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필자가 관공서에서 겪은 또 다른 이야기

광주본부세관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처

[LA=시니어타임즈US] 본지는 2020년 7월부터 최익주 선생의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가제)> – 국민의 반성과 국가적 전환점(부제)을 저자와의 합의 하에 글이 출판되기 이전에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회차별로 매주 한편씩 실리게 되며, 글의 배포는 무방하나 무단전재는 금한다. 글의 소유는 전적으로 저자 최익주 선생에게 있음을 알리며,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무방하다.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는 저자가 20년여 전부터 대한민국이 인간적으로는 물론이고 총체적으로 한계에 봉착했고, 또다시 혼란과 위기와 망국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함과 동시에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을 연구했다. 이에 저자는 대한민국이 부디 새롭게 출발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산업화 이후의 시기부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어난 일련의 최근 사건들을 통해 그 문제점 되짚으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바르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주>

9. 필자가 관공서에서 겪은 또 다른 이야기

필자는 수출입 통관업무(관세사 사무장)를 위해서 광주본부세관을 15년여 출입했다. 그러던 중 ‘과연 나는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는 중이고, 이렇게 살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며, 무엇을 할 수 있겠고, 그런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필자가 출입하는 광주본부세관 공무원은 65명 내외였다. 그런데​ 문득 필자가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세관 공무원 중 민원부서(수출입) 담당자 30여 명의 명단을 적어놓고 그들과 싸운 횟수를 정(正)자로 표시해봤다. 그런데 무려 100회가 넘었고, 거래업체들과의 다툼도 20여회였다. 그것도 상식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서 글로 소개할 수 있는 내용들이 그렇게 많았다.

(※ 이후 필자는 소책자(‘부정부패이야기’)를 제작해서 광주본부세관 공무원들과 관세청장과 동종의 업체들과 수출입업체들에 배포했고, 그에 대해서는 바로 앞 주제에 정리되어 있다.)

우리는 대기업에게는 3개월 어음을 받아서 할인해서 사용했고, 매출의 10%는 담당 부서에 리베이트(현금)로 돌려주었으며, 세관의 행사와 공무원들과 업체들의 애경사와 접대에 상당한 금액을 사용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고생한 보람은커녕 긍지감이 없어졌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삶의 연속이었고, 필자 역시도 놀기를 좋아해서 공무원들과 수시로 모여서 화투 치고,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는 등 정신 차리지 못한 삶이었다. 어떻든 그렇게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살면서 노력했음에도 업무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해서 다투고 싸워야 했다.
그래서 필자는 ‘여기가 과연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이 맞는지’, ‘과연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국민인지’, ‘도대체 어떤 시대에서 살고 있는지’, ‘내가 이들과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인지’ 많은 고민과 갈등과 상념에 빠졌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세관의 총무과(운영과) 직원(B씨, 7급)이 만나자고 해서 만났고, 당시 대화를 간단히 소개한다.

직원 : 세관에서 업무적으로 자네를 이겨 먹거나, 인간적으로 거스를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은가? 우리도 자네에게 앞으로 잘해주고 조심할 테니 자네도 조금만 성질을 참으면 안 되겠는가?
나 : 하하하. 형님. 나에게 신경을 써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세관에서 무슨 말들이 오고 갔는지 눈에 선하네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왜 이제야 해주는가요? 좀 더 빨리 신경 써줬으면 나도 피곤하지 않았고, 싸울 일들도 없었을 건데요.
그럼 내가 형님에게 한 가지만 부탁할 테니 앞으로는 형님이 그렇게 해주면 됩니다.

직원 : 뭔가? 말해보소.
나 : 먼저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만일 내가 세관에서 일을 처리하다가(결재받다가) xx(계장)이가 ‘이 건은 돈이다.’라고 생각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xx이가 돈을 받아먹어야 결재해준다고 생각하는가요? 아니면 그냥 옳고 바르게 처리한다고 생각하는가요?

직원 : 당연히 먹어야 해주겠지?
나 :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xx이는 능력이 부족한데다 속(인간성)이 시컴하니까 돈 봉투로 몰아갈 것이라는 것은 형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민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럽고, 회사(상사)는 계속 재촉하기 때문에 안절부절하게 됩니다. 하지만 xx이는 돈을 받아야 결재합니다. 그럼 업체는 고민하다가 돈 봉투를 건네게 되고, xx이는 그런 점들을 노려서 자꾸 브레이크를 겁니다. xx이 같은 인간들 때문에 다른 공무원들도 욕을 먹습니다. 그런데 여기 내부에서도 xx이를 모른 척 방치할 뿐 단속하지 않잖아요?
앞으로는 xx이가 나에게 꼬장(생트집)을 부리면 나는 곧바로 형님에게 연락할 테니까 형님이 내려와서 나를 대신해서 결제를 받아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xx이에게 줄 돈 봉투를 형님이 대신 부담하세요. 형님이 그렇게 해준다면 앞으로 나는 세관에서 피곤할 일이 없고, 돈 봉투를 빼앗길 일도 없고, 싸울 일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나에게 참으라고만 말하면 형님은 나에게 싸우지 말고 곧바로 돈 봉투를 건네주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직원 : 허허. 그런 말이 되어버리네?
나 :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그간에 나는 천사 같은 사람에게는 천사로 존중해줬고, 개 같은 인간은 개처럼 상대했습니다. 직원(공무원)들 중에는 업무능력은 부족해도 인간성이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직원도 간혹 나에게 트집을 잡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내가 최대한 맞춰주고 농담까지 해가면서 웃고 해결합니다. 아마도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에게 내가 성질을 냈다든가, 내 성질로 몰아붙인 경우는 한 번도 없었을 것입니다.
몰상식한 짓을 하다가 나에게 당한 직원들이 가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눈빛을 의식하면서 혼자 웃곤 합니다. 형님도 나를 나름대로 뜯어보고 판단해봤을 것 아닙니까? 나는 항상 밝고 웃는 얼굴이고, 누구보다 좋은 분위기로 출입해왔으며, 대부분 관계가 좋지 않습니까?
내가 세관에 들어오면 직원들이랑 뒷마당에 나와서 서로 커피를 사고, 잡담도 나누고, 형님도 1층에 있을 때 그랬지 않았나요? 이것이 내가 매일매일 살아온 일상 중 하나입니다. 나는 무리한 짓들을 하는 직원과 한바탕 싸우더라도 등을 돌리면 곧바로 웃는 얼굴로 바뀌어서 여전히 밝고 명랑하다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물론 내가 간혹 우리 거래업체가 아닌 다른 거래처들의 업무에도 관여한다는 점에서 지나친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왜냐면 거래처는 아닐지라도 세관에서 수시로 얼굴을 보고, 커피도 함께 마시는데 나에게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내가 직접 관여하지 않고, 대부분 직원(공무원)에게 조용하고 솔직하게 조언합니다. 그래도 변화가 없거나, 나쁜 소문이 들리면 또다시 불러서 따끔하게 충고해주고 경고도 합니다.
여기에 출입하는 수출입업체 직원들 중에는 부당한 꼴을 당하면 나에게 하소연하거나, 내가 방법을 가르쳐줘도 소심하게 걱정하거나, 결국은 돈 봉투를 주려고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관(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생트집을 잡아서 돈 봉투를 챙기는 짓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어쨌든 여기 출입하는 사람들은 서로 만나서 웃고 사는 사람들이고, 평생을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갈 우리 국민이잖습니까? 혹시 형님이 어디에 가서 부당한 꼴을 당했는데 내가 옆에 있었다면 당연히 도움이 되어줘야지 모른 척 해버리면 되겠습니까?
형님 말씀은 고맙지만 먼저 세관에서 내부적으로 문제들을 개선하려는 다양한 노력과 절차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협조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말해주세요.

직원 : 알았네.

(※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하나 더 추가한다.
이 직원과 대화하기 한참 전에 위. 직원(‘형님’)을 포함한 공무원 3명과 필자까지 4명이 광주에서 개최되는 제1회 광주비엔날레 예술전시회(보세전시장)에 파견을 나갔고, 해외작가들의 작품 반출반입 엄무를 진행했다. 그렇게 전시회가 끝났고, 반출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세관에서 이 직원에게 공개적으로 아주 심한 비난을 쏟아냈다.
반출이 모두 끝났고, 나는 그에게 사과하면서 화해를 요청했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25년 공무원 생활로 쌓아온 명예를 자네로 인해서 단 30초 만에 모두 잃어버렸네.”라고 말하면서 화해 요청을 거절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그에게 “잘 아시다시피 그간에 나는 세관에서 수없이 싸웠습니다. 하지만 싸우고 난 이후에 내가 사과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형님에게 사과했으니, 그것은 알고 있으세요. 내가 사과한 이유는 물론 형님이 잘못을 했지만 어떻든 내가 너무 심하게 비난했기 때문에 사과한 것입니다. 나도 할 만큼 했고, 더는 언급하지 않을 거니까 형님이 잘 판단해서 결정하세요. 생각이 바뀌면 전화주세요. 우리 모두가 고생했는데 함께 소주라도 한 잔 하면서 풀어버립시다.”라고 말하고 나왔다. 그런데 한두 시간 지나서 그(형님)에게 전화가 왔고, 비엔날레에 함께 파견 나갔던 네 명이 소주를 곁들여서 식사하면서 화해했다.)

(※ 참고로 제2회 비엔날레 때는 필자의 학교 선배(공무원)와 함께 파견 나갔다. 그런데 또다시 돈 문제(봉투 요구)로 훨씬 더 심하게 다퉜다. 필자는 후에 그 선배에게 쌍욕까지 섞어서 심하게 퍼부었고, 그 이후 행사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대한이 아니라 어떻게든 얻어먹고 뜯어먹고 빼앗아 먹으려는 거지민국, 동냥치민국, 강도민국이라는 말이 적합한 점도 있다. 오늘날은 어느 정도 어떻게 청렴해졌을까? 혹시 일반인들이 쉽게 접촉·감시할 수 없는 전문 직종들에 지금도 문제는 없는지 궁금하다.)

지금 여러분이 종사하는 직장과 분야는 어떤가

지금 여러분이 종사하는 직장과 분야는 과연 “우리민족끼리”이고, ‘한겨레 한민족’이고, ‘우리는 하나’가 맞는가?

필자는 최선부터 최악까지 동시에 진행되는 세상이라는 곳에, 천차만별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종다양한 사회와 각양각색의 문화 속에서 복잡다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인간답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선과 악은 물론 정의와 불의와 긍정과 부정과 친국과 지옥이 동시에 함께하는 세상사와 인생사를 제대로 살아가려면 적극적으로 인간다워야 하고, 적극적으로 정의로워야 하고, 적극적으로 아름다워야 하고, 더욱더 쉴 새 없이 노력하고 희생하고 헌신하고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갈수록 거짓과 몰상식과 몰염치와 위선과 조작과 위조와 궤변이 기승을 부리면서 적극적이지 못한 모든 것을 잠식하면서 조여들기 마련이다.

필자는 그간에 워낙 많이 열 받고, 실망하고, 적극적으로 싸우고 살았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실체와 실상과 가능성에 대해서 최상부터 최하까지, 최선부터 최악까지, 최대부터 최소까지 뼈가 저리도록 속속들이 체감하고 체득했다.

저자 최익주 선생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목포북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광역시로 이사해서 북성중학교, 동신고등학교, 조선대학교 경영학과(78학번)를 졸업했다.

군생활을 오산비행장 방공포부대에서 병장 만기 제대, 3년간의 개인 사업을 했으며, 관세사무소에서 16년 동안 사무장으로 지내다가 광주세관과 관세청과 부정비리 문제로 싸움(형사소송)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실체와 실상을 깨닫고 인생을 180도 선회. 이후 밑바닥부터 다시 터득하고 통달해야 한다는 각오로 시민단체(2-3년), 택시기사(2년 6월), 생산공장과 건물경비(10년여)를 전전하면서 노동자 생활을 해왔다.

저서로는 <이제는 바꿔봅시다(1997.7.30.)> <대화로 여는 새아침(1999.9.20.)> <사랑하는 선·순·아에게 제1-4권(2018.7.13.)>이 있다.

 

다음은 “10. 필자가 겪어본 운동권(종북·좌파·주사파)의 실체(원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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