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기분 업(up)

‘잠 못 이루는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오늘은 금요일 이어서 어머니는 오늘도 주간보호센터에 가셔야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시더니 잘 걷지를 못하신다. 오른쪽 다리가 바닥을 딛는데 힘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 쉬기로 하고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다가 점심을 차려 드렸다. 어머니가 좋아 하시는 국을 끓였다. 감자와 양파 명태를 참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물을 부어서 끓은후에 달걀을 풀어 사르르 붓고 대파 썬것을 넣는다. 이렇게 끓인 감자국은 시원한 감칠맛과 구수함이 일품이어서 우리가족 모두가 다 좋아한다.

그리고 묵은지에 참치와 대파를 넣고 은근히 조려서 묵은지가 물렁물렁하게 만들었다. 틀니를 잃어 버려 치아가 없는 어머니를 위해 참치묵은지찜을 가위로 잘게 썰어서 감자국과 함께 점심을 차려 드렸다.

남편은 점심식사하러 오라고 했더니 알아서 먹겠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아니, 그렇게 위하는 당신 어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주간보호센터에도 못가셨는데 점심에 들어와서 한번 들여다 보기라도 해야 하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교회에서 안 오니까 별 수 없이 나는 어머니와 둘이서 점심을 먹었다. 어머니가 다시 침실에 누우시도록 자리를 봐 드리고 나는 교회로 갔다. 매일 새벽과 점심후에 남편과 함께 성경 통독을 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교회 올라가면서 우리교회 건물 1층에 있는 마카롱 가게에서 마카롱 두개를 샀다. 커피를 내리고 디저트를 먹자고 했더니 예배당 안에서 기도하고 있던 남편이 카페로 나온다.

어젯밤 어머니로 인한 말다툼이 있었던터라 나도 남편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아무일도 없었던듯이 우리는 마주 앉아서 마카롱과 커피를 먹었다. 그런걸보면 인내로 다져진 결혼생활40년의 내공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은 교회 냉장고에 있던 곤드레비빔밥과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고 한다. 내가 집에 안올거면 주변 식당에서 사 먹으라고 했는데 직접 준비해서 점심을 해결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 시편을 읽었다. 내가 한장 소리 내어 읽고 나면 남편이 한장 소리 내어 읽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다. 개역성경이 아닌 표준새번역으로 통독을 시작했는데 신약먼저 다 읽고 구약을 읽기 시작해서 지금은 시편을 읽는 중이었다.

어제일에 대해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젠 내가 미안했어 어머니 치매 진행 상태를 잘 몰라서 내가 당신을 오해한 거였어” 이렇게 한마디 해 주면 좋으련만 왜 아내에게 잘못한건 시인하지 않을까 흠~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늘 그랬듯이 남편은 이제 시간이 지나도록 뭉개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마음이 착하고 여린 아내는 언제 그런일이 있었느냐는듯이 다시 원래대로 일상생활을 잘 해주겠지 아마도 남편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함께 성경을 읽고나서 남편은 집으로 가고 나는 교회에 남았다. 이런 저런 일을 하다보니 저녁때가 되었다. 그때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 오늘은 큰딸의 생일이었다. 큰딸은 시댁 식구들이 다 와서 생일축하를 해주어 매우 기분좋아 했다.

선교사인 시부모님이 마침 한국에 들어와 있으셨기 때문에 며느리 생일에 맞추어서 대구를 방문한 것이다. 딸의 시어머니는 아침을 차려 주었고 시아버지는 점심으로 근사한 한정식을 사 주었다고 한다.

사위는 딸에게 생일선물로 구두를 사주고 농원에서 재배한 싱싱한 꽃을 한상자나 선물해서 딸네 온 집안에 화병에 꼿은 꽃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시누이는 예쁘고 고급스러운 수제케이크를 준비해와서 생일축하를 해 주었다.

그리고 로아는 제엄마에게 초록색돈 열장을 주었단다. 로아의 선교사 할아버지가 예전에 전도한 사과농장을 하는 분이 로아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과농장을 방문하자 10만원을 준 것이다.

그래서 로아는 “엄마 내가 생일선물로 초록색돈 열장을 엄마에게 줄께”하고 말해 왔었다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아이지만 로아가 성경 암송을 열심히 하더니 이런 은혜로운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딸의 말이 더 걸작이다. “엄마 딸에게 용돈 받으니 기분이 되게 좋더라구” 한다. 나는 속으로 아이구~이제 만 네살인 어린딸에게 용돈을 받고 기분좋아 하는 순진한 우리 큰딸 어쩌나 하며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큰딸은 생일을 맞아서 행복만땅인 모양이어서 나도 기뻤다. 나는 비록 지금껏 살아 오면서 시댁식구들에게 생일 한번 제대로 챙김 받지 못하고 살았지만 내가 낳은 딸이 좋은 시댁 만나서 사랑받고 귀하게 여김받고 사는것이 고맙고 감사했다.

딸은”엄마 나랑 내남편이랑 로아랑 로이는 엄마편이야 절대적으로 엄마를 지지해” 한다 나를 위로해 주려는 말이다. 대화중에 내가 이제 저녁때가 되었으니 할머니 저녁 차려 드리러 집에 가야겠다고 했다.

내 말을 듣더니 딸이 펄쩍 뛴다. “엄마 오늘은 38년전에 엄마가 나를 낳아준 날이잖아. 집에 가지말고 엄마 혼자 맛있는거 사 먹고 스타벅스 가서 커피도 마시고 밤 열시쯤 집에 들어가요 내가 돈 보내줄께요” 한다.

인정 많은 나는 싸우고 나서도 저녁때가 되었으니 집에가서 어머니와 남편 저녁을 차려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딸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미 밥도 다 해 놓았고 반찬도 다 만들어 놓았으니 차려만 먹으면 될텐데… 딸의 말처럼 그래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당당하게 전화를 걸었다. “나 아직 일이 안끝나서 못들어가니까 어머니랑 두분이 먼저 식사 하세요” 차마 혼자 밥 먹는다는 소리는 못했다. 그래도 전화를 끊으면서 웬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나 참 잘했다 싶었다. 나를 스스로 위로해 주고 사랑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것 말이다.

그런데 딱히 먹고 싶은것은 없었다.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오늘은 내가 딸을 낳았던 날이니 미역국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교회가 있는 프라자건물 2층에 있는 쭈꾸미식당이 생각이 났다.

음식을 꽤 맛있게해서 남편과 갈때도 있고 혹은 손님이 오면 종종 가던 집이다. 그집은 쭈꾸미 볶음과 비빔밥 그리고 미역국이 나오는데 언제 먹어봐도 미역국이 담백하고 맛있는 집이다. 거기다가 먹음직한 달걀찜까지 한뚝배기 서비스로 만들어준다.

식당을 정하고 쭈꾸미식당으로 갔다. “혼자 오셨어요? 목사님은요?”늘 이 식당에 남편과 함께 왔기에 주인이 하는 인삿말이다. “오늘은 혼자왔어요” 라고 대답한 후 음식을 시켰다.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어서 식당안에는 손님 두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식사를 다 마친 손님들이 돌아가고 손님이라고는 덩그마니 나 혼자가 남았다. 넓은 식당 홀에 손님은 없는데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네사람이나 되었다.

나는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야 식당 운영이 어렵겠다 하는 생각이 들자 한가지 생각을 해냈다. 즉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이 식당에 손님을 여섯명만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즉시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식당에 손님좀 보내 주세요. 제가 밥을 먹고 있는 동안 손님 여섯명만 보내 주세요”

그런데 내가 한참동안 식사를 하는데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조금 있다가 식당으로 전화가 걸려와서 주인이 받는다. 음식배달 주문이었다. 요즘 식당들은 배달도 열심히 해야만 수지를 맞추어 운영을 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한사람 주문 들어 왔네”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계속 주위에 신경을 쓰면서 밥을 먹었다. 시간도 이미 저녁 먹을 때는 약간 지나갔고 누가 올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괘념치 않고 계속 기도했다 “하나님 이 식당에 어서 손님을 보내 주세요 “그런데 식당문이 삐걱 열리더니 양복입은 신사 두사람이 들어온다.

그리고 곧장 주문을 한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그 남자 손님들은 그집에서 제일 비싼 쭈꾸미철판구이2인분과 대패살 한접시와 목살한접시를 추가로 주문한다. 흠~매상좀 오르겠는걸…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고소한 달걀찜을 떠 먹었다. 그리고 계속 기도한다

“하나님 아직 여섯명 안되었어요 손님 빨리 더 보내 주세요.”이젠 정말 늦었는데 누가 올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계속 기도했다. 내 신경은 온통 식당문에 가 있다. 그런데 드디어 식당의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여자 손님 세 사람이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밥을 먹다 말고 하마트면 소리라도 지를뻔했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 “와우~여섯사람 다 응답되었다. “ 새콤달콤한 도토리묵사발 을 두어숟가락을 마지막으로 먹고나서 계산대로 갔다.

여주인 아주머니에게 돈을 내면서 “제가 이 식당 위해 축복하며 기도 했어요 제가 밥먹는 동안 손님 여섯명만 보내 달라고 기도 했지요.” 하며 씩 웃었다. 내말은 들은 주인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여주인은 “아…감사해요.” 나는 흐믓한 미소를 남기고 식당문을 나섰다.

교회로 올라왔다. 커피를 한잔 타서 마시는데 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커피 마시러 스타벅스에 왜 안갔는냐는 것이다. 나는 “응 엄마는 우리교회 카페가 더 분위기 좋아 그래서 교회로 왔어” 딸은 “호호…하긴… 그렇네” 한다.

식당에서 밥 먹으며 한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방금 만났는데 그까짓 스타벅스커피가 문제인가 그리고 남편이 나를 오해하고 섭섭한 말 한것쯤 용서해 줄 수 있지 뭐. 40년도 참고 살았는데…그리고 로아네 네식구가 다 내편 들어 준다는데…

난 이제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다. 방금 하나님을 만났으니까. 오히려 업된 기분이 되었다. 예배당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시작했다. “식당에 손님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자 즉시 응답해 주신 하나님 우리교회에 함께 예배드릴 사람도 곧 보내 주시겠네요.” 하고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동행해 주셨다. 나를 너무나 잘 아시고 내 마음에 공감해 주시는 분,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이끄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내 삶에 강력한 힘을 실어 주셨다. “내가 네 기도 다 듣고 있어” 라고 하시며 내 기분을 업(up)시켜 주셨다.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애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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