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농부의 손녀와 사과

새벽기도 마치고 나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는 남편에게 핀잔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나는 좀 머쓱해진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를 준비시켜 주간보호센터에 보내 드리고 났는데 카톡이 하나 날아왔다.

남편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평소 짤막하게 할 말만 간단히 하는 사람인데 이번에 온 카톡은 상당히 길었다. 나는 속으로 남편이 또 나에게 무슨 잔소리 할 말이 남아서 카톡을 보냈나 하면서 카톡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그 내용은 내가 예상했던 내용이 전혀 아니었다. 완전히 반전을 느끼게 하는 글이었다.

“멋있는 집이네, 난 당신만 있으면 어디에 살던 다 좋아. 농촌이든 산촌이든 어촌이든 도시든. 항상 미래를 생각하고 진취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좋다. 당신이 건물에 마음을 둔다고 내가 걱정하는 말을 했는데, 쓸데없는 염려를 했네. 미안해요. 당신은 염려할게 없는 사람인데 괜한 말을 했네. 기도하려다가 마음에 걸려서 ?(사과)를 드립니다. 가을에 사과가 나오면 진짜 새빨간 사과를 사줄게.”

뜻밖이었다. 남편의 이런 진심어린 사과는… 게다가 감성적인 나와 다르게 이성적인 성향의 남편인데 카톡으로 보내온 사과의 내용은 매우 감성적이고도 유머러스하기조차 했다. 가을이 오면 새빨간 사과를 사 주겠다니… 호호호…지금도 마트에 가면 새빨간 사과는 수두룩한데…

남편이 나에게 보낸 사과하는 글의 중점은 내게 핀잔을 준 것은 자신의 오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그것은 근래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남의 집 살아가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EBS컬렉션 라이프스타일’ 이라는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전에 없이 집에 많은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시골집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서 땅값이 비교적 저렴한 지방이나 산골에 자기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EBS 제작진이 현장을 찾아가 집을 짓게 된 경위를 풀어 나가는, 그야말로 스토리가 있는 흥미진진한 집이야기였다.

건축가들이 직접 전국 각처에 있는 집을 찾아가고 집주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인데 나래이션을 맡은 탤런트 김영옥 씨의 구수한 해설 또한 정겨움을 느끼게 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다. 도심에서의 직장 생활을 은퇴한 후 오랜 준비 끝에 귀농, 혹은 귀촌해서 자연 냄새 물씬 풍기는 시골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혹은 과수원을 가꾸거나, 차밭을 경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연이 저마다 개성 있고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사연 속에 담긴 삶의 애환은 제법 긴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도 길고 긴 울림을 주었다. 편리한 아파트를 떠나서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 또는 서울 등 도심의 생활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비싼 아파트 보다 도심의 5평 혹은 8평의 작은 땅을 사서 협소주택을 위로 올려 짓고 신혼살림을 시작한 젊은 부부들의 이야기도 있다. 참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그래서 더욱 감동이 되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예는 이제는 늙고 병든(특히 암 같은 치명적인 병을 앓고 난)부모님과 나란히 땅콩 집을 짓고 이웃하여 살면서 자식이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서 서로 돕고 섬기며 사는 가족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이런 저런 사람들의 집에 대한 재미있는 발상은 끝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아예 다세대 건물로 집을 지어서 부모님 한채, 장인 장모님 한채, 시누이 한채 이렇게 친속들이 함께 살 돼 철저히 프라이버시는 지키면서(집현관 비밀번호는 안 알려줌)자주 만나 교제하는 가족 이야기 등등 흥미가 진진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또 아파트에 살면서 층간소음 문제로 아이들이 기 펴지 못하고 자라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부모들이 아예 복층 빌라를 짓고 1,2층을 쓰는 가족은 일층에 거실 2층에 침실을 두고, 3,4층 복층을 사는 가족은 현관이용을 아예 4층에 두어 4층을 거실로 3층을 침실로 사용해서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가는 기발한 아이디어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은 각 세대별로 한 평의 땅을 내놓아서 공동마당을 만들고 그네도 만들어 달고 수영장을 만들어 아이들을 부모의 눈이 닿는 곳에서 놀게 함으로써 안전을 도모한다. 이웃의 아이들을 서로 케어해 주며 아이들을 키우는 놀라운 발상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의 문제해결책처럼 여겨졌다.

그곳에서 20명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며 이웃사촌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곳에 사는 한 젊은 부인은 첫아이를 낳고 둘째를 낳을 엄두를 못 내다가 이곳에 이사 오면서 둘째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웃들이 큰 아이를 돌봐주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나누었는데 남편은 내가 아파트가 아닌 단독건물 혹은 시골집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실행파인 내가 염려가 된 모양이었다. 어느날 내가 도시생활 다 정리해서 산골에 들어가 집짓고 살자고 할까봐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교회에서 돌아와서 남편에게 영상하나를 보내 주었다. 그 영상은 도심에서 아내는 중학교 교사, 남편은 학원을 경영하며 살던 아직 젊은 40대의 부부가 늘 긴장된 도심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 자락 동네로 내려와서 땅을 사고 아담한 집을 짓고 여유롭게 살아가면서 공부방을 열어 동네 아이들을 지도하며 살아간다는 의미 있는 내용이다.

남편은 인간미 물씬 풍기는 그 영상을 보고나서 감동이 되었는지 나에게 그런 진솔한 사과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글을 쓰는 아내가 사람들의 휴먼스토리에 감동한 것이지 단지 시골에 집을 짓는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닌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시골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우리 교회에 있는 유일한 난화분이 예쁜 꽃을 피웠다. 그런데 그 화분은 거의 죽어가고 있던 화분이었다.

사람이 비교적 자주 안 들어가는 유아실에 난화분을 놓아두고 물주는 것을 깜박 잊어 버려서 절반 이상의 잎들이 말라버렸다. 그래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던 화분이다.

나는 난의 죽은 잎을 다 떼어내고 물을 주어 돌보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잎이 몇 개 남지 않은 난이 최근에 꽃을 피운 것이다. 백색의 난꽃은 향내가 참 좋았다. 나는 남편이 주로 사용하는 선교회사무실로 난 화분을 옮겨 주었다. 꽃향기 맡으면서 업무를 보도록 말이다.

그것을 보고 남편은 감동했는지 한마디 했다. “역시 농부의 딸은… 아니 농부의 손녀는 달라. 다 죽어가는 화분을 살려 내어서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다니 과연 당신의 손은 생명을 살리는 손이야.”

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이셨지만 할아버지는 근면한 농부 이셨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산 우리 형제들은 그래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그런데 우리 형제 5남매 중엔 아무도 귀농한 사람은 없다. 모두 도시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친구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나중에 나이 들면 시골에 내려가서 작은 농장을 운영하면서 글을 쓰면서 살고 싶어” 그러면 친구들은 내 꿈이 너무 소박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소박한 꿈도 나는 아직 이루지 못하고 살고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그 후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꿈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교사가 되어 선교지로 가서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벌써 이루었다.

어떤 사람들은 은퇴할 때가 다가오고 나이가 들어가고 혹은 신체에 병이 들게 되거나 도심 생활의 복잡하고 여유 없는 삶에 심리적인 갈등을 일으킨다. 그래서 농촌과 시골을 택해 집을 짓고 옮기거나, 수도권의 비교적 싼 땅에 단독 집을 짓고 살기도 한다. 모두 다 자신들의 인생철학과 가치관을 따라 결정하는 일이다.

그와 같이 나도 나의 신앙적 가치관을 따라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선교사로 부름 받은 소명대로 살기 위해 선교지로 간 일이다. 비록 선교사로 산 지 10년 후에 그 나라의 정치적인 배타심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선교지로 돌아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귀농이나 귀촌이 아니라 ‘귀선’이라고나 해야 할까?

사람들이 고향을 동경하며 귀농 혹은 귀촌 하고 있는 것처럼 선교지로 되돌아가는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셈이 될 터이다. 농부의 손녀인 나에게 땅이 생긴다면 물론 농작물을 가꾸고 과일나무를 심어보고도 싶다. 하지만 그런 꿈은 이루어 지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 하나님이 나를 보내고 싶은 그곳으로 갈수만 있게 된다면 말이다. 요즘 벌써 조석으로 기온이 선선해졌다. 곧 사과의 계절인 가을이다. 남편이 나에게 약속한대로 빨간 사과를 사 가지고 오는지 두 눈 부릅뜨고 기다려 보아야겠다.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사 1:27)

글/ 사진: 나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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