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효도와 장수의 상관관계

오늘은 참 쾌청한 날씨다. 벌써 계절이 가을로 접어 들고 있어서인지 하늘은 참 맑고도 푸르렀다. 세계적인 바이러스감염유행을 가져온 코로나19는 우리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우리가 얻은 것도 있다. 그것은 대기 오염이 전보다 감소하고 공기가 참 맑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아침 일찍 집 떠날 준비를 했다. 아직 어머니는 기상할 시간이 안 되다 나는 어머니를 깨워 일어나시게 했다. 내가 나가기 전에 아침을 챙겨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한 시간쯤 이른 아침식사인데도 어머니는 차려드린 아침밥을 맛있게 다 드신다.

기저귀도 갈아 드리고 내의를 속에 입혀 드렸다. 날씨가 쌀쌀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워 쉬시라고 했다. 이젠 내가 외출을 해도 남편이 시간되면 어머니를 주간보호센터 차에 시간 맞추어 태워드리면 된다. 맏며느리인 나의 일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특별히 오늘은 큰오빠내외와 함께 친정 부모님과 친정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가기로 했다. 차안에서 교제도 나누고 할겸 오빠네 자동차 하나로 움직이기로 했다. 오빠네는 하남에 살고 있다. 내가 사는 김포에서 오빠가 사는 하남 풍산역까지는 지하철만 이용해서 갈 수 있지만 시간은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여주에 있는 남한강공원묘원에는 친정부모님의 합장한 산소가 있다. 청주 가덕매화공원묘원 에는 친정할머니 산소가 있다. 두 군데를 다 가보려면 서둘러 출발을 해야 한다. 기실 산소에 가는 것은 묘지 앞에 놓인 화병에 새 꽃을 갈아 놓으러 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원묘원 에서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후손들이 다녀간 증표가 된다. 후손들이 오랫동안 다녀가지 않은 산소 앞엔 조화로 만든 꽃들이 비바람 풍상에 꽃색갈이 바래고 바래져 보기 싫게 놓여 있다. 반면 후손들이 종종 찾아보는 산소 앞엔 선명한 색상의 생기 있어 보이는 꽃들이 꽂혀 있다.

오빠내외와 함께 먼저 여주에 있는 남한강공원묘원에 들렸다. 빨간색 장미를 두 다발 샀다. 산소앞 양쪽에 있는 화병에 한 다발씩 꽂았다. 장미 꽃가지들을 하나하나 펴서 예쁘게 만들었다. 우리 오남매에게 이곳에 누워있는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부모님이 가서 계신 천국에 우리 형제들도 갈 때까지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우애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산소앞을 떠났다. 어찌 보면 간단하고 싱거운 성묘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왠지 이렇게라도 산소를 다녀가면 자식 된 도리에서는 기분이 좋아진다.

여주엔 쌀이 많이 나는 곳답게 여주쌀밥백반집이 곳곳에 있었다. 우리는 산소에 오면서 눈여겨 봐 두었던 제법 큰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은 가던 길을 유턴까지 해서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몇 가지 요리와 10가지 한정식반찬에 돌솥밥까지 음식이 모두 맛있었고 입맛에 참 잘 맞았다.

역시 교제는 식사하면서 하는 교제가 제일 풍성하다. 여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도 그만큼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일인당 17천원이 아깝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 모두 흡족한 식사를 했던 것이다.

올케언니와 내가 연신 맛있다고 음식 칭찬을 하면서 열심히 밥을 먹는 것을 보고 밥값을 낸 오빠도 기분이 좋은가 보았다. 올케와 시누이가 이렇게 한상에서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오빠가 한마디를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여유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론 기회를 만들어서 형제들을 더 자주 만나야겠다.

다음은 여주에서 70여킬로미터를 달려서 청주가덕매화공원묘원에 갔다. 그런데 할머니 산소가 주변의 산소보다 유난히 커 보였다. 당시 할머니 산소자리를 살 때 합장묘를 사둔 것이다. 더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우리동네 뒷산에 묻은 할아버지 유골을 언젠가는 할머니와 합장 하려고 두 몫의 산소자리를 사서 봉분을 해 두었던 것이다.

나는 새삼 장남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졌다. 우리큰오빠는 오남매의 장남이다. 자수성가한 오빠는 자신의 가정을 세우는 것과 함께 조부모님과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 또한 늘 함께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분들이 살아계셨을때 뿐 아니라 모두 돌아가신 후에 산소를 돌보는 일에까지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은 오롯이 장남인 오빠이다. 오빠는 장남이기에 조부모님의 사랑도 듬뿍 받았지만 사랑을 받은 만큼 책임감도 큰 것일까?

이제는 오빠도 검은 머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멋진 하얀 백발의 70대가 되었다. 오빠는 조부모님 부모님 산소를 돌보고 할아버지 산소를 곧 이장해서 할머니와 합장을 할 계획을 이야기 했다. 장남의 책임감과 의무가 참 만만치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산소에도 빨간장미 한다발를 꽂아 드렸다. 올 추석엔 할머니 산소도 부모님 산소도 전부 세트로 화려한 빨간장미로 장식을 해 드린 셈이다. 공원묘원 벤치에 앉아서 쉬면서 올케언니가 준비해온 자몽과 포도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오빠는 우리들의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은 이렇게 매장으로 산소를 썼지만 앞으론 산소를 쓰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구는 많아지고 사람이 살 땅은 적어지기 때문에 앞으론 화장해서 수목장을 하거나 강물에 띄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유골항아리를 보관해 주는 납골당도 있지만 말이다.

시내로 나와서 청주에 살고 있는 막내동생을 만나서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하였다. 동생이 소개한 식당은 한식당인데 우리는 청국장백반을 시켰다. 그런데 반찬이 많이 나와서 모두 넓은 대접을 달라고 해서 여러 나물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나의 부모님은 자녀 다섯을 두셨다. 하지만 역시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나 돌아가신 후에나 부모님에게 가장 신경을 쓰는 사람은 장남인 오빠였다는 생각을 나는 이번 성묘를 하면서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면서 인간에게 주신 첫계명은 “네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오빠는 요즘은 키보드를 집에 사놓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침에 하남에 있는 오빠 집에 잠간 들렸을 때도 나에게 한곡 연주해 주겠다고 한다. 무얼 연주하려나 했는데 오빠는 “인애하신구세주여” 찬송가를 연주 했다 . 나는 연주 장면을 동영상을 찍어서 선물해 주었다.

오빠는 그동안 교회를 잘 다니지는 않았다. 오빠가 심리적인 변화가 생겨서 마음먹고 교회를 나가면 꼭 교회에서 시험들일이 생겨서 그만두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빠를 포기하지 않고 부르시고 있는 것이다. 오빠가 가곡 등 많은 노래 가운데 찬송가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 이미 하나님이 부르시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지만 오빠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인 “네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준수하면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 말씀에 부모를 공경하면 반드시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장수하는 복을 오빠는 꼭 받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비록 지금 오빠는 암을 앓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 오빠가 정말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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