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석양이 아름다운 집

김포로 이사오기 전에 내가 살았던 집은 서울에 있었지만 작은 반지하 빌라였다. 그 집은 거실이 없고 안방과 작은방 두개가 있는 그런 집이었다. 낮에도 늘 불을 켜야만 하는 어두컴컴한 반지하집.

작은 주방옆에는 조그만 미닫이 창문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집이 반지하집이다 보니 창문을 열어 놓을 수가 없었다. 창밖은 바로 사람들이 늘 오가는 빌라 출입구길 이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이 훤히 보이는 창문밖 광경이 그리 감상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또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집안이 들여다 보이게 되는 것도 불편했다. 안방 창문도 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주차장이 따로 없이 빈공간만 있으면 어떻게든 자동차를 주차해야 하는 빌라단지이기 때문에 반지하집 안방 창문 앞에는 이웃집에서 주차해놓은 시커먼 자동차 바퀴를 보는 것이 방안에서 내다 보이는 유일한 광경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이 집을 사서 시아버님과 사시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사셨다. 이집에서만 아마 20년 넘게 사셨을 것이다. 좁은 집이지만 우리는 부모님이 사시니까 늘상 드나들게 되었다.

선교지에서 비자제한으로 돌아온 우리는 마땅히 살집이 없었다. 교회의 게스트룸을 전전 하며 살다가 청주에 내려가 유학생 사역을 할때는 남의집 문간방에 월세로 살기도 했다. 원룸에도 살아봤다.

청주에서 서울로 온 이후엔 어머니집 주변에 반지하집을 월세를 따로 얻어 살면서 어머니를 돌보아 드렸다. 그런데 장마철이 되면 집안에 온통 곰팡이가 피어서 견디기 힘든 그런 집이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져서 누군가 함께 모시고 살지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그 작은집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좀 좋은 환경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남편은 선교사가 고국에 돌아와서 발뻗고 누울 수 있는 집이 반지하라도 하나 있는게 어디냐고 했지만…

하지만 나는 좀 좋은 환경으로 옮겨 달라고 그렇게 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기회가 왔다. 친정아버지의 도움으로 새 집을 하나 구하게 되었다.

나는 복잡하고 집값이 비싼 서울 보다는 집값이 상대적으로 싸고 자연의 풍광이 여유로운 경기도 김포를 택했다. 그것도 공항이 집에서 보이는 곳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공항근처는 시끄럽다지만 우리 부부에겐 비행기 소리는 소음이 아니었다. 비행기는 선교지를 드나드는 수단이므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자주 보는 것은 우리의 선교의 꿈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나이 들어서 어딘가 정착하여 살게 되었을때 공항근처에 집을 구하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나의 세자녀 가운데 선교사로 나가는 자녀가 있다면 고국으로 돌아올때 우리를 찾아오기 쉽도록 말이다.

그리하여 김포공항에서 8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김포 풍무동으로 오게 되었다. 이파트를 분양할 당시에는 택지개발 지역인 이곳은 농경지로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이었다.

그래서 청약통장도 필요 없었다. 말하자면 요즘 하는말로 줍줍이었다. 미분양 아파트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집을 분양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다가 끝판에 갔더니 거의 분양이 다되어 남은 집이 별로 없었다.

분양원이 말했다. “8층에 하나 있고 33층에 하나 있어요. 그것도 분양받은 분이 방금 도로 내놓아서 나온 집이예요.” 남편은 “난 고소공포증이 있어서…8층이 좋을것 같아” 한다

그러나 내 안목엔 33층이 좋아 보였다. 멀리까지 보이는 뷰가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그 아파트 앞엔 작은 숲이 울창한 동산이 있고 그 동산 바로 앞엔 체육공원이 있고 그 옆엔 도서관이 지어진다고 하는것도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본 집은 제일 높은곳에 있던 집이 22층 이었지만 11층 더 높은 33층이라고 무슨 큰 차이가 있으랴 싶었다. 결국 남편이 나에게 양보해 주어 33층을 선택하였다.

우리가족은 벌써 2년째 이집에 살고 있다. 그런데 가족중 그 누구도 집이 너무 높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랜시간 반지하에 사셨던 어머니도 오히려 햇볕 잘들고 전망이 좋다면서 좋아 하신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던 남편도 너무 높아서 어지럽다고 한적은 없다. 오히려 우리집 거실에서 좌측 직선 거리로 보이는 김포공항의 불빛이 별처럼 깔려 있는 밤의 활주로를 바라 보면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바라보면서 행복해 하기조차 한다.

안개가 끼는 날이면 우리집 아래로 보이는 아파트 빌딩들이 구름 같은 안개속에 휩싸인다. 빌딩의 일부분이 안개에 싸인 모습은 마치 멋진 구름바다 속에 솟아 있는 마천루(Skyscraper)인양 환상적인 모습을 만들어 낸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멀리 계양산도 보이고 이름 모를 크고 작은 산과 숲들이 보인다. 인천송도 신도시의 50층짜리 고층 아파트의 빨간 불빛들이 반짝 반짝 빛나는 것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아파트 가까이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농경지들의 파릇파릇한 농작물들의 녹색의 벌판이 눈을 시원케 한다. 여름에 창문을 열어두면 주변의 논밭에서 개굴개굴~ 울어대는 개구리의 합창이 나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타워형의 이 집은 남서향으로 하루종일 햇볕이 든다. 특히 서향쪽에 있는 어머니의 방엔 오후에 햇볕이 끝까지 들어서 어머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오실때 쯤이면 방안은 따뜻한 온실같이 데워져 있다.

생각해보면 90세가 넘은 우리 어머니의 건강이 그만 한것도 비타민 D가 충족되는 햇볕잘드는 방을 쓰셔서일 것이다. 어머니의 방은 겨울에도 방안 온도가 25도 이하로는 잘 안내려가는 아주 따뜻한 방이다.

그런데 나는 정작 이 집에서 살면서 주방 창문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거실쪽에서만 경치 감상을 주로 했기 때문에…

주방창문도 쪽창문이 아니고 커다란 통창문이다. 그런데 나는 늘 햇살 가린다고 블라인드를 내려 놓거나 크게 바깥경치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블라인드를 올리고 주방창문을 통해 석양을 보다가 그 아름다움에 그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후로 매일 저녁이 되면 나도 모르게 석양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해지는 모습이 똑같지가 않았다.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이긴 해도 석양 무렵의 노을은 먼산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런 아름다운 노을을 매일 바라 볼 수 있다니…해질녘의 둥글고 빨간태양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서 있는 몇겹의 산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치 우리집이 미술관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분명 붉은노을이 물든 석양의 그 모습은 한폭의 그림을 방불케 하였다.

멀리 산등성이로 지고 있는 태양은 어떤때는 빨갛지만 어떤땐 짙은 홍색을 띠기도 하고 날마다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석양이 그냥 평범할때도 있지만 유난히 보는이로 하여금 쏙 빠져들게 하는 아름다움을 뿜어낼때도 있다.

그럴때면 나는 종종 저녁을 짓다 말고 감탄사를 큰소리로 내 지르곤 한다. “여보~얼른와봐요! 너무 멋지네!!” 그러면 남편은 얼른 주방 창문을 열어 주고 방충망도 열어준다 그리고 반의자인 발판을 가져다 준다. 나에게 얼른 발판에 올라가서 창밖의 석양사진을 찍어 보라는 뜻이다.

남편의 장단에 맞추어 나는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는다. 그러면서 문득 예전에 살던 반지하 빌라의 주방옆 조그만 창문이 기억난다. 주방 창문 한번 제대로 열어보지도 못하고 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씁쓸한 추억이 있어선지 석양이 아름다운 경치좋은 집을 주신것에 더욱 감사하게 된다. 우리집을 방문했던 한 성도님이 했던말이 생각난다. “선교사님 하나님이 집을 몇배로 업데이트 시켜 주셨네요.”

내가 대답한다. “그러네요 그냥 몇배가 아니라 33배네요. 우리집이 33층이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 성도님도 공감을 표한다. “맞아요 33배 좋은 집을 주셨어요.”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노후 선물로 받은 이 집에서 어머니 편하게 모시고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과 오손 도손 단란하게 오늘도 살아간다. 특히나 석양이 아름다운 주방이 있는 집에서 말이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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