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택규 칼럼] 예배를 보셨습니까? 아니면 드리셨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말로 시작하여 말로 끝납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도 권세자의 말 한마디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또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말의 위력에 대하여 성경은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어떤 날 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나니” 즉 말에는 생명력이 있어 물질세계를 초월한 비물질인 정신세계까지도 영향을 미치며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수없이 내뱉는 무수한 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봅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 의미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되어 큰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되어 생명을 살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의 단어 한마디라도 정확한 단어를 선택하여 정확한 의미를 전달해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원죄를 낳게 된 하와를 보면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분명 선악과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고 완곡한 표현으로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창세기 3장 3절에서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염려하는 말로 살짝 변형시킴으로서 비슷한듯하나 전혀 정반대의 의미가 되어 인류의 끔찍한 원죄를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배 본다(Watch Service)와 예배 드린다(Worship Service)의 차이

‘본다(Watch, See)’는 말은 눈으로 대상을 즐기거나 감상하다는 뜻으로, 눈으로 구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그 예배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제삼자 입장에서 오직 방관자로 구경만 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나 ‘드린다(I give YOU)’는 말은 직접 자신이 그 예식에 참여하여 자기 손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의미가 있으므로 이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큰 차이입니다.

예배의 원형

예배란 하나님에게 예의를 갖추어 절한다는 것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은 인간 최대의 예의를 갖추어 하나님 앞에 순종의 제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를 경배드린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참 예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창22:2,5,12).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

오늘날 현대예배의 원형을 성경 레위기서의 성막제사 예배의식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때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산짐승의 생명과 죄를 맞바꾸는 피의 제사를 드린 것과 같이 오늘날 예배도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인 된 몸을 산 생명의 제물로 드림으로서 내 죄를 용서받고 새사람으로 거듭 태어난다는 영적부활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12장 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하였고, 요한계시록 5장 9절에서도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이와 같이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셨다고 하셨습니다.

열왕기하 17장 36절에는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만 너희가 경외하여 그를 숭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함으로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로 영광을 올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송택규 목사(성막영성 저자,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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