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아레카야자가 준 교훈

자연스럽게 순리를 따르는 삶은 아름답다. 무엇이든 억지로 하려고 할 때에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순리를 따라가면 좀 늦은듯해도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한국 사람의 성향으로 대표되는 ‘빨리빨리’는 좋은점도 있는 반면 긴 안목으로 볼 때는 오히려 불리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행을 많이 해보거나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여유로운 사고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급한데 많은 외국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좀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빨리빨리’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가족이 해외에 선교사로 나가기 전 3년 가량을 육사교회(육군사관학교교회)에서 사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육사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는 생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 가족 등 교직원 가족들도 상당 수 있었다. 남편이 육군사관학교의 교수인 부인 집사님과 함께 나는 중보기도회를 하며 친하게 지냈었다.

그 여집사님의 남편이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미국에서의 살때 있었던 일을 말해 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지하철을 내려서 계단을 통해 나오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죽~ 길게 줄을 서 있는데 여유 있게 앞사람과 간격을 두고 서 있더라는 것이다.

그 집사님은 한국에서 했던 대로 이 사람 저사람 사이의 여유 있는 공간으로 살살 빠져서 앞서서 계단을 올라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빠져서 먼저 나가려는 자신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의아한 눈길로 다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그때서야 그 집사님은 아차~ 여기 사람들은 앞사람과의 사이에 여유가 있어도 끼어 들기를 하거나 하지 않고 순서를 따라서 움직이는 문화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자기가 한 행동에 귀밑이 빨개질 만큼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내가 30대였을 때이니 오래전 이야기인데도 늘 새롭게 생각이 나곤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한국 사람인 나에게도 그 집사님과 같은 DNA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 경험한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러분도 아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성격급한 한국사람 맞네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는 바로 그 ‘빨리빨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성찰하고 스스로 고백하는 이야기이다.

우리집 거실에는 아레카야자 화분이 하나 있다. 제법 대형 화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눈에도 꽤 비싸 보이는 이 화분이 우리집에 오게 된 것은 당근마켓을 통해서였다. 전에 나는 화분을 이십여개나 키웠지만 여행을 가거나 하면 물을 못주니 문제였다.

그래서 화분을 이웃에 다 나누어 주고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일년쯤 지나니까 나는 슬슬 초록이들이 그립기 시작했다. 남편이 늘 나에게 “당신 손은 생명을 살려내는 재주가 있어” 라고 말해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거실에 초록이들이 없으니 왠지 허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화분을 사려고 보니 화분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당근 마켓을 보았더니 화분은 많이 나와 있지만 배송이 또 문제였다. 배송을 위해 차를 부르면 배보다 배꼽이 커질테니 말이다. 그러던 중 우리가 사는 아파트 맞은편 아파트에서 거실에 놓으면 어울릴 화분을 당근마켓에 내 놓았다.

바로 지금 우리집에 와 있는 아레카야자 나무이다. 화분을 내 놓은 사람의 말이 아래카 야자를 처음 사왔을 땐 나무가 아주 실하고 좋았는데 자신은 아무래도 나무를 키우는 재주가 없는 모양이라면서 나무가 점점 죽어 간다는 것이다.

당근마켓에 올려진 사진을 보니 나무잎이 갈색으로 말라있고 잎도 듬성하게 남아있어 한눈에도 성장하는 나무구나라고 느껴지지 않는 아레카야자였다. 화분을 내놓은 젊은 여성은 이사오고 거실을 꾸미려고 25만원에 샀는데 25천원에 가져 가라고 했다.

가져 가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나도 급할것도 없어서 안가지러 가고 있었더니 연락이 왔다. 오천원을 더 깎아서 2만원에 드릴테니 빨리 가져 가시면 안되겠느냐고… 아마 갈수록 나무가 마르고 죽어가면 그나마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것이 뻔하니 그랬던 모양이다.

나도 은근히 화분을 가져와서 나무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한 날 날을 정해서 남편을 대동하고 가지러 갔다. 자동차에는 실을 수가 없으니 대차(카트보다 크고 짐 옮길 때 쓰는 네바퀴 달린 것)를 가지고 맞은편 아파트로 갔다.

화분은 크고 예쁜데 아레카야자는 몇잎이 안남아 있어서 이게 살아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과 함께 대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와서 거실에 놓았다. 그날부터 우리집의 아레카 야자 살리기작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우선 우리집 근처에 있는 이마트트레이더스에 갔다.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화분을 파는 것을 보았기에 화분 영양제가 있을 것 같아서 였다. 예상대로 화분 영양제가 수십개는 되는 것을 패키지로 박스에 담아 팔고 있었다. 일단 영양제를 가지고 와서 아레카야자 뿌리가 여러개 있는 하나 하나에 꼿아 주었다. 그리고 욕실에서 대야 두개에 가득 물을 받아서 하루를 재웠다.

수돗물에 있는 염소를 날라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레카 야자는 물에도 민감하다고 하니 물도 미리 받아 두었다가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흠뻑 물을 주고 영양제도 일주일에 한번씩 놓아 주었다.

그리고 타워형인 우리집은 거실문과 주방창문을 열면 맞바람이 쳐서 보통 시원한 것이 아니다. 바로 바람이 부딪히는 장소에 아레카야자 화분을 두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아레카 야자는 맑은 공기를 좋아한다는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맞바람에 잎이 흔들리기는 하지만 한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도 아레카 야자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였다. 나는 가위를 들고 말라버린 나무잎 가장 자리의 갈색으로 변해버린 죽은 나뭇잎을 다 잘라 주었다. 갈색잎마름만 잘라내도 아레카 야자는 파릇하게 생기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좀처럼 새 잎이 나오지는 않았다. 삼 주째 되었을까 하는 어느날 이었다. 그동안 나는 아침마다 아레카 야자에게 말을 걸곤 했었다. “잘 잤니? 우리집에 와주어 고마워 사랑한다” 라고 이야기를 걸었다. 그런데 그런 내 인사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아레카 야자에게서 기다리던 새잎이 나오고 있었다.

“야~ 드디어 애가 깨어났네” 나는 반가운 나머지 그 새잎을 만져 보았다. 줄이 죽죽 그어져 있는 잎들이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떨어져서 벌어지면서 잎을 만들 참이었다. 나는 어서 붙은 잎들이 떨어지길 바라면서 나도 모르게 붙은 나뭇잎을 결따라서 떼어주었다.

내가 도와 주면 더 빨리 제 모양을 갖추고 자라려니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났다. 아레카 야자는 이제 본격적으로 새잎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잎 두잎 세잎… 계속 새 잎이 줄기 가운데서 뾰족이 나와서는 나무잎 형체를 만들어가고 때가 되면 저절로 벌어져서 예쁜 야자잎이 되었다.

벌써 새 아래카야자 잎이 여섯개쯤 나왔다. 이제는 엉성해 보이지 않고 하얀 화분에 어울리게 풍성해 보이는 잎을 가진 화분 모양이 되었다. 그런데 아아… 이럴 수가 맨 앞쪽 오른쪽으로 뻗은 아레카야자 잎 하나만이 힘을 잃고 축 늘어져 있다.

바로 내가 도와 준다고 잎을 결 따라 떼어 놓아준 그 잎이었다. 스스로 자라서 벌어질 수 있는 아레카야자잎을 자연의 순리에 맡기지 않고 반가운 마음에 도와 준다고 일찍이 떼어 주었더니 그 잎만 축 늘어져서 다른 건강한 아레카야자잎들과 달랐다.

그래서 나는 아레카야자를 지나칠 때마다 또 바라볼 때마다 그 잎만 바라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애야 미안하다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네가 스스로 커서 나뭇잎 형상을 갖추도록 기다려 주지 못하고 내가 너무 서둘러서 너를 영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 버렸구나”

아레카야자가 내게 준 교훈은 ‘기다림’ 이었다. 아레카야자잎 하나도 순리대로 성장해서 잎이 스스로 떼어지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떼어 주었더니 건강하게 자라지 못한다면, 사람과 사람사이 관계는 어떨까?

인간관계처럼 인내가 필요한 것은 없다. 충분히 관계가 무르익기 전에 서둘러 말하고 행동하는 바람에 망쳐진 관계들은 없었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레카야자잎으로부터 배운 교훈은 기다림과 인내라는 가치였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범사에 충분한 때가 될 때 까지 기다리자. 서두르지 말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편집국

시니어 타임즈 US는 미주 한인 최초 온라인 시니어 전문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