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역사로 되돌린 文가, 어떻게 감당하려고!

내공부재 비주류인생들, 대한민국 다 망쳐놓고 또 남 탓 할 건가!
로베스피에르의 발톱도 못 미치는 文대통령, 과연 정체가 뭔가?



작금의 대한민국 돌아가는 꼴들을 보자니 차마 눈을 뜰 수가 없다. 입법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부여당은 드디어 5.18특별법을 법사위를 통해 강행처리했고, ‘고위공직자수사처’ (공수처)도 야당이 반대하거나 말거나 처리했다.

그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먼저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거하고, 공수처 수사대상인 검사와 판사들의 ‘미래저항’을 권력의 힘으로 단칼에 진압하기 위한 것이다.

또 수많은 부정부패와 불법행위에 관련되었을 것 같은, ‘최고통치자’의 ‘안위’를 영구히 보장해 주고, 동일진영의 권력자들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 그들만의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리게끔, 그렇게 대한민국을 재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어설프기 짝이 없는, 국가정책들의 실패로 인한 시장 붕괴는, 고통 받아온 국민들의 ‘원한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게 만들고 있다. ‘인민’, ‘민중’, 자기진영의 ‘사람’들만 ‘국민’으로 여기는 대통령의 ‘내로남불’ 언사에는 진정한 의도의 타협과 협치, 통합과 미래라는 그 흔하디흔한 ,아류정치가들의 ‘미사여구’ 한마디도 들어있지 않다.

로베스피에르 (Maximilian Robespierre)

200년 전, 1789년 7월 14일 시작된 프랑스혁명을 주도했던 로베스피에르 (Maximilian Robespierre)는 단두대에서 죽을 때까지 독신을 고집하고, 술과 담배도 입에 대지 않았던 금욕주의자였다. 사심이 없었고, 개인적인 부를 축척하지 않았던 로베스피에르를 사람들은 ‘부패할 수 없는 자’ (Incorruptible)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조실부모하고 조부모의 손에서 성장한 로베스피에르는 루소 (Jean Jecques Rousseau)의 ‘맹신자’였으며, 루소장학금으로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가난하고 무지한 인민을 위해서, 오랫동안 소위 작금의 ‘인권변호사’같은 변호사생활을 했으며, 인민의 지원으로 국민공회에 진입해, 급기야 공포정치를 주도하는 ‘공안위원회위원장’이 되었다.

1793년 루이16세의 단두대 처형

1792년 국민공회가 설립되자마자, 3일 동안 1600여명의 귀족과 성직자를 도륙했던 ‘9월 살육’의 주도자 당통 (Georges Danton)은, 프랑스를 도덕적인 국가로, 루소가 지향했던 ‘새로운 국가’ (New Nation)로 만들기 위해서 ‘공포정치’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는, 로베스피에르에 ‘반기’를 든다.

금욕주의자였던 로베스피에르와 달리, 여성편력, 낭비벽과 노름, 술과 담배를 좋아했던 당통의 쾌락주의와 자유주의는 로베스피에르의 도덕주의와 공화주의와 격하게 충돌한다.

당통 (Georges Danton)

언제나 ‘자신만이 옳다’는 로베스피에르를 당통은 고약한 심성의 ‘위선자’라고 비난하며, 더 이상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일갈한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당통을 ‘기생적 이념가’라고 비난하며, 결국 당통을 단두대로 보낸다.

이성적 자아도취에 빠진 로베스피에르는 이성을 중시하는 ‘종교제전’을 벌이고, 자신이 최고 존엄이 되는 ‘최고 존엄자의 제전’들도 만든다. 그리고 자신이 탄생시킨 제1공화국의 ‘국교’는 ‘자유평등교’가 되어야 한다고 지시한다.

당통의 처형이후, 로베스피에르는 약4개월 후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프랑스혁명의 3인방이었던 마라 (Jean Poul Mara), 당통, 로베스피에르는 1년 사이에 내외적 갈등요인들로 인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부상당한 채 누워있는 로베스피에르

가장 큰 원인은 혁명을 지지했던 프랑스의 소시민, 농민, 노동자들이 현실은 내팽겨 치고, 자신들의 혁명이상만 주장하는, 그래서 자신들의 ‘삶’을 더욱 척박하게 만드는 ‘얼치기위정자’들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자코뱅이 단행했던 귀족, 성직자, 지주들의 재산몰수 정도는 분노와 원한풀이로 어쩌면 인민들의 즐거운 ‘관전 포인트’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품최고가격제’와 같은 ‘시장의 파괴’를 주도하는, 결과적으로 인민들이 ‘공멸’할 수 있는, ‘백치’들의 정책은 인민의 삶을 죽이는 그들만의 ‘선의의 악행’이었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우유가격규제’는 단가가 맞지 않는 우유공급자들의 생산을 ‘중단’시키게 만들었다. 주식인 우유는 먹어야 살아갈 수 있었기에 여러 곳에 생겨난 우유 ‘암시장’들을 두드려 잡는다고, 암시장거래자들을 단두대로 끌고 갔다. 그러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도륙의 결과’는 시장에서 완전히 우유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사라진 우유는 우유를 원료로 사용하는 빵, 치즈, 과자류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렸고, 또 다른 이에 대한 규제와 처벌은 이들 제품도 시장에서 모두 사라지게 만들었다.

시장의 붕괴로 젖소는 사료를 못 먹어서 굶어죽고, 주식인 빵, 우유, 치즈를 못 먹는 인민들도 젖소와 같이 굶어죽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약 1만7천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이정도 되면 ‘덕이 있는 자’의 혁명세상은 완전한 ‘지옥’이나 다름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난장판은 근대국가 성립시기였던, 200년도 넘는 과거에 있었던 인류의 ‘시행착오’였다. 프랑스혁명이후 프랑스가 제대로 된 근대국가를 형성하는데 70여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그 후 인류의 시행착오는 또 다른 혁명과 전쟁의 20세기를 경험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완성으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정리’되었다.

대한민국은 이승만대통령의 1948년 건국이후, 무려 73년이 지난 작금에, 국제사회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 7번째로 ‘인구 5천만’과 소득수준 ‘3만 달러’ 국가군에 가입한 위대한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文정권에 와서, 2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는 기가 막힌 일들이 대한민국 자유시민들의 눈앞에서 버젓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인상, 52시간 노동제, 비정규직 정규직화, 여성특혜 등으로 시작하더니, 이제 임대차 3법을 비롯한 부동산규제와 막무가내식의 코로나규제 등으로 시장은 ‘붕괴’ 일보직전이 되었다. 백치들의 국가 통치는 결국 기적의 대한민국을 200년 전 프랑스 상황과 유사하게 만들고 있다.

온갖 거짓말 속에서 자신들의 ‘백치본색’을 숨겨야 하는 이들의 머릿속은 스스로 성장을 거부한 ‘양철북’의 주인공처럼, 200년 전 상황과 동일한 사고가, 마치 시계가 멈춰버린 것처럼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관념세상은 ‘양식’과 ‘상식’을 갖춘 현재의 자유인들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와 ‘문법체계’를 갖고 있다.

백치본색으로 시장을 붕괴시킨 자들의 두려움이 급기야 권력독점과 독재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200년의 시차가 있어서 그런지, 로베스피에르처럼 함부로 단두대를 설치해서, 자신들의 혁명에 저항하는, 그들 말대로 ‘덕이 없는 부도덕한 자’들의 머리들을 삭둑삭둑 자르지는 못하고 있다.

로베스피에로(왼쪽),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그저 교활하게 ‘도덕정치’와 노예적 ‘평등관념’을 부르짖으며, 그들만의 국민들을 ‘선동’하고, 요상한 정치공학과 사회공학으로 정치와 사회가 일치되는,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권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는, 그런 독재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붕괴로 인한 일상적인 삶의 파괴로 인해, 그들이 그렇게 믿었던 인민, 민중, 사람으로서의 소시민, 농민,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이해를 파괴하고 있는 ‘덕이 있는 자’들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단두대정치에 위협을 느낀 지롱드당과 일부 자코뱅당 연합전선으로 집에서 체포된다. 체포되는 순간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턱밑을 관통한 총알은 뇌를 부수지 않고 코밑으로 빠져나왔다. 입과 코가 덜렁덜렁 달린 채 비참한 몰골로 수감되었고, 그리고 그 다음날 파리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콩코르드광장 앞 단두대에서 참수 당한다.

자유대한민국의 전면적인 파괴행위는 이제 멈춰서야 한다. 그리고 文대통령도 대한민국의 제1호 국민답게 성공적으로 대통령직 수행을 완수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말도 안되는 정치적 도덕관념과 얼치기이념으로, 자유대한민국과 그 어떠한 ‘인식의 공통분모’도 존재하지 않는, 자칭 ‘덕이 있는 자’, 다시 말해 ‘강철 같은 ’아집‘으로 뭉친 자’의 ‘말로’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동일하게 전개되지 않을 까, 그래서 ‘덕이 너무 많이 있는 자’의 ‘운명’이 한편으로 몹시 걱정되기도 한다.

강량 주필, 정치학 박사
더 자유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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