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누가 결혼기념일을 챙겨주는가?

중요한 날인데 난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그날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라는것을…아침에 큰딸이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 케이크 큰것으로 맞추었어요. 우리 함께 축하해요.” 한다. 그때까지도 나는 “무슨 날인데 왠케이크는?“ 했다.

그런데 아침에 남편이 예쁜생화꽃다발을 내민다. “여보! 나와 결혼해주어 고마워요.”하면서… 그제서야 나는 “아하~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었구나 깜박잊고 있었네” 정말 여러 바쁜일들이 계속 있었기에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남편의 꽃다발 공세에 나는 감격했다. “당신은 기억하고 있었군요 난 잊고 있었는데…” 그러자 남편은 갑자기 허허 웃으면서“실은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우리결혼기념일인것도 잊고 있었는데 어제 큰딸애가 귀띰해주지 뭐야“ ”아빠! 엄마에게 줄 꽃다발은 준비해 두셨어요?“하고 말이지.

남편에게 꽃다발 선물을 받고 아침부터 기분좋아하고 있는데 딸이 문자를 보내왔다. “아빠 엄마 요 근처에 멋지게 꾸며 놓은 ‘피아자카페’라는 유럽풍식당이 있는데 점심 먹으러 가요.“ 한다. 곧이어 사위가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아버님 어머님 결혼기념일 점심은 사위가 쏘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 결혼기념일은 마침 큰사위의 생일이기도했다. 나는 카톡에 올려져 있는 사위의 받고 싶은 물건 위시리스트 가운데 서 하나를 골라서 망고를 한상자 생일선물로 보내 주었다. 그리고 저녁에 함께 케이크를 자르면서 축하 하기로 하였다.

점심시간 식당에는 12시에 도착했는데도 벌써 여러명의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평소 같으면 10분~30분 기다리면 식사할 수 있었다는데 그날은 단체손님까지 있어서 우리는 꼬박 한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겨우식사를 할 수 있었다.

카페안은 성탄절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났다. 여러개의 커다란 성탄트리와 예쁜크리스마스 장식, 따뜻한 벽난로등으로 꾸며져 있어서 한껏 성탄과 연말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딸이 우리 부부의 기념사진을 여러 곳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찍어 주었다.

드디어 우리가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부채살스테이크, 치킨텐더샐러드, 갈비필라프, 크림파스타가 나왔다. 그런데 배고픈김에 먹어서만이 아니고 음식의 맛이 아주 수준급이었다. 좋은 일급호텔에서나 맛볼 수 있을듯한 음식들이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자 큰딸은 이번엔분위기 좋은 커다란 커피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3층으로 되어 있는 시원스럽고 안락한 의자들로 잘 정돈되어 있는 카페는 커피도 맛있었지만 함께 주문한 케이크도 아주 맛있었다.

딸과 함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일정을 흐믓하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이 먼저 말했다. “역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젊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해”그말에 내가 응수했다. “그러게 말이예요. 우린 이런 멋진식당을 알지도 못했는데 말이지요.”

집에서 좀 쉬다가 저녁엔 딸네집으로 갔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일학년인 큰손녀 로아의 지도아래 한참 생일축하 데크레이션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로아는 동생들과 오색풍선을 불어 벽에 붙이고 한참 제아빠를 위해 깜짝놀라게해줄(서프라이즈)생일축하를 위한 장식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현관벨이 울리고 사위가 퇴근하고 돌아왔다. 현관으로 마중나간 로아가 제아빠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손을 잡고 인도해서 거실로 왔다. 예쁜 생일장식 데크레이션 앞에서 로아가 “자, 아빠 이제 눈을 뜨세요!” 한다. 곧이어 터져나오는 사위의 감탄사와 환호성이 집안 가득 즐거움을 퍼뜨린다.

하하호호… 아이들은 즐겁고 어른들은 기쁨으로 충만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생일을 맞은 당사자가 촛불을 꺼야 하는데 옆에 있던 꼬마삼총사가 앞다투어 경쟁하듯이 호호~ 불어서 촛불을 모두 꺼버린다. 우리 모두는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우리부부의 결혼43주년기념과 한날 생일을 맞은 큰사위의 생일축하까지 모두 마치고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문득 오래전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서울의 묵동에서 한교회의 전임전도사로 사역하며 살때의 일이다. 그때도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날이었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큰딸이 오천원이 든하얀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아빠 엄마 결혼기념일인데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가서 차 마시고 오세요.” 라고 하면서 또 주문하기를 “아빠는 정장 입으시고 엄마도 예쁜옷을 입고 나가세요.” 한다.

그때 나는 아직 초등학생인 딸이 참 성숙하다고 느꼈었는데… 그딸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아빠엄마의 결혼43주년기념일을 챙겨 주고 있다. 나는 그동안 결혼기념일을 잊은적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여러 바쁜일정들로 인해 당사자인 남편과 나도 잊고 지나가려는 결혼기념일을 말이다.

얼마전 제주일보 논설위원이 쓴글을 보니 “노부모가 가장많이 만나고 전화하는 이는 ‘맏딸’이라는 연구보고가 있다“는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 그는 “노부모로선 맏딸이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싶다.”라는 말로 글의 마무리를 짓고 있다. 딸애가 태어나던 그 아름다웠던 11월의 가을이 생각난다. 딸을 낳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든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글.사진 나은혜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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