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잔인한 4월에도 희망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T.S.엘리엇(T.S.Eliot. 1888~1965)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다. 그의 긴 장편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첫소절, 첫행은이렇게 시작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이 싯귀가 그대로 내 마음에 와 닿을 만큼 우리 가족에게도 올 4월은 실로 잔인한 달이었다. 두 주 전 화요일 남편과 나는 우리가 사는 집에서 1.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쉴낙원’을 방문했다.

온 가족이 코로나 오미크론에 걸려서 앓고 난 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연로한 어머니께서 코로나 전담병원에서 코로나를 치료 받고 퇴원을 하여 집에 오셨지만 몸의 상태가 무척 위급해지셨기 때문이다.

4월9일 어머니가 병원에서 퇴원 하신후 나와 남편이 열심히 간호 하며 돌보아 드렸지만 어머니는 마치 꺼져가는 등불처럼 쇠약해져만 갔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 하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내가 어머니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간절히 음식을 드시라고 권하면 그날은 조금 입을 열고 음식을 드시기도 했지만, 이튿날은 또 음식을 거부하는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다. 입으로 빨대를 빨기만 하면 되는 영양식 뉴케어조차 빨지를 않으셨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수저로 물을 떠서 입에 넣어 드려 보곤 했지만 삼키려고 하지 않으시거나 두 손으로 내 팔을 탁 쳐서 물 한숟가락 드시는것 조차 거부 하시니 우리 부부는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어머니가 식사를 조금 하신 어느날 기운을 좀 차리셨을 때 얼른 목욕을 시켜 드렸다. 그리고 전자 체중기를 가져다가 체중을 재어 드렸는데, 놀랍게도 어머니는 평소 몸무게에서 10킬로그램이상이나 체중이 줄어 있었다.

키가 큰편인 어머니는 원래가 날씬 하신분이어서 51~52킬로 그램 정도를 왔다 갔다 하는 보기 좋은 체중 이었는데, 이번에 재어 보니 기가 막히게도 38킬로 그램이었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뼈와 가죽만 남으신것이다.

힘이 없으시니 잘 걷지도 못하시고 24시간 침대에 줄곧 누워만 계신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 보면서 남편과 나는 장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전문 장례식장인 ‘쉴낙원’을 찾은 것이다.

‘쉴낙원’은 병원 장례식장 보다는 훨씬 쾌적해서 문상 오시는 분들을 위해 이곳을 선택했다. 장례식을 위한 상담사와 긴 상담을 마쳤다. 미리 상담을 해서 견적서를 써 두면 일 당했을때 훨씬 수월하게 진행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틀후인 목요일 장기의료보험에서 직원 한분이 찾아왔다. 2년에 한번씩 어머니의 노인장기요양등급을 결정해야 하는데 작년 10월 코로나로 인해 기간이 연장되어 6개월 후인 이번 달에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다.

장기의료보험 직원은 크리스천으로 매우 상냥했다. 우리 부부가 목사인것을 알고 더욱 친절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그녀는 어머니의 침실에 들어가서 직접 어머니의 상태를 관찰하였다.

그러더니 그 직원은 “혹 모르니 아예 시설등급으로 신청을 해 드릴까요?” 한다. 우리가 부탁을 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문득 언젠가 가정 요양원을 하는 원장님으로 부터 들었던 말이 기억이 났다.

“요양등급이 아무리 높아도 시설등급을 받지 않으면 요양원에 들어 오실 수가 없어요. 시설등급 없이 들어 오려면 매월 200만원 이상씩 내시고 들어 오셔야 해요.” 그 생각이 나서 나는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하고 대답했다.

잘 아는 근처 가정 요양원 원장님에게서 휠체어를 빌려왔다. 이튿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했다. 공동생활을 하시려면 B형간염, 코로나, 결핵등 전염병은 없는지 모두 검사를 하고 의사의 사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 걸어서 7분 정도 걸리는 넓은 아파트에서 가정요양원을 하시는 원장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원장님이 8년 동안 모시고 돌보던 100세 할머니가 얼마전 소천 하셔서 자리가 하나 비었으니 어머니를 곧바로 모시고 오라고 말이다.

장례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우리였으니 더이상 방법도 없어 보여서 그러겠다고 했다. 수간호사출신 요양원 원장님은 크리스천으로 사명이 있는 분이었다. 천국문에 가까운 어르신들을 돌보며 매일 예배 드리면서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시면서 다시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 요양보호사와 수간호사출신 원장님이 병인을 돌보는 전문가여서인지 어머니가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은혜가 임한 것이다.

우리 집에서 7-8분 걸어가면 언제라도 어머니를 볼 수 있는 곳에 어머니가 계시니 우리 부부의 마음도 안심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찾아간 나에게 요양보호사 한분이 나와서 내게 말했다.

“어르신(우리어머니)은 우리 요양원에서 스타세요” 내가 말했다. “어머, 왜요?” 그녀가 답했다. “호호… 어르신은 피부도 하얗고 제일 예쁘시니까요.” 93세의 미인할머니가 행복요양원의 인기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죽음을 이기고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에게 그렇게도 잔인했던 4월이 지나 가고 있다. 이제 곧 계절의 여왕인 5월이 온다. 그리고 푸르름이 대세인 6월이 오고 녹음이 짙어 지는 7월이 오고 8월이 온다.

계절이 바뀌면 자연의 순리를 따라서 날마다 소중한 녹색생명들이 자라날 것이다. 웬일인지 오늘은 햇볕조차 찬란하다. 미세먼지도 사라진듯 맑기만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비행기 한대가 하늘에 하얀 선을 그으며 힘차게 날아간다. 푸른 희망이 넘실댄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편36:9)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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