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추억을 되살려준 대구 여행

사진: 안경모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도 앞에 있고 해서 손주 아이들을 보러 대구에 갈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나는 딸의 산간을 이유로 또 손주들을 돌봐 주러 두어번 대구를 다녀왔지만 남편은 작년 8월 태어난 막내 손자 조이를 아직 한번도 안아보지 조차 못했었다.

그런데 단순히 손주들을 보러 내려간 대구행이었는데 뜻밖에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구 사는 아들이 차를 가지고 동대구로 마중을 나왔다. 마침 점심때 였으므로 아들은 음식을 맛갈스럽게 잘하는 대구맛집거리에 있는 전라도식 한식집으로 안내를 하였다.

몇가지 맛갈스러운 요리와 돌솥밥에 된장찌개 눌은밥과 숭늉까지 구수하게 잘 먹고 다시 아들의 차를 탔다. 아들은 “아빠 엄마 기왕 대구 오셨으니 가청댐을 한번 드라이브 시켜 드릴께요” 한다.

숲속으로 차가 달리고 나는 아들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녹음이 짙어 지려 하고 있는 녹색숲과 나무와 길들을 몇커트 사진을 찍었다. 자동차로 가청댐을 한바퀴 돌면서 눈호강을 하고는 시내로 다시 돌아왔다.

디저트로 커피를 한잔 할 계획이었으나 내가 팥빙수를 먹자고 제안을 했다. 서울보다 더운 대구는 벌써 날씨가 더웁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 날은 디저트로 커피 보다는 팥빙수가 좋을 것이었다.

수성못 근처에 ‘설빙’이 있어서 차를 주차하고 들어 갔다 엘리베이터 없는 2층은 꽤나 높았다. 일직선 계단이었다. 계단을 한참 걸어 올라가니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네”라는 붓글씨체의 문구가 올라 오시느라고 수고했다는 듯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인절미 팥빙수와 망고과일빙수가 함께 있는 반반빙수를 한그릇 시켰다. 시키면서 팥을 매우 좋아하는 나는 팥을 추가로 주문했다. 역시 설빙의 팥빙수는 꽤나 맛있었다. 시원한 망고빙수도 향기롭고 좋았다.

다시 아들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호텔수성’ 으로 대구에서는 매우 유명한 호텔이었다. 역사가 오래된 호텔이라서 박정희 대통령이 머물기도 했다는 무궁화 다섯개짜리 호텔이었다. 호텔을 새롭게 리모델링해서 호텔신관도 지어져 있었다.

신관 입구 옆에는 폭포수를 설치해 놓아서 시원한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대구 사는 자녀들이 그동안 우리 부부가 할머니 모시느라고 외출 한 번 여행 한 번 제대로못한 것을 고려하고 또 지친 몸을 좀 쉬라고 배려해서 준비한 모양이었다.

호텔 수성 주변에는 바로 수성못이 있어서 호숫가를 산책하기 딱 좋은 곳이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호수 위로 배도 탈 수 있었다. 호텔 뒤로는 숲세권이어서 공기 좋은 관광지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묵을 객실로 예약된 방은 가장 높은 충이어서 숲이 한눈에 보이는 경치 좋은 곳이었다. 특별한 것은 수년전에 호텔 수성에서 온천수를 개발해서 객실마다 온천욕을 할 수 있도록 미니풀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호텔들은 욕조를 대개 욕실 안쪽에 만들어 놓는데 이곳은 호텔방 창문쪽에 욕조 정도가 아니라 일반 욕조의 3~4배 크기의 미니 온천풀을 배치해 놓았다. 객실에서도 온천욕을 하면서 숲속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눈으로는 녹색일색인 푸른 숲과 나무를 바라보면 그야말로 힐링이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을 것이다. 육각형의 우묵한 나무로 만든 그릇이 있어서 무얼 하라는건가 했더니 미니 풀 위에 띄워 놓고 음료수를 놓고 마시는 용도였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포도주병과 유리컵을 올려 놓고 물에 띄워서 운치를 즐기겠지만 술을 하지 않는 우리는 따끈한 녹차 두 잔을 유리컵에 담아서 물에 띄운 나무그릇에 올려 두고 마셨다. 남편이 감미로운 음악을 켜두어 힐링을 강화시켜 주었다.

저녁은 호텔 근처의 손칼국수 집엘 갔다. 가볍게 먹을 식당을 찾다가 찾다가 결정한 곳이다. 관광지답게 치킨집과 고깃집들이 많았다. 손칼국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그 집은 보통 칼국수 집이 아니라 방송에 나온 맛집 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격이 비싼편도 아니었다. 칼국수 한그릇 7,000원이니 말이다. 따뜻한 칼국수를 먹고 우리는 수성못을 산책 하러 갔다. 일교차가 심해서 낮에는 더웠지만 밤에는 쌀쌀했다. 하지만 춥다고 모처럼의 데이트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목에 둘렀던 긴 스카프를 풀러서 머리에 쓰고 목을 감았다. 훨씬 따뜻해졌다. 수성못에 설치된 연주할 수 있는 장소에는 두군대나 음악회를 하고 있었다. 한쪽은 ‘찾아가는 음악회’라는 명제로 트롯트 쪽이고 다른 한쪽은 ‘열린음악회’라는 제목으로 공연과 춤과 노래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호수가를 산책 하던 중이었지만 중간 중간 잠시 발을 멈추어 서서 노래를 들어 주고 공연을 봐 주고 박수를 쳐 주었다. 공연하는 이들은 손님이 많아야 신이 날테니까 말이다. 더욱이 차운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쌀쌀한 날씨에 호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얇은 공연복을 입고 노래하는 이들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저들에게는 저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일 것이다. 가무는 아무에게나 있는 재능도 아니기에 저사람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표현 하는 저 일에서 마냥 행복과 만족을 느낄것이다.

호텔로 들어와서 푹 잠을 자고 아침 조식을 먹으러 갔다. 비싼 조식이니 천천히 먹어 보자고 생각하면서 레스토랑으로 들어 섰다. 호텔종업원이 우리를 창가로 안내해 주었다. 벌써 몇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창가에 자리한 테이블은 수성 호수와 대구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전망이 아주 좋았다. 남편과 나는 셀카를 하나 찍어 기념으로 남기려고 포즈를 막 잡았을 때였다. 우리좌석 뒷좌석에 혼자 식사를 하던 중년의 남성이 다가왔다. “제가 찍어 드릴까요?”

그는 내 아이폰으로 몇커트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그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카메라를 가지고 다시 와서 “제가 사진을 좀 찍습니다 . 제 카메라로 몇장 찍어 드리겠습니다.” 한다.

분위기가 좋아져서 나도 말을 건넸다. “감사 합니다. 이 호텔은 우리가 42년전에 신혼여행을 왔던 곳인데 지금은 대구에 살고 있는 자녀들이 우리에게 깜짝선물로 호텔예약을 해놓고 초대를 해 주었답니다.” 했다.

그도 마음을 열고”네, 저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이번에 건강검진을 하러 한국에 왔어요. 친구가 이 호텔을 예약해 주었어요 삼일째 묵고 있는 중이랍니다. “라고 응답했다. 이외에도 우리는 그 중년신사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중년신사가 다시 말을 건넸다. “저… 아직 식사 중이시니 이 오믈렛을 드시겠어요? 저는 식사를 다 해서요. 좀전에 에그후라이가 깨끗하지 못하다고 직원에게 한마디 했더니 생각지도 않게 서비스로 이 오믈렛을 만들어 왔네요.” 한다.

그는 또 “그리고 찍어드린 사진은 제가 한달 후 미국에 돌아가서 작업을 하여 이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한다. 나는 감사 하기도 하고 그에게도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서 “전망이 아름다우니 선생님도 기념 사진 하나 찍어 드릴께요.” 했다.

그는 좋다고 했고 나는 내 아이폰으로 세 장을 찍어서 그 중년신사의 카톡 아이디를 입력해서 곧장 내가 찍은 사진을 보내 주었다. 뜻밖의 기분 좋은 만남과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더욱 기분이 상쾌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호텔 수성이 옥상에 만들어 놓은 루프탑온천수 수영장엘 올라갔다 수영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 산책으로 수영장 주변을 걷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수영장 수면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나름대로 또 운치가 있었다. 비맞지 말라고 남편은 말렸지만 나는 소녀처럼 몸에 걸치고 갔던 커다란 스카프를 우산처럼 펼쳐서 쓰고 수영장 가장 자리를 걸어 다녔다. 이것도 또 하나의 추억이 될테니까 말이다.

42년전 경주로 신혼여행지를 정했지만 기차를 늦게 타서 대구역에서 경주까지 가는 차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예정에 없던 대구에서 일박을 하게 되었다. 택시기사의 안내로 신혼의 첫날밤을 묵고 갔던 추억의 수성호텔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곳을 다시 이렇게 오게 되다니…

단순히 손주들이나 한번 안아 보려고 내려갔던 대구에서 장성한 자녀들의 배려로 온천수가 나오는 멋진 호텔에서의 일박이일은 그동안 어머니 병간호로 또 오미크론으로 쌓인 우리의 피로를 풀어 주기에 충분했다.

호텔에서 나와서 로아네 집으로 갔다. 귀여운 세손주들과 함께 일박이일을 보내고 기차를 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기차에서 이 글을 쓴다. 토탈 이박삼일의 일정이었지만 웬지 이번 여행이 긴 여행만 같이 느껴졌다.

그만큼 추억이 깃든 뜻깊은 곳에서 보내는 경험을 해서일 것이다. 문득 올해는 무슨일이 있어도 감사만 하기로 결심한 생각이 났다. 아…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더니 감사하니까 감사할일이 계속 생기는것만 같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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