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계명,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6)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부르라

 

10계명,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6)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부르라

출애굽기 20 : 1 – 17

3계명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들어가는 말

제1계명이 예배의 대상을 가르치고, 제2계명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경배의 방법”에 주어진 반면 제3계명은 하나님께 경배할 때에 드려야 할 영적 상태를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영적 상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그의 성호를 찬양할 때 헛된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신실함과 겸손함 그리고 경외의 마음”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문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되 경홀히 섬길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섬길 것에 대한 명령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경솔하고 부주의하게 사용하며, 그 이름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의 근본 의미이니 예를 들면 하나님의 성호를 빌어 맹세하거나, 하나님의 성호를 저주의 대용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금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를 주석가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신성 모독 죄”라 표현하였습니다.

셋째는, 헛된 맹세 또는 거짓된 맹세를 금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의미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 “거짓 맹세를 하지 말지니라”(마태복음 5:33, 34)는 말씀에서 더욱 밝히 드러납니다.

넷째는, 이웃과의 진실한 사귐을 명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신자가 이웃과의 사귐을 성실히 그리고 진실하게 맺지 못할 때 그것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에 누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의 제3계명인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명령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즉 이는 자신이 사랑하며 섬기는 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의 이름을 만민에게 드러내며 여호와에게 영광만 돌릴 것을 명령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 20:7) 제3계명은 여호와 성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라는 말은 곧 하나님 자신을 존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이름은 한 개인의 존재 양태를, 총체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또한 이름 속에서 한 개인의 품성 및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YHWH) *

하나님의 대한 여러 호칭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여호와”란 하나님의 대표적인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신 속성과 사역을 나타나 있습니다. 본래 그 뜻은 “그는 있느니라”라는 뜻인데 모세에게는 “나는 스스로 있는자”(출애굽기 3:14)라고 계시(啓示)하셨습니다. 그 분은 영원자로서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분은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계시자로서 스스로 나타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언약한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약속한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복된 계시가 하나님의 이름 속에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하나님, 그분은 너무도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분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읽다가 그분의 이름이 나오면 발성(發聲)치 아니하고 묵음으로 그대로 지나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그 이름 대신 “아도나이(Adonai)” 곧 주님이 라고 불렀습니다.

*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

“망령되게”란 히브리 원어로 “랏사웨”로 그 뜻은 “무익하게”(예레미야 2:30), “헛되이”(예레미야 4:30, 6:29), “허탄하다”(시편 24:4) “허사”(시편 127:1)등의 여러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그분의 이름이 공허하고 무익 된 일에 의미 없이 불성실하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계명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아야 한다는 부정적 명제이고, 또 하나는, 긍정적 명제의 함축입니다. 이 계명의 총체적으로 교훈하신 것은 혀를 조심하게 사용하여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혀는 길들이기 어려운 지체입니다. “혀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라고 했습니다. 혀보다도 더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몸의 치제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받아 가지게 된 것은 혀를 재갈 물려 좋은 처신에 묶어두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니라”(마태복음 12:36-37)고 하였습니다.

줄거리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언제나 그 자체가 하나의 뚜렷한 계시적 성격을 지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신 모든 호칭을 통해서 자신의 신성 가운데 있는 어떤 속성을 계시하셨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부모의 희망에 따라서 기도 문구나 예언의 의미로 지어졌었습니다. 이 원칙과 비슷한 어떤 점이 하나님의 이름에도 해당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알리신 새로운 이름이나 명칭을 통해서 그래 그때마다 하나님의 본성이나 섭리 방법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배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는 이 셋째 계명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상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 그 성호를 통하여 자신의 속성을 계시하셨다는 점과 이스라엘 백성 역시 그 성호를 통하여 하나님을 이해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계명에 대한 이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마땅히 그 이름의 의미와 의도에 맞는 방법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 이름 속에 내재된 의미와 의도를 무시하고 그 이름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 셋째 계명을 깨뜨리는 범죄 행위입니다. 이사야 48:1을 보십시오.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성실하지 아니하고 의로움이 없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는 너희는 이를 들을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나 성실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나 의로움이 없는 이런 태도야말로 아주 명백하게 이 계명을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 이름에 담겨 있는 계시의 내용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셋째 계명을 어겼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7:22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서도 사람들은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권능을 행하는데 주의 이름을 사용하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주님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 계명이 경고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오히려 신성 모독의 교묘한 형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본래 정하신 합당한 방법대로 사용하지 아니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내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계시의 내용에 충실하지 아니할 때 실재로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 원문에는 죄 없다란 표현이 아니라 깨끗하다는 말이 이 구절에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 본래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그를 깨끗하다고 판결하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실로 엄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바꾸어 생각하면 도덕적으로 깨끗한가를 알아보려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됩니다. 즉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진실되이 사용하느냐 망령되이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깨끗하거나 부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 즉 의심스러운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한 태도를 취하느라고 하나님의 이름은 빼고 얘기하는 사람이, 항시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생활에서는 늘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깨끗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많습니다. 이것은 사실 매우 엄격하고 두려운 테스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지를 즉 깨끗한지 부정한지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이 주제를 아주 잘 밝혀 줍니다. 물론 주님은 몸소 드리신 그 기도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기도-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를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우리 또한 드려야 하는 이 기도를 깊이 음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단순한 암송으로는 이 기도가 지니고 있는 참된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9, 10에 나오는 이 기도를 시작하는 간구를 주의해 보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나라이 임하옵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한글 개역은 이 전체 문장 증간에 마침표가 없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필시 이것은 구두점이 잘못 찍힌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에 있어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행위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기원이 있은 뒤에, 세폭의 병풍처럼 이어진 세 마디의 간구가 있고, 이어서 바로 뒤에 있는 한 가지 간구만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세 마디 간구 전부를 꾸며 주는 한 문장이 세 가지 간구 앞에 선행되어 나오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 문장을 분해하여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이루어지이다.

즉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는 구가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말만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와 “나라가 임하옵시며”을 다같이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주기도에 나타난 이런 서술들 즉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과 나라를 임하게 하는 것 그리고 뜻을 행하는 것은 모두 동일한 사실이 각기 다르게 표현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써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존경한다는 의미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이름들 중의 하나는 왕이라는 칭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권에 복종할 때에야만이 왕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명칭은 아버지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할 때에야만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칭호를 부를 때는 그 이름에 합당한 행위가 뒷받침 되어야만이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지 않게 일컫는 것이 됩니다.

셋째 계명의 현대적 적용

오늘날 사람들은 세 가지 방법, 즉 신성을 더럽히는 언행과 경솔함 그리고 위선으로서 셋째 계명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불경스럽게 맹세하는 죄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것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조심해야 할 습관으로서 흔히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짓는 죄입니다. 악은 정서의 불안정 뿐 아니라 지성의 결핍 때문에도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때 맹세할 수 있는지를 바로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아주 부패한 환경에서 태어났기에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자주 해왔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청결한 환경 가운데서 자라났으면서도 그와 같은 습관에 빠진 사람들보다는 훨씬 죄가 작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자신들이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에 관계된 모독적인 욕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많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빈번하게 사용되는 욕설 가운데 “천벌을 받을 녀석”(God damn you)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누가 자꾸 자기를 애먹이면 즉시 이런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짓입니다. 왜냐하면 그 욕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정말 그처럼 되기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욕을 하면서 정말로 그 욕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이 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해주시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 일을 하나님 보고 하라고 비는 모순된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구체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는 가장 충격적인 양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해주시기를 원하지 않는 일을 하나님께 하라고 요구할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하시지 않는 일을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결코 저주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실 수 있다는 생각은 이교적인 두려운 견해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구원의 일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의 영적 자살 행위로 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능동적으로 사람을 버려서 멸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영원히 떨어져 나가도록 하는 일을 하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빛되신 하나님 없이 지냄으로 길을 잃어버린 자가 완전한 어두움 가운데 들어가는 끔찍스러운 일은 순전히 그 사람 자신의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제 발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강제로 어둠에 들어가는 사람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강제로 사람을 어두움에 들여보내는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하신다는 그릇된 생각은 사람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씀으로써 그들 마음 속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탁월한 모든 성품을 모독하는 죄악된 발상입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신성 모독적인 말에 들어 있는 그릇된 견해는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신관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 영향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상을 타락시키고 혼란시킵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욕을 하는 습관에 빠진 사람마다 거의 자신도 모르게 그 욕설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데, 그들은 오늘날 우리 귀에 천등 소리처럼 울리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시내산에서의 말씀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또 다른 형태가 사회 여러 곳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경박스럽게 사용하는 일로서 다름 아닌 하나님에 관해 농담을 하는 행위이나.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농담들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얘기들은 사람들이 지옥 불을 피하듯이 피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거룩한 것을 거룩히 여기지 않고 경솔하게 생각할 때는 언제나 그 마음과 의식에 악한 영향을 되받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존경심과 경외 의식을 스스로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거룩한 의식이 없이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것도 불가능하며, 받으시기에 합당한 봉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이름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린 사람은 철저하게 부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떨지 않는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바대로 예배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움을 행하지도 않습니다.

세번째 계명을 깨뜨리는 여러 유형 가운데 아주 교묘한 마지막 형태는 “주여 주여”하면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저지릅니다. 행함이 없는 기도는 불경한 짓입니다. 존경하는 마음이 없이 드리는 찬양은 셋째 계명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사욕을 품은 채 헌금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다르게 말해 보겠습니다. 교회내에서 행해지는 신성 모독은 세상에서 행해지는 신성 모독보다 한없이 더 악합니다. 성당에서의 신성 모독은 빈민굴의 신성 모독보다 훨씬 더 악합니다. 그러면 교회와 성당에서 신성 모독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습니까? 실천이 따르지 않는 외식적인 기도, 하나님을 찬양하기는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그에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의미가 상실되는 찬양, 이러한 기도는 신성 모독이며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범죄 행위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웅변적 말솜씨와 미사여구를 사용하고 경건한 태도로,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설교하고 기도하며 찬송하고서 집으로 돌아가 만약 이 계명들 중 하나라도 깨뜨린다면 그 사람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모독하였던 것입니다. 설사 그가 세상은 속일지라도 전지하신 하나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면,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진실함이 없다면 차라리 그는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이 셋째 계명을 가장 철저하게, 그리고 아주 두렵고 끔찍하게 깨뜨리는 형태는, 바로 자기가 한 신앙 고백대로 전혀 생활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신성을 모독한 자들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깜짝 놀랄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생활하면서 말의 실수를 후회하여 입을 다물겠다는 맹세를 해본 적도 없고, 신성을 모독하거나 저속한 말을 사용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오히려 이런 일에 구애받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런 사람들이 아주 노골적인 신성 모독자보다 오히려 더 자주, 더 무섭게 이 셋째 계명을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입술로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신앙 고백을 하면서도 생활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공공연히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고백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범할 수 있는 일로서 아주 교묘하고 두려운 형태로 셋째 계명을 깨뜨리는 행위는 바로 이와 같은 위선입니다.

가장 간단한 음절이면서도 하나님의 마음과 능력과 사랑을 가장 많이 압축시켜 넣은 최상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옛부터 전해진 메시지로 다시 돌아가서 그 음성을 들어보자.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바로 그 이름은 원래 하나님이셨으나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자의 이름 예수닙입니다. 여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에 관해 노래하면서도 자기 죄에서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그도 예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자이며 이 셋째 계명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구속주로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칭찬하며, 그의 가르침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의 행동을 비판도 하지만 그의 모든 언행을 장려합니다. 그러나 그는 죄에서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인 것입니다. 인간이 부를 수 있는 최상의 이름 즉 인성과 신성을 담고 있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신앙의 대상으로, 그리고 악에서 구원하는 표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차라리 그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의미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모든 사람이 진실로 사랑하며, 구원을 위해 부르는 의미로 쓰이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람들이 그 이름에 대해 이렇게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죄수들의 족쇄를 깨뜨리시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힘없는 자들에게는 능력을

죽은 자들에게는 생명을 주신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경우 *

  1.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그리고 불손하게 말할 때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신명기 28:58)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시편 50:1) 제자들도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할 때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능하신 선지자이여늘”(누가복음 24:19)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왕들의 이름을 언급할 때에는 그들에게 존귀한 명칭을 붙여 줍니다. “폐하(Excellent majesty)”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의 무한한 위엄에 합당한 성스러운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말하여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공언하면서도 그것과 일치하게 살지 않을 때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디도서 1:16)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말과 생활이 서로 모순될 때, 고백의 가면을 쓰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그리고 불결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며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로마서 2:24)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헌하는 유대인들이 파렴치한 것은 이방인들이 보았을 때 이것을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악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으나 행동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것입니다. 우리도 믿는 모습을 가지고 행동으로 하나님을 바로 나타내지 못하면 이 계명을 범하는 것이 됩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잡담에 사용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말끝마다 그의 이름을 끌어들여 “오! 주여, oh God. oh Jesus, 하나님이 내 영혼을 구원하시겠거니와”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비록 입으로는 하나님을 모셨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마귀를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성호를 빙자하여 잡담에나, 자신을 변호하는 말은 하나님의 성호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성호가 욕 속에 들어 있는 경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서양의 God, Jesus, Moses 등등의 이름이 붙어 있는 말은 모두 욕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oh My God입니다. 예배가 경홀히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업신여김을 받으니까 나중에 그 영광스러움 이름이 변하여 욕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학교에 가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욕이 벌써 생겨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을 “결코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1. 하나님을 우리의 입으로 경배하고 마음으로 시인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면”(잠언 23:26)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은 신앙의 주체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 마음을 세상에 빼앗길 때 우리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이사야 29:13)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향하여 호세아 선지자는 “저희가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호세아 4:8)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는 때로는 신앙적인 맹세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솔하게 맹세를 하여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마태복음 5:34)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본 의미는 경솔하고 죄스럽게 맹세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결과를 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그래서 맹세에 대하여 신명기 기자는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명기 6:13)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는 사소한 맹세를 잘합니다. 정말로(faith)또는 맹세코(by the mass)같은 것입니다. 마귀는 두개의 거짓 안경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의 눈앞에 갖다 놓습니다. 하나는 작은 안경인데 이것으로 보면 죄는 너무나 작게 보여서 자기 눈에 띠지 않을 정도이며 이것을 마귀는 지금 막 죄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눈앞에 갖다 놓습니다. 또 하나는 큰 확대경인데 이것으로 보면 죄는 너무나 크게 보여서 용서받을 수 없으며 마귀는 죄를 짓고 난 후의 사람들의 눈앞에 갖다 놓습니다.

  1. 악한 일을 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압살롬은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컨대 나로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사무엘하 15:7)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이루겠다고 한 이런 핑계는 다만 그의 반역죄를 가리기 위함 이였습니다. 어떤 악한 행동이 신앙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도적질할 의도를 품고 성전에 들어와서 “저는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예레미야 7:10-11)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주님의 이름이 악용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 됩니다.

* 경고의 말씀 *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십계명 중 “…하지 말라”로 금지된 계명은 8가지 계명입니다. 그 중에서도 만일 어겼을 경우, 그 처벌 규정이 명시되어 있는 계명은 2가지(제 2, 3계명) 계명입니다. 하나는, 우상 숭배의 금지 계명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성호를 오용 금지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계명은 모두 인간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치 않고 무시하거나 도전할 때의 경우입니다.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란 말씀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말로서 일종의 강력한 경고입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들이 벌 받지 않은 채로 아무런 대가 없이 살 수 있게는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표현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신명기 24:16)라고 하였으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말라기 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리우스파 감독 올림피아스는 성 삼위일체를 욕하고 모독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세 개의 불빛이 그를 쳐서 태워 죽였습니다. 쥴리안 황제의 관리 휄릭스는 성찬식에 사용된 성물을 보고 그리스도를 조롱하여 “마리아의 아들들이 얼마나 귀중한 그릇으로 섬김을 받는가 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불손한 입으로부터 피를 토해 내기 시작하여 그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전파하여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십계명 중에서 제3계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결여된 불경스러운 죄를 금하시며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중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의 문자적 의미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벼이 여겨 함부로 들먹이지 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의미가 시사하고 있듯이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어 일컬어지는 일이 없도록 항상 경외하는 신앙으로 우리들 자신을 준비하고 다스려야만 합니다.

3계명이 금하는 것

그러면 구체적으로 제3계명이 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 20:7) “망령되이”라는 말은 “솨웨”라는 단어인데 공허하게, 소홀하게, 혹은 생각 없이 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n vain”, 혹은 “misuse”란 말로 번역했습니다. 아무 의미 없이, 무익하게, 혹은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석가인 매튜 헨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사례를 몇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위선적인 사용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도 없으면서 “주여, 주여”한다든지,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는 행위입니다. 마음은 딴 데 가 있으면서 겉으로만 참석하는 예배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어지리라.”(이사야 29:13-14)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항상 하나님을 거론하는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둘째는, 하나님과의 약속 위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행하기로 약속해 놓고 이행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하게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전도서 5:2-6)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예레미야19:1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따라 나느니라.”(마태복음 5:34-37)

셋째는, 경솔하게 아무 의미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말로 한다든지, 상투적인 말이나, 모욕적인 언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에 하나님을 빙자하는 것이 많습니다. “oh my God!” “Jesus Christ!” “Christ!” 저는 처음 이런 말을 듣고 미국 사람들은 참 신앙이 좋은 줄 알았어요. 심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부릅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은 욕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맙소사!”, “제기랄!”정도의 표현입니다. 왜, 그런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합니까? 매튜 헨리가 지적한 것 외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사례를 여러 가지로 말씀합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직무를 태만히 할 때에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생각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말라기 2:2,5-9)

예레미야 선지자나 예수님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인간적 교훈을 하나님 말씀으로 위장하는 행위 역시 명예 훼손으로 간주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예레미야 14:14)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는 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태복음 24:5)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1. 여호와의 이름

1) 여호와의 이름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 속에서 오직 홀로 계시며 스스로 계셔서 천지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 담겨 있는 말씀으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창조, 통치, 심판의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여호와 외에는 결코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는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이러한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을 섬길 때 오직 그분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경배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없을 때 우리는 경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거나 가증스럽게 한다거나 불경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덴 사람들을 향하여 바울이 책망했던 때와 같이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경배하는 가증스러움을 볼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18:13). 둘째, 하나님의 이름이 경솔하고 성급하게 남용되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성급하게 맹세하고 지키지 못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스럽게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1.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1) 개인적인 경우

우리는 간혹 하나님의 이름이 개인의 신앙을 미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됨을 보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무례하게 부르는 경우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이름을 우상들의 이름과 함께 무분별하게 부르는 것도 이러한 경우입니다. 셋째, 아무 쓸데없이 마치 인간의 무의미한 행동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입니다. 넷째, 자신들의 신앙을 돋보이려는 마음에서 미화의 도구로 부르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이성이 의식하고 있는 의식 밖에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기에 무분별하게 부르거나 의식 밖으로 하나님을 내어 모든 행위 또는 자기 현시에 도취되어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이름까지도 동원하기를 서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은 결코 죄 없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2) 대중적인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중적인 화재나 오락 곧 농담에 활용하여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이 말씀으로 고무되고 또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에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있는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우리의 양심과 마음의 본성에 고결하고 귀중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이 대중을 위한 오락의 농담으로 활용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결코 없다고 아니 하십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날의 심판에서 분명 그 죄 값을 물으실 것입니다

3) 교회적인 경우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영광이 나타나야 할 교회에 거짓 교리가 성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어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 곧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공동의 책임을 져야만 심각한 문제입니다. 더욱이 진리가 증거되고 구원의 메시지가 증거되는 모임이 되어야 할 교회가 인간적인 친교가 이권의 상업적 모임으로 가르치심으로 듣는 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경배하지 않고 전혀 다른 이상을 추구한다면 이 또한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사실 그대로의 말로서 당연한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는 분명히 저주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말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도 하나님의 가르치심으로 거슬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7-21절 말씀에 있는 가르치심대로 우리는 오직 그들에게 선(善)을 쌓음으로 선한 신앙으로 악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무리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합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지 말라든지, 사용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위하고, 또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이런 구절을 외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거룩하게 될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하나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게 해 달라는 말입니까? 아니면, 교인들이 하나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바로 나 자신을 가리켜서 하는 기도입니다. 즉, 나의 삶을 통해서,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예를 높이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내 인생에는 하나님의 명예가 걸려 있습니다. 내가 바르게 살면 하나님의 명예가 높아집니다. 내가 엉터리로 살면 하나님의 명예가 손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명예를 높이도록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그 책임을 감당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주기도문의 첫 번째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를 많이 합니다. 건강을 위한 기도, 자녀들을 위한 기도, 사업을 위한 기도, 직장을 위한 기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그러나 이 모든 기도보다 먼저 할 기도가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이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 때문에 금식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런 기도 때문에 밤새워 심야기도 하신 적이 있으세요? 젊은이들이여, 내 인생의 진로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이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내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명예를 높이게 해 주옵소서! 아멘!

둘째로, 하나님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내산 율법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명기 6:13) 믿음 없는 서약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신실한 서약은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서약을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의 서약을 지켜 주시고, 사도 바울의 서약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신실한 서약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시시껄렁한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 말고, 신실한 신앙을 위해서, 혹은 바른 삶을 위해서 서약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가 한 서약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할때에도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십시오.

쓸데없는 욕심으로 내 이름 사용하지 마십시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태복음 18:5) 귀신을 쫓아낼 때에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십시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마가복음 16:17) 예배 열심히 드릴 때마다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십시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20) 정의를 위해 박해 받을 때에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태복음 10:22)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태복음 19:29)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할 부분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한복음 14:13-1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한복음 16:24)

오직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사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3계명의 정신입니다. 제3계명을 위반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죄를 묻겠다고 하셨습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제3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진정한 복이 따라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라기 4:2) 마음껏 뛰고 즐기는 삶이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주어진 삶의 현실 가운데서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함께 생각해봅시다.

3계명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과 내 삶 속에서 적용해야 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강해는 목사님들의 설교와 참고 문헌들을 인용하여 편집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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