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겨울 동치미의 사명

우리집 동치미가 맛있게 익었다. 무려 두 달동안이나 김치냉장고에서 장기보관해 두었던 동치미였다. 많이 담지도 않았기에 섣불리 꺼내먹지 않고 아껴 두었던 동치미를 이제 드디어 꺼낼 때가 되었다. 진실로 이때를 위하여 준비된 동치미 였나보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겨울 김장을 조금 담갔었다. 그러나 실은 김치냉장고가 없어서 올 겨울은 김장을 담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같은 동네에있는 한 교회가 추수감사주일 들어온 배추와 무우를 나에게 좀 많이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예상에 없던 김장을 하게 된 것이다. 김치를 다 담아 놓고 보니 배추김치 10킬로그램 두통에 깍뚜기 10킬로그램 1통을 담게 되었다. 그외에도 식구들이 좋아하는 알타리무우 김치는 재료를 사서 한통을 담았다.

자, 이 정도면 우리 세 식구 겨울나기까지 먹을 김치 분량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김장을 담그어 두고 며칠이 지나 가면서 나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우리집엔 김치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집 냉장고에는 커다란 김치통이 몇 개씩 들어갈 자리도 없었다. 나름대로 정성껏 애써서 담은 꽤 많은 양의 김치와 깍뚜기를 도대체 어떻게 하나?

아무리 겨울 이라지만 베란다에 김치를 내어 놓아도 머지않아 김치가 시어져 버릴 것이 너무도 자명했다. 나는 고민 아닌 고민이 생겼다. 이 참에 김치냉장고를 하나 살까? 김치 냉장고 없이 살 수 있다고 지금까지 생각했던 나였는데….

그러나 김치 냉장고를 덥썩 구매하기도 어려웠다. 김치 냉장고는 비싸기도 했지만 더욱 문제는 우리집 주방엔 김치 냉장고를 놓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 많은 김치를 시어서 버리게 둘 수는 없을것 같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나도 김치보관이 궁하게 되고 보니 이런 저런 궁리를 하면서 정보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발견한 것이 아주 깜찍하게 생긴 소형 김치 냉장고 였다.

정말 작고 아담 했다. 더욱이 스탠드 김치냉장고 여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100리터 남짓의 미니형이어서 큰 장소를 차지하지 않았다. 사이즈를 재어보니 주방 옆에 달린 베란다로 나가는 쪽에 붙여 놓아도 충분했다.

더욱이 이 김치냉장고는 키가 작아서 위에 전자렌지를 올려 놓고 쓸 수 있어서 주방 싱크대 상판을 더 넓게 사용할 수도 있었다. 김치 냉장고가 작은만큼 50만원대로 가격 또한 저렴했다.

그렇게하여 우리 집에 김치냉장고라고 하는 것이 처음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작은 김치냉장고는 김치통을 네개 넣을 수 있는 구조 였다. 새 김치 냉장고에 깍뚜기 한 통과 김치 두 통을 넣으니 한칸이 남았다. 그래서 이 칸을 채우기 위해서 동치미 무우를 사다가 동치미를 담았다.

갸름한 동치미 무우와 쪽파와 청량고추 삭인 것을 넣고 동치미를 담아 냉장고에 넣고 장기보관으로 설정해 놓았다. 그리고 언제 동치미를 꺼내 먹을까 하며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다. 왠지 아껴서 먹어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일단 먹기 시작하면 금방 먹어 버릴것이 뻔했다.

그런데 우리집 동치미는 보통 동치미가 아니었다. 이 동치미는 사명을 가지고 담가진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 인테리어가 예정보다 자꾸 늦어지던 어느날 이었다.

남편 K선교사가 느닷없이 금식을 선포하더니 금식을 하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보통 3일 금식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주로 3일 금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문제를 해결받고는 하였다.

그리고 남편은 성격상 처음부터 얼마동안 금식을 하겠다고 결정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의 약함을 잘 알기에 얼마 동안 금식을 하겠다고 정해 놓고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삼일정도 금식을 하려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도원에도 안 가고 집에서 장기 금식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은 3일을 지나 4일을 지나 5일을 지나도 금식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금식은 힘들지가 않아 하나님께서 돕고 있으셔” 하면서 계속 금식을 하는 것이다. 7일이 지나고 8일이 되어도 남편은 금식을 계속했다. 물론 교회 인테리어 상황도 다 돌보고 하면서 하는 것이다.

남편 K선교사의 체중이 쑥쑥 줄어 들어 갔다. 결국 만10일 동안 꼬박 금식을 하였다. 체중도 거의 9킬로그램 가까이 빠졌다. 남편에게 있어서 10일은 장기 금식이었다. 아주 오래전 신혼초에 대한수도원에 가서 10일을 금식한 이후론 처음인것 같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남편을 금식하도록 인도 하신 분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이제 새롭게 시작되려는 김포에서의 사역에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은 우리에겐 절실하였다. 그래서 이제 적잖이 나이든 남편을 하나님은 금식하게 하신 것이리라.

남편의 금식이 끝나면서 인테리어도 신기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나는 아내로서 남편의 섭식을 책임져야 했다. 미음을 끓여 아주 조금 첫식사로 내 놓았다. 그리고 반찬으로 그동안 잘 보관된 동치미를 꺼냈다.

동치미는 정말 맛있게 잘익어 있었다. 역시 사람들이 김치냉장고를 괜히 사는 것이 아닌 것을 또한 알게 되었다. 두 달이나 보관된 동치미가 맛있게 익었으면서도 전혀 시지 않고 아주 깊은 맛을 내었다.

나는 동치미 무우를 얇고 납작하게 썰고 쪽파도 몇잎 썰어서 동치미 국물과 함께 미음을 섭식으로 내 놓았다. 이렇게 한 삼일정도는 조심 조심 섭식을 해야 할 것이었다. 물론 남은 기간도 금식한 기간만큼 섭식 기간이어서 죽이라든가 무른 음식을 먹어야 한다.

남편은 하루를 섭식했다. 첫끼는 미음과 동치미를 두끼와 세끼도 부드러운 미음죽과 동치미만을 섭식한 남편은 아주 컨디션이 좋고 위도 편하다고 하였다. 이제 감귤도 한 두개 먹어도 된다.

우리는 앞날을 모른다. 오분 후의 일어날 앞일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뜻밖에 아주긴 장기는 아니어도 비교적 장기금식을 하게 되리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번에 교회를 시작하기 전에 금식기도를 하도록 인도하셨다. 그리고 우리집 미니 김치 냉장고 안에서 자신의 사명의 때를 기다리던 동치미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 사랑하는 남편 K선교사의 생명과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에 말이다. 남편의 금식후 건강이 더욱 좋아지기를 소망하는 나이기에 내가 담근 동치미는 이 겨울 더없이 고마운 존재가 되어 주었다. “참으로 고마워요 동치미…”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 9:17)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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