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구는 애국자인가? 비열한 겁쟁이 위선자인가?

[LA=시니어타임즈US] 본지는 2020년 7월부터 최익주 선생의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가제)> – 국민의 반성과 국가적 전환점(부제)을 저자와의 합의 하에 글이 출판되기 이전에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회차별로 매주 한편씩 실리게 되며, 글의 배포는 무방하나 무단전재는 금한다. 글의 소유는 전적으로 저자 최익주 선생에게 있음을 알리며,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무방하다.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는 저자가 20년여 전부터 대한민국이 인간적으로는 물론이고 총체적으로 한계에 봉착했고, 또다시 혼란과 위기와 망국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함과 동시에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을 연구했다. 이에 저자는 대한민국이 부디 새롭게 출발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산업화 이후의 시기부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어난 일련의 최근 사건들을 통해 그 문제점 되짚으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바르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주>

6. 김구는 애국자인가? 비열한 겁쟁이 위선자인가?

(출처: 이 문서는 유엔(UN)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관리하기 위해서 설치했던 유엔한국위원회의 중국대표 유의만(훗날 대만정부의 유엔 차석대사)이 김구를 찾아서(1948. 7. 11. 오전 11시경) 대화했던 내용을 기록해놓은 영문 자료다. 이는 조갑제씨가 이화장(이승만 자택)에 보관 중인 것을 입수·번역해서 공개했다. 이 자료는 우리 국민 대부분이 몰랐던 중요한 내용이어서 이곳에 소개한다. 물론 필자는 조갑제씨와 일면식도 없다.
필자는 저서 ‘아름다운 선·순·아에게’(2018.7.13.), 1/4권, 제2장 ‘16. 김구는 충신인가 역적인가’에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서 조갑제씨(유튜브 등)에게 승낙을 요청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는지 아무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인물사 정립에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당시에 조갑제의 유튜브 방송을 그대로 글자로 옮겨서 저서에 소개했다.)

(※ 탈북민들은 6.25전쟁을 북한에서 일으켰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않는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들과 부인할 수 없는 내용들을 샅샅이 확인하고서 비로소 믿게 된다.
남한국민들은 지금도 김구를 애국자로 여기고 있다. 물론 이는 이승만이 독재자라는 미움에서 생겨난 반발심리이기도 하고, 김일성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허물기 위해서 이승만을 부정하고, 김구를 앞세우는 임시방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기서는 김구가 과연 애국자인지, 충신인지, 비열한 겁쟁이 위선자인지, 역적인지, 공산주의자였는지, 공산주의에 동조한 자인지,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인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이화장에서 입수·번역한 문서 내용

유의만(1960년대 사망) : 나는 선생님께서 매우 정직한 분이라는 점에서 존경해왔습니다. 나는 오철성과 왕시구(외무장관)와 장개석 총통이 선생님께 보내는 3개의 메시지가 ‘선생께서 이승만박사에게 협력해 달라는 메시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박사와 김구선생과 김규식선생이 남한정권을 수호하는데 협조해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중국 격언이 있습니다. 『집안에서 형제들이 다툴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견이 많다고 해도 소련이 지배하는 세계공산주의라는 공통의 위협 앞에서는 다 형제들입니다.
나는 선생님의 아들 김신을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말이 듣기 거북하시더라도 아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선생께서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가담하실 생각이라면, 물론 저는 그렇게 믿고 싶지 않습니다만 사실이라면 제발 그렇다고 말씀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정치적 적수로서 헤어지고 다시는 만나지 않으면 됩니다.
김구 :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웃으면서) 나는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요. 사실은 내가 마음에 준비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내 최측근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라 당신에게 털어놓는 게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머잖은 장래에 모두 밝히겠습니다. 귀하를 포함한 내 친구들이 좋아하든 안 든 간에 당신은 기다려주실 거죠?

유의만 : 지금 생각하는 것을 말씀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시지 않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저의 메시지 전달은 끝났으므로 선생님께서 고민하고 계시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실 때 도움이 될 만한 저의 개인적 생각을 말씀 드릴까 합니다.
김구 : (찬성은 아니지만 예의상 승낙한다는 표정을 지음)

유의만 : 내가 이승만박사에게 선생님과의 협조 가능성을 타진할 때마다 그분의 대답은 변함없이 ‘만약 그가 나와 함께 일할 생각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에게 다가가 환영하겠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이박사가 부통령직을 선생에게 제의하실 생각을 갖고 있다고 확인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자리를 초월하신 선생님에게 제가 그런 점들을 언급하게 된 것을 선생께서는 유감으로 생각하실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부통령 같은 것은 집어치워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어.’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선생께서 이박사와 협력하시고 싶다면 새롭게 구성되는 정부에서 그런 자리를 차지하시는 것이 적어도 많은 사람들과 당황하고 있는 선생님의 지지자들에게 우익진영의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께서는 애국활동의 찬란한 기록을 갖고 계십니다. 선생께서 최근 평양에서 열린 소위 ‘남북한 지도자 협의회’에 관계하신 일은 그런 기록에 타격이 되었습니다. 북중국에서 조선인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포로가 되면 목숨이 아까워서 그러겠지만 사람들이 ‘우리는 김구의 지지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공산주의자들의 목적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선생의 모든 동지들은 선생의 찬란한 과거업적이 이런 식으로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김구 : 나도 잘 알고 있는 말입니다. 북한공산주의자들은 나를 자신들의 협력자로 간주합니다. 내가 귀하께 이야기했듯이 모든 사람들이 내 입장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남한정부에 참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귀하도 알다시피 이박사는 한민당의 포로가 되어, 말하자면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하는 신세입니다. 내가 만약 정부로 들어가면 피할 수 없는 갈등이 일어나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내가 바깥에 머무는 것이 낫습니다. 내가 그 더러운 정치판에, 정치싸움에 연관되는 건 싫습니다.

유의만 : 선생님의 말씀은 오히려 바깥에서 계시는 것보다는 정부에 들어가셔야 한다는 논리를 갖게 합니다. 이박사는 한때 선생님의 동지이셨던 신익희, 이범석, 이청천씨 같은 분들을 휘하에 두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참여하셔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시지 않으신다면 모든 것이 한민당의 뜻대로 되고 말 것입니다. 이박사가 국익을 위하여 그렇게 하고 싶어도 혼자서 그 정당을 제어하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선생께서 정부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견제하면 이박사를 강화시켜주실 것이고 만약 버리신다면 이박사를 한민당의 수중에 떨어지게 할 것입니다. 선생께서도 한민당이 국가의 운명을 견제 없이 함부로 농단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김구 : (정치싸움 등 이미 말한 것을 되풀이한 다음) 나는 특정정당의 비방전에 의하여 반미주의자로 광범위하게 색칠 당했습니다. 나는 중국과 미국만이 한국에 도움이 되는 이웃나라라고 생각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건설하는 데는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데 내가 정부를 구성할 때 그 안에 있으면 미국인의 동정심에 찬물을 끼얹어 국가이익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유의만 : 선생님 말씀은 틀렸습니다. 이박사도 한때 반미주의자로 악평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사람들이 태도를 바꿔서 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를 수립하는 것은 결국 한국인의 고유한 일입니다. 한국에 있는 미군들이 선생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그들은 결국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 장군도 창피를 당하지 않고 명예롭게 소환될 것입니다. 가도 괜찮습니다. 귀측이 단결하고 유엔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되면 미국 측이 떠나가는 일도 앞당기게 될 것입니다.

김구 : 귀하는 중국이 한국을 인정하는 첫 번째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유의만 :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입장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중국 미국 영국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김구 : 미국이 지금 입장을 물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유의만 :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미국인들이 한국의 입장을 확고하게 지지하니까요.

김구 : 내가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한 지도자 협의회’에 참석하는 한 가지 동기는 북한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앞으로 북한군의 확장을 3년간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남한에서 무슨 노력을 하더라도 공산군의 현재 수준에 맞서는 군대를 건설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비난을 받지 않고 아주 손쉽게 그것을 남진(남한진격)하는데 써먹을 것이고, 단기간에 여기서 정부가 수립될 것이며,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입니다.
유의만 : 러시아가 전쟁을 각오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인데 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과거에 러시아는 두 번의 국제적인 압력에 굴복한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한국으로부터 또 한 번은 요동반도로부터 물러났습니다. 유엔을 통하여 세계여론이 일어나면 그 충격 앞에서 다시 굴복할 것입니다. 여기서 만들려는 정부가 북한정권이 러시아의 꼭두각시인 것처럼 미국의 꼭두각시라면 저는 선생님께서 어느 쪽과도 협력하지 않으려는 입장인 것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유엔의 지지 덕분에 한국정부는 주권국가가 될 것이며, 통일을 성취할 기지가 될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한국이 약하게 보일수록 조건 없이 건국을 위하여 투신하여야 합니다.

* 조갑제씨의 추가설명
“당시에 북한정권은 소련군 대위였던 김일성이 박헌영과 함께 스탈린에게 불려가서 면접시험을 통해 지도자로 간택된 정권이었으며, 북한정권에게 헌법조문을 만들어주고 국호까지 결정해준 꼭두각시 정권이었고, 김구는 이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소련의 사주(지원)를 받아서 군사력이 막강해진 김일성이 남한을 침략할 것도 알고 있었고, 남한정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패배주의에 빠져있었으며, 소련과 김일성에게 감히 맞서려고 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또한 1948년 4월 30일 평양에서 남한정치인 대표(사실은 공산당 대표)로 참석한 김구와 김규식이 서명·발표한 4.3성명서에는 ‘외국군이 모두 철수해라. 철수해도 내전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김구가 스스로를 속이고 남한과 유엔도 속이는 짓이었다. 더구나 북한군이 침략할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주한미군을 나가라고 서명·발표했다면 더욱 확실하게 북한군이 승리하도록 해주려는 것이 김구의 의도였음을 알 수 있다.
김구는 1948년 김일성에게 이용당해서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그런데 사후에도 이번에는 남한의 좌익이 또다시 김구를 이용해서 이승만을 치는데 악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아마도 김구선생이 저승에서 통탄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이상에서 확신할 수 있는 점
위의 내용들에서 뚜렷하게 확신할 수 있는 점들이 있다.
첫째, 김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도, 인식도 하지 못했으며, 김구의 머릿속을 좌우하는 것은 북한의 군사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김구는 소련과 연계된 김일성을 거스를 수 없었고, 북한정권의 침략과 남한의 공산화를 예상하고도 기정사실화했을 뿐 막아보려는 노력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셋째, 김구가 만일 이승만 정권에게 합류했더라도 김일성의 지령에 따랐거나,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배척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부통령이 되었더라도 남한에 지극히 해롭고 위험한 인물과 세력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넷째, 김구의 공로는 항일운동이며, 항일운동 이후에 김일성을 추종했던 인물들도 많았다는 점에서 깁구를 이승만과 대체할 인물로 착각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어불성설이다.
다섯째, “대한민국이 해방되는 당시에 김구는 중국에 머물렀다. 그런데 여자들에게 빠져서 해방된 사실조차 몰랐다가 뒤늦게 나타났다.”는 소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저자 최익주 선생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목포북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광역시로 이사해서 북성중학교, 동신고등학교, 조선대학교 경영학과(78학번)를 졸업했다.

군생활을 오산비행장 방공포부대에서 병장 만기 제대, 3년간의 개인 사업을 했으며, 관세사무소에서 16년 동안 사무장으로 지내다가 광주세관과 관세청과 부정비리 문제로 싸움(형사소송)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실체와 실상을 깨닫고 인생을 180도 선회. 이후 밑바닥부터 다시 터득하고 통달해야 한다는 각오로 시민단체(2-3년), 택시기사(2년 6월), 생산공장과 건물경비(10년여)를 전전하면서 노동자 생활을 해왔다.

저서로는 <이제는 바꿔봅시다(1997.7.30.)> <대화로 여는 새아침(1999.9.20.)> <사랑하는 선·순·아에게 제1-4권(2018.7.13.)>이 있다.

 

다음은 “7. 친일파들보다 훨씬 더 잔악한 친일파청산론자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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