님이 나를 책임져 주셨다. 그러나 이제 역으로 부모님의 인생의 말년에 아무 힘도 없고 낙이 없을 때가 온다. 그럴 때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모실 수 있는 자녀는 복이 있는 자녀이다.

작년 어머니를 눈물짓게 했던 생신상은 어머니의 손녀딸이자 내 딸이 차려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올해는 그냥 덤덤하게 생신상을 받으신다. 왜냐하면 며느리인 내가 생신상을 차려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치하 받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녀딸이 할머니 생신상을 차려 드리는 일은 드문 일이다. 그래서 어머니도 감격을 하신 것이다. ‘어머니를 단숨에 울린 손녀딸이 차려드린 생신상’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생신상중에 가장 아름다운 생신밥상이 아니었을까.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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