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권사님의 사랑의 섬김

올 들어 가장 춥다는 새벽이다. 나는 일찍 교회로 나갔다. 내복도 껴입었건만 잠간 걸어가는데도 매서운 새벽공기에 다리가 다 시려왔다. 오늘 같이 추운날은 얼른 교회에 가서 난로를 피워놓아 덥게 해 놓아야 한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빨간코트 권사님이 도착할 시간에서 벌써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오늘은 권사님이 너무 추워서 혹 못 오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우려를 깨트리며 문소리가 나면서 권사님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신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따끈한 차를 따라 드렸다. 그런데 권사님은 빨리 자리로 가시지 않고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신다. 권사님은 “목사님 이거 호박죽이예요” 하시며 둥근통에 든 호박죽을 나에게 건네주신다. 나는 “권사님, 건강도 안 좋으신데 힘들게 웬 호박죽을 다 쑤셨어요?”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며칠 전에도 권사님의 사랑의 섬김을 받았던 생각이 났다. 그 날도 권사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서는 내가 어디 있는지를 확인 하셨다. 나는 교회에 있다가 어머니 저녁을 차려 드리러 집으로 와 있던 중이었다.

내 위치를 확인한 권사님은 그럼 어디 가시지 말고 집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신다. 나는 괜히 걱정이 되었다. 권사님 댁에 무슨 일이 생기신 것은 아닐까 도대체 무슨 일이실까? 궁금해 하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권사님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신다.

그런데 권사님은 핸드카트에 스테인리스로 만든 큰 들통을 묶어서 들고 들어오시는 것이다. 나는 “아니 권사님 이게 뭐예요? 웬 들통을 다 가지고 오셨어요?” 했다. 그러자 권사님은 “집에서 반찬 몇 가지 만들었어요. 목사님 가져다 드리려고요” 하시며 들통에서 반찬통을 하나하나 꺼내신다.

삭힌 고추, 간장에 절인 마늘쫑 장아찌, 고들빼기김치, 새콤달콤한 통마늘장아찌, 멸치볶음, 견과류를 넣은 새우볶음 등등… 다 꺼내 놓으니 식탁위에 화려한 밑반찬들이 수북했다. 모두가 우리가 좋아하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밑반찬이다.

나는 매우 놀라서 입이 딱 벌어졌다. 그래서 “아니, 권사님 이 반찬이 다 웬거예요?” 했다. 그러자 권사님은 장아찌류는 이미 담아서 냉장고에 보관했던 것을 덜어왔고, 멸치하고 새우볶음은 좀 전에 막 만들어서 가져 왔다고 하신다.

아니 당신 몸도 하나 추단 못해서 힘들어 하던 권사님이 어디서 이런 열정이 솟아나신 걸까? 두 달 가까이 지은나교회에 새벽기도 나오시면서 그새 내 열정을 옮겨 받아 가기라도 하신 걸까? 아무튼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한편 권사님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 많은 반찬들을 큰 들통에 담았는데 무거우니까, 손수레카트에 묶어서 실은 다음 끌고 오신 것이다. 권사님의 그 천천한 걸음으로 라면 장장 10여분 동안은 끌고 오셨을 것 같다.

고마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뒤범벅이 되어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이렇게 무거운 것이라면 내가 가서 가져와도 되는데… 그래서 나는 저를 부르시지 그랬느냐고 했지만, 권사님은 그저 할일을 다 했을 뿐이라는 듯이 만족한 모습으로 싱긋이 웃기만 하신다.

권사님이 가지고 오신 반찬을 들통에서 다 꺼냈어도 여전히 무거운 스테인리스 들통을 보며 집까지 가져다 드리겠다고 일어서는 나를 권사님은 극구 만류 하신다. 당신이 충분히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권사님은 차 한 잔을 마시고 곧 일어 서셨다. 한손에는 핸드카트를 끌고 한손에는 들통을 들고 가시는 권사님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그냥 코끝이 찡해진다. 마치 친정 엄마가 다녀 가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예전엔 나도 나를 챙겨주는 이가 있었다. 내 나이 36살에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밑반찬이며 김장김치며 다 만들어 주셨었다. 그러나 친정엄마가 돌아가시자, 언니도 여동생도 없이 달랑 외딸인 나는 무척 외로운 시간들을 보내왔다.

그런데 나에게도 나를 위해서 이렇게 반찬을 만들어다 주는 이가 있다니… 그 날 나는 참 뿌듯하고 행복했다. 얼마나 행복했느냐고? 마치 우리 친정엄마가 다시 부활하기라도 하여 나를 찾아오신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만큼 말이다.

사랑은 섬김이다. 예수님도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섬기러 왔다고 하셨다. 섬기기 위해 체력이 떨어진 권사님을 위해 목사인 나는 새벽에 수프를 끓이고.. 권사님은 바쁜 목사인 나를 위해 밑반찬을 만들고…천국은 바로 여기 있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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