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5)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3간구,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아버지의 뜻을 위한 기도

주기도문(5)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3간구,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버지의 뜻을 위한 기도

(마태복음 6 : 9 – 13)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들어가는 말

3간구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버지의 뜻을 위한 기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의 자아 계시의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느냐, 이 양자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출발한다면 종교는 노예적이고 맹목적인 복종, 또는 달갑지 않은 의무와 내키지 않는 금욕이 되풀이되는 고통스럽고 지긋지긋한 행위가 되고 말것입니다. 그 경우 미지의 존재인 하나님의 뜻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통치권을 휘두르고 복종만을 강요하는, 독재적, 암흑적 숙명,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어떤 세력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주권적 의지만을 가진 존재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시고, 이 목적을 위하여 모든 위대하고 아름답고, 질서 정연한 만물(창조물)에 자신을 반영하시고, 인간들의 복잡다단한 세상사를 통해 역사하시고, 자신의 이름 음절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짜 넣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먼저 생각할 때,

–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 우리는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 우리는 의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선한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복종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러한 복종은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우리의 의지의 굴복은 즐거운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

– 그것은 노예적 복종이 아닌, 자식으로서의 효성의 순종이 될 것입니다.

– 그것은 자기보다 힘 있는 어떤 세력에 대한 내키지 않는 복종 대신, 사랑과 선의 근원에 대한 즐거운 순종이 될 것입니다.

–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자기 체념 대신 신뢰심 깊은 의존 행위가 될 것입니다.

– 그것은 달갑지 않은 의무의 고통스러운 억지 준행 대신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이 될 것입니다.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시작하는 사람은 노예이며, 실제로 그 뜻을 전혀 이행하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로 시작하는 사람은 아들이며 충심에서 우러난 순종을 바칩니다. 바로 이것이 주기도문 각 구절의 상호 순서가 현재처럼 이루어진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리고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간구는 “나라가 임하시오며”와 관련된 보충 간구로도 볼 수 있습니다.

줄거리

  1. 첫째로 이 간구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문구는 문자적으로 ‘아버지의 뜻이…행해지이다’입니다. “뜻”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마”는 ‘소원, 욕망(구), 의향, 의사. 기쁨. 뜻, 의지’를 의미합니다. “이루어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네데토”는 여기서 ‘행해지다’를 뜻하는 “기노마이”의 명령 과거 수동 “디포넌트”이며. ‘행해지게 하옵소서’입니다. 그리고 과거형이기 때문에 완전한 행해짐(실현)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그 뜻이 행해지는, 곧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표현을 살펴보면

(1)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요한복음 6:40에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이란 말은 그의 “소원”을 의미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디모데후서 1:9에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자신의 뜻’이란 말은 하나님의 ‘목적’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기쁘심입니다.

에베소서 1:9에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 뜻”이 ‘그 기쁘심’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사도행전 2:23에서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이라고 말하였고, 사도행전 4:28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나 “하나님…의 뜻”은 그의 계획을 의미합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살펴본바 하나님의 뜻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의사(意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하여 생각하면 나라는 그의 주권이 행사하는 영역이고, 그의 뜻이란 그 나라의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사(意思)입니다. 주의 교훈과 명령도 포함합니다.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 7:22 이하에서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범한 자들입니다.

주님은 또한 마태복음 7:21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법인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인간 구원과 그것을 통한 의와 사랑과 진리의 실현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간구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누가복음 22:32, 사도행전 23:14).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요한복음 6:38, 에베소서 6:6). 우리는 주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감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로마서 12:2, 골로새서 4:12). 이렇게 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인 의와 사랑과 진리가 완전히 실현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모든 신적 계시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곧 하나님의 존재, 성품이 알려진 연후에 하나님의 뜻이 선포됩니다. 이 순서는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몇 가지를 시사해 줍니다.

– 하나님의 뜻은 단순한 전능적 권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은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의 범위와 방향은 하나님의 이름(곧 성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상이 선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뜻, 곧 아버지의 뜻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 흑은 하나님의 뜻과 관련하여 전능한 독재자, 불가사의한 주권자, 무자비한 운명, 냉정한 숙명 등의 온갖 잔혹하고 무서운 관념을 일소시켜 버립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잘못된 관념에 의해 기독교 신앙이 상당히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경향은 성경이 아닌 우리 인간들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어떤 사람은 실망하는 체념의 어조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합니다.

힘쓰고 애써도 불가능해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이 너무 강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을 전제로 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혹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힘에 붙잡혀서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 어떤 사람은 지긋지긋한 반항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스위번은 하나님의 권능에 인간이 짓밟히는 느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베토벤은 외로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입술은 악물고 손은 부르쥐고 마치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휘두른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적대하지만 그의 힘이 너무 강해서 어떻게 할 수 없이 의지로 굴복하고 속으로 격한 반항심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3) 어떤 사람은 분한 마음을 가지고 억지로 하나님의 뜻을 복종합니다.

(4) 어떤 사람은 냉냉한 의무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5) 어떤 사람은 믿음과 사랑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이든 간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건물을 지으려 하거나 개조하거나 수선하려 할 때 기사를 찾아가서 의논할 것입니다. 그 기사는 자기의 뜻을 제시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당신이 전문가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전문가이시기 때문에 그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맡기는 것이 가장 유익한 것입니다.

뉴톤은 ‘만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단 하나의 선택의 권한을 주신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그것을 선택해 주실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계약 교파의 일을 보던 리차드 케미론이 살해되어 머리와 손이 잘렸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같은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원수들이 그 아버지의 슬픔을 더해주기 위해 아들의 머리와 손을 그에게 가지고 와서 이것이 누구의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핼쑥한 아들의 머리와 손을 잡고 거기에 입 맞추면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 아들입니다 내 귀여운 아들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주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주님은 나도 내 가족도 배반하신 일이 없고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은혜와 긍휼만을 예비하셨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W.Barlay).

여러분, 욥은 그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에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생활 전부가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사랑의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본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그의 사랑과 선하심을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지 못할 어떤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분별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하였고, 에베소서 5:17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모든 신적 계시로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그의 뜻을 계시하십니다(시편 119:105, 디모데후서 3:16).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하나로 묶어서 말한다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인간의 구원과 성도의 거룩, 즉 의와 사랑과 진리의 완전한 실현입니다. 요한복음 6:40, 데살로니가전서 4:3).

– 하나님은 섭리와 환경을 통해서 그의 뜻을 보여주십니다(잠언 16:11, 9, 잠언 19:21, 사도행전 4:28).

–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그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창세기 24:12이하).

–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통하여 그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사도행전 16장).

– 하나님은 시험을 통하여 그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12:7, 베드로전서 1:6, 7, 4:12, 13, 야고보서 1:2, 4).

– 하나님은 지혜(경험, 이성적 사고, 지식)를 통하여 그의 뜻을 계시하십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참 지식을 쌓는 수업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 7:17).

–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과 거룩하게 여기는 행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다음 사실에 주목합시다.

(1) 순종의 본질은 내적인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2) 즐거움과 사랑에서 우러나지 않은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 순종은 강제적인 일이 아닙니다.

– 순종은 기분 언짢은 일이 아닙니다.

– 순종은 하기 싫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어떻습니까?

(3) 하나님의 진리의 원리들은 모든 삶을 아주 자연스럽게 지배합니다.

그 원리들을 배웁시다. 그 원리들을 알게 되면 온갖 안식이 뒤따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는 모든 크고 작은 행위를 지배 관리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4) 신앙이 없으면 실질적인 의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도덕의 진정한 토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 내지 그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강단에서 교리보다 실제 삶에 대한 교훈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양면을 다 지니고 있습니다. 이론적, 실천적 도덕률의 유일한 토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해야 도덕적인 의로운 사회가 이룩됩니다.

(5) 실천적 순종이 없는 신앙은 불구이고 가짜입니다.

사상과 감정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신앙은 삶에 영향을 주도록 되어있습니다. 과연 신앙이 여러분의 생활을 영향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영향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아 계시의 궁극적 결과는,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됨으로 말미암아 오게 되는 궁극적 결과는 인간의 삶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치가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는 시금석입니다. 성품과 행동이 모두 중요합니다.

여기에 기독교 신앙 고백의 최종적 결과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우리 모두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참된 경외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영적 복종, 이 모든 것의 최종적 영역은 인간성의 완전한 성화와 삶의 자유로운,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독교적인 감정과 의식(conciousness)을 일상생활과 분리시키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있어서는 실질적인 신앙적 감정을 가진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현장에서는 그들이 죄를 밥 먹듯이 짓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확신, 결심과 행동 사이에 언제나 불균형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원리 원칙을 완전하게 실천하지 못합니다. 중력이라는 힘 때문에 날아가는 화살은 결국 밑으로 떨어집니다. 활의 성능이 제아무리 좋고, 목표를 제 무리 정확히 조준하고, 손의 힘이 제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활을 쏘았을 때 화살의 진로는 직선 아닌 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기계가 진공 속에서는 작동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찰력과 대기 압력이 기계에 작용하여 기계를 멈추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교리와 실천 문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신자의 순종 문제도 그렇습니다.

– 우리의 순종은 죄로 인한 중단이 있습니다.

– 유혹으로 인한 저항이 있습니다.

– 무지로 인한 결함이 있습니다.

– 연약으로 인한 실패가 있습니다.

– 피곤으로 인한 휴지가 있습니다.

– 반역 의지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행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못하고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일치나 간격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란 꾸준한 기도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꾸준한 노력과 회개로 줄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기도는 하나의 예언이며 소망의 불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합니까? 기도하고 노력해도 잘되지 않습니까? 실망하지 마십시오. 희망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고 노력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여기서도 여러분의 생활에, 가정에, 그리고 땅 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우리의 하는 일이나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아의 아버지이자 기도의 사람 죠지 물러 목사는 어떤 사업이든지 먼저 하나님의 뜻에 합의한 것인가를 기도하여 보고 시작하고 분투할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의한 것인가?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를 물어볼 것입니다. 만일에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당신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니 전혀 관계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또 끝까지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와 믿음으로 그 일을 착수하고 절대로 단념하지 마시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당신 마음에 부정한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에 그러면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모든 죄는 다 내어놓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오직 하나님을 믿으시오. 하나님을 섬기고 믿으시오. 하나님께로부터 큰 일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립시오. 만일 복이 더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오직 영원히 찬양받으실 우리의 구주 예수님의 공로만 믿고 의지하십시오.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무한하신 주님의 공로에 의지해서만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우리가 하는 사업이 하나님께 상달될 것이고, 하나님이 받으실 것입니다”(에베소서 4:l, 5:l7)라고 죠지 물러는 말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모든 바람의 총화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고상한 간구입니다.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되면 우리는 완전해지며 지극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합시다.

(1) 인간의 가장 고상한 존엄성은 순종입니다.

우리 인간도 의지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도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인간의 의지는 복종을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의 의지는 다스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 본연의 위치는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2) 하나님께 순복하는 인간의 의지는 자유와 힘과 안식을 누립니다.

① 자유에 대해서 –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지는 자유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가 뭉개지거나 흡수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순종 가운데서 자유로이 작용되기를 원하십니다. 노예상태와 그리고 죄와 악의 짐에서 벗어난 의지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의지입니다.

② 힘에 대해서 –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의지력을 강화시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죄는 의지를 억압합니다. 순종은 의지의 힘을 길러줍니다.

③ 안식에 대해서 –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의지에 안식을 줍니다.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것은 자아 의지의 투쟁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원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인간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속하는 살아있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 자유를 누리고자 합니까?

– 힘을 가지고자 합니까?

– 안식을 누리고자 합니까?

–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시다. 목숨을 다하여 순종합시다.

(3) 순종의 결과는 완전하게 가지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인간의 유익과 선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인간들과 국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준수된다면 세상의 모습은 변할 것입니다. 이 기도는 자기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는 자들이 소원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내부로부터 개혁을 일으켜 생명을 부여하며, 이것이 법률과 제도에 영향을 미치도록 만듭니다. 여기에는 모든 사회 개혁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기도를 통하여 그들의 일이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지식을 확산시키려고 노력하고, 그들 자신 하나님의 뜻과 조화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이라는 것을 배워서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있는 모든 재난과 불행은 인간이 자유를 남용하고 불순종으로 인한 것입니다. 불순종의 날로부터 이제까지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불행하다면 불순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졌다면 슬픔과 질병, 고통과 죄악과 억압과 폭력 등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의 결과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행복의 비결이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불행하다면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를 섬기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기에는 새벽기도회, 주일 예배, 수요 예배, 등등 그것에 모두 참여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이 좀 편하게 살아야지,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반쯤은 포기해버립니다.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반쯤 불행을 얻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목숨을 다해 주님을 섬긴다면 당신은 어느 때 보다도 가장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믿습니까?

다음 생각할 것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란 문구입니다. 이 간구는 외견상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을 순종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에서란 말에서 우리는 가시적인 우주를 먼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주를 주의 깊게 살펴본 자라면 거기에서 아름다움과 질서를 느꼈을 것입니다. 우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의지의 본질에 대한 위대한 계시입니다. 평화로이 떠다니는 구름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합니다. 별들은 불타고 혹성들은 회전 운동을 합니다. 하늘의 천체들이 그들의 궤도를 유지하며, 계절이 계속 반복되었으며, 인간의 필요를 위하여 땅이 그 소산을 산출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명하심에 따라 지금까지 계속됩니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있는가? 그러나 이것이 이 문구가 의미하는 전부는 아닙니다. 별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어떤 뜻을 맹목적으로 준행하며, 자기가 분별할 수 없는 어떤 세력에 의해 움직입니다.

둘째로, 유일한 참된 순종은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들의 순종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으며, 또 자신들의 삶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을 명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바다가 조류를 움직이는 달을 쳐다보듯이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늘의 이 영적 존재들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행하고 있습니다.

– 그들의 순종은 분명히 완전무결합니다.

– 그들의 순종은 죄로 인한 중단이 있을 수 없습니다.

– 연약 때문에 순종을 위해 노력하는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 유혹으로 인한 저항이 있을 수 없습니다.

– 무지로 인한 결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 피곤으로 인한 휴지(식)가 있을 수 없습니다.

– 반역적 의지로 인한 고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순종은 확실히 자유롭고 항구적이고 자발적이고 행복함이 넘치는 순종입니다. 순종은 그들의 모든 삶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존재 행위가 그들 자신들이 바라보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봉사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활동적인 삶입니다. 이 기도에서 표본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하늘에 있는 완전한 영들의 충만한 지식이나 그들의 지복이 아니라 그들의 섬김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합니까? 그 섬김을 살펴봅시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완전한 순종을 합니다. 그들의 순종은 완전합니다.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어디든지 신이 가려 하면 생물도 신의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저들이 행하면 이들도 행하고 저들이 그치면 이들도 그치는 것입니다(에스겔 1:l2, 20, 21)”. 그들은 하나님께 완전한 예배를 드립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이사야 6:3, 요한계시록 4:8).

그러므로 그 천상적 존재 양식은 오직 한가로이 속세를 떠나 아무런 일도 의무도 없이 조용하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미래의 천상적 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지극히 순수한 행복의 비밀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응에 있으며, 현세에서는 그러한 순응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짐에도 그 행복을 맛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행하는 저 하늘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복락이 있을 것입니다. 그 복락이 어떠하겠습니까?

셋째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특수 계시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요한복음 6:38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34에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39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관하여 기도하면서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를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 곧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지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에게 바라시는 최고 최후의 요구는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에 뜻에 대한 인간들의 이행이 그의 세상 역사의 최후를 장식할 궁극적 목표입니다. “주께서 주의 뜻에 따라 하늘의 군대와 땅의 거민 중에 행하시도다”라는 말씀이 언젠가는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만유가 하나님과 그리고 서로 협력하게 되고, 한 목적, 한 뜻, 한 사랑이 온 피조계에 충만하게 될 그때 우주에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조화의 소리가 울려 퍼지겠는가?를 생각하며 소망합시다.

주기도문은 모두 7개의 청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청원(소원)중의 3개는 하나님과 연관되었으며, 4개는 우리와 연관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올바른 기도란, 우리의 필요에 앞서 신앙적인 목적,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 않다면 그가 무엇을 기도하든지 그것은 그의 바람일 뿐이지 하나님과는 무관합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구한다고 해서 무엇이나 다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의 현실과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단순한 소원의 성취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기회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응답이라고 부릅니다. 이 응답이란, 소원이 성취되지 않더라도 왜 성취되지 않는가?를 이해하게 되는 깨달음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기도한 대로 되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응답이라는 말한다는 것입니다.

한 어린아이는 약을 좋아합니다. 감기가 걸렸을 때, 약을 잘 먹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평소에 아무 증상이 없는데도 약을 먹으려고 고집을 부리면 참 한심한 일입니다. 무슨 주스나 사탕을 먹으려는 것처럼 때로는 냉장고를 열고 거기 보관된 감기 시럽을 먹겠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이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고 하여서 그 약을 주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이 유아용 시럽이면 혹시 약간의 융통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만일 아이가 먹으려는 약이 독성이 있다거나 잘못 복용했을 때 심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약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그것을 주는 것이 과연 옳겠습니까?

그런데 인생은 실재로 그런 어린아이 같은 떼쓰기를 하나님께 기도라는 형식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당장 망할 회사가 눈앞에 있는데 겉모양만 보고 그 회사를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돈을 주체할 수 있는 인격과 신앙이 준비되지 못해서 돈이 생기면 곧바로 타락하기 쉬운 사람인데, 자신을 인격적으로 준비하기에는 관심이 없고 돈만 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노름판에서 좋은 패가 들어오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런 것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기도의 정신과 위배되는 것이기에 구하는 것을 받을 수 없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소망으로 해야지 욕심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우리가 미련하고 모자라서 그렇게 잘못된 기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무시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기도라는 대화를 통하여 이런 삐뚤어진 시야의 사람들에게 인격적인 만남을 요구하시고 그들이 꾸준히 기도하는 동안에 올바른 것을 구할 수 있도록 교정과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래서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 받지 못할지라도 왜 내가 받지 못하나?를 깨닫는다면 그것도 곧 기도의 응답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범사에 유익합니다. 어떠한 경우, 어떠한 사람에게도 기도는 유효한 방법이며 신앙적인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의도 혹은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예수님은 오늘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의도이고, 계획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구원의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게 하셔서라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성경이 말하는 가장 근본적인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성경은 이 구원의 방법과 의사(意思)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하여 기록되어졌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누구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의도를 아주 절실하게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성장을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아기가 아빠를 닮아가는것을 보면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말씨는 물론, 식사습관, 잠버릇, 생각과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부모를 닮아갑니다. 육신적인 부모는 사실 그리 정당하거나 올바르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이 말하지만 사실은 부모도 모르거나 지키지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그런 부모가 아닙니다. 그분은 완전하십니다. 성실하시며, 정직하시고, 사랑과 지혜가 다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아무 의심 없이 닮아가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닮아갈 수 있느냐고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의 삶과 태도와 인격을 배우면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닮아가는 과정을 신앙적으로는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 예수님의 수준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성숙한 삶을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셋째,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지으실 때에 풍성한 삶을 의도하셨습니다. 우리가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처음의 사람인 아담은 범죄하고 스스로 저주에 빠짐으로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으며, 그 풍성함은 오히려 더욱 넓고 깊어졌습니다. 아담조차 가장 단순한 율법(선악과 금지)에 의존하여 지키고 지키지 않는 것으로 그 풍성한 하나님의 뜻에 참예하였다면,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은혜로 그 풍성함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통하여 구원과 풍성하게 살아가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우리를 새롭게 한 것입니다. 이 풍성함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에 모두 적용됩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인생의 행복이 외적인 조건보다는 내적인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고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의 마음에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행복의 조건에 있어 마음이 외적인 조건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음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입니다. 오물통에 빠져 있으면서 머릿속으로 온천을 한다고 생각해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사람들이 잠시의 쾌락과 망각을 위하여 본드나 부탄가스를 흡입하는 것이나, 혹은 마약을 복용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어떤 대사는 당나라에 불법(佛法)을 배우러 가다가 밤에 목이 말라 물을 달게 마셨는데, 그것이 사람의 해골에 고여 있던 썩은 물이었다지요? 그래서 밤에는 그렇게 달았던 물이 아침에는 구역질을 하는 물이 되었으니 모든 것이 마음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서 나라의 스님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의 맛이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 물 자체에 있어 맑은 생수와 시체 썩은 물이라는 차이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마음만 바꾼다고 다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를 바꾸는 만큼이나 현실과 조건을 바꾸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생수를 마시면서도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이 행복의 조건이 마음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면 족합니다. 그러나 그가 해골에 고인 물을 먹고 있다면 그의 불행은 단지 마음의 변화만으로가 아니라, 바로 생수를 주는 능력으로 고침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초월적이지만, 현실적입니다. 성경은 부활과 심판, 세상의 마지막에 임할 천국에 대하여도 말씀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켜 천국에서와 같은 삶을 살 것인가? 에 대하여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멀리 물러나서 사람이 깨닫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분이 아니라, 사람이 돌아오지 않으면 예수님을 보내서 부르시고, 성령님을 보내서 부르시는 적극적인 하나님,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고, 이렇게 도와주시는 적극적인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왜 삶이 변화되지 못하겠습니까? 영적으로도, 육신적으로도 온전한 신앙인은 행복과 평안을 못 얻을 수가 없습니다.

넷째, 정의와 사랑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확실한 색깔을 좋아하십니다. 3원색을 좋아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는 불확실한 의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공의롭고 확실합니다. 주저함이 없습니다. 사람은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하여 깊은 고찰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판단을 하고 나서는 그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에 대하여 의심이 생겨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항상 정의롭고 공정합니다. 이 공정함이 너무 지나치면 관계를 냉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50달러 가치의 선물을 하면 나도 50달러 가치의 선물을 해야 하고, 상대방이 10달러 가치의 음식을 대접하면 나도 10달러 가치의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과는 인간미를 나누거나 교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공정한 것이지만, 애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정하시면서 사랑으로 충만한 분입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시지만, 불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뜻이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죽을죄에 사로잡힌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은 공정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가장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는가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또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 줍니다. 이 모진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기쁨과 생명을 누리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 십자가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의와 사랑은 항상 함께합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우리도 그것이 과연 정의로우며 또한 사랑에 근거한 결정인가를 물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 두 가지 진리 중에서 결코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소유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성도의 기도도 이기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는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이러한 오류에서 우리를 건져 줍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즉 우리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는 기도를 드림으로 이러한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본문의 기도문을 통해서 이기적인 기도를 지양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루기를 원하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과 더불어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사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범죄하여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멸망을 목전에 둔 인간들을 불쌍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대신 죽게 하심으로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류의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이며, 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요한복음 6:39, 40)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수모와 박해를 받으시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이 사실이 바로 복음입니다. 아직도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곳에 복음이 전파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전도의 사명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은 항상 우리의 뜻보다 우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을 힘들어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보다 우리의 뜻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은 육체의 정욕이며(베드로전서 4:2), 사탄의 사주(요한복음 8:44)에 불과합니다. 성도가 자신의 뜻만 내세우다 보면 그는 틀림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중심으로 일을 해 나갑니다. 자기 뜻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추진해 나갑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뜻을 따라 행하였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는 늘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생애를 일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6:38). 예수께서도 육체의 뜻을 따르고자 하신 적이 딱 한번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심히 고민을 하시다가 하나님께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육체의 뜻은 십자가의 쓴잔을 당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곧 육체의 뜻을 거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그는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욱 우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소중히 여겨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

본문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도의 삶을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일치되기를 기도해야 하며, 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순종의 행위를 보여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우리의 뜻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큰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잠시뿐 결국 우리의 뜻을 포기한 것이 매우 잘한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상반될 경우 자신의 뜻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으로 생각하여 그가 요구하시는 대로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를 통하여 그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순종의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소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위에 옮기는 것처럼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뜻을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순종하여 행하는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만큼 아름다운 생애가 또 어디 있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의 뜻을 순종함으로 우리의 생애가 아름답게 장식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마무리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기를 구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란 이미 이 뜻이 결정적이며 성취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것은 전능자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그것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미래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은 선포되어 드러났고, 그것은 이미 이룬 것처럼 보장된 확실성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이 하나님의 뜻을 땅에 적용하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어제까지 불평등하고 잘못된 가치관으로 방탕하던 세상이 갑자기 오늘부터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정의와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통하여 이 세상에 이러한 정의와 사랑이 적용되어지기를 원하시며, 그래서 구원과 성장을 통한 우리의 풍성한 삶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 그 결과 더욱 풍성해지는 모범을 세상에 보여 줄때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깨달으며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땅에 이루기 위하여 분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하십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이러한 책임과 확신을 날마다 새롭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는 이런 점에서 우리의 다짐과 결단이며, 또한 앞으로의 확실한 승리를 믿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하루 동안에도 흡족한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샬롬!

이 설교는 목사님들의 설교와 참고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천국 시민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