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훈 칼럼] 예수님,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여승훈 목사(남가주 보배로운교회)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의 기간동안 예수님으로 부터 뛰어난 가르침을 배웠고 놀라운 기적들을 목격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아 죽이기 위하여 보낸 무리들에 의하여 체포 당하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3년간 예수님의 뛰어난 가르침을 배우고 놀라운 기적들을 목격한 제자들의 행동이 너무나 모순되어 보이지 않습니까? 제자들 정도라면 목이라도 내놓는 각오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까지도 함께 가겠다고 나섰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제자들의 그런 모순된 행동의 배경에는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에 대한 믿음의 인식이 없었기 때문 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뛰어난 가르침과 놀라운 기적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뛰어난 가르침에 대해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배우려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목격하고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현대 교회 안에는 그런류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관심을 갖고 듣고 배우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기적을 간절히 바라며 사모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성경공부와 제자훈련도 받지만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에 대한 믿음의 인식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지식적인 동의는 하지만 믿음의 고백이 없습니다. 믿음의 고백이 없이 단지 지식적인 동의에만 그친다면 이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교회를 다니고도 영생을 얻지 못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에 대한 이유는 우리가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것에 직결되는 문제 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혹 어떤분은 그렇게 기초적인 질문을 하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기초 진리가 모든 신앙의 뿌리가 되는 최고 경지의 진리가 됩니다. 

20세기 기독교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담임목회 10년차에 기독교 기초 진리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영적 씨름을 거듭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기독교 기초 진리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쉐퍼 박사는 사모님과 함께 알프스 산 기슭에 가서 라브리라는 공동체를 세워서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젊은 지성인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기독교 기초 진리와 관련한 몇가지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하여 답해 주는 형식으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세상에 오셨습니까?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인자의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준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 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결과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준 것입니까? 예수님이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요한복음 10:10). 

여기서 생명은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영생을 의미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것에 직결 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믿음의 인식이 없이는 영생도 천국도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믿음의 인식 없이는 평안도 소망도 안식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생을 얻는 열쇠와도 같고 천국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고 평안과 소망과 안식을 얻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단지 지식적 동의로만 아는데 그치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열쇠 없이 현관문 앞에 서 있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디서 영생을 얻고 마음의 평안과 소망과 안식을 얻을수 있겠습니까?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모든것을 얻을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기독교 진리의 최고봉 가운데 하나 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엘리트 지성인이었던 사도 바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알기로 작정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고 선언 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에 이끌림을 따라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던지면 성령께서 나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 앞에 우리의 가슴을 적셔 내리는 은혜를 눈물을 뜨겁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은혜의 눈물을 흘리고 싶은 것이고 보고 싶은 것이지요. 

오늘도 이렇게 외치고 선포하며 나갑시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 나의 삶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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