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모두가 공평’이란 어구의 비참한 진실

‘모두가 공평’이란 어구의 비참한 진실

허구성을 감추고 이상을 논하면 천상의 이론도 가능해서, 날개가 없어도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러나 배고픔에 김이 모락모락 통닭을 상상하게 되는 성냥팔이 소녀는 안타깝지만 상상만으로 통닭을 먹을 수 없어서 성냥이 꺼지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바램과 현실은 다른 것이라서 나는 하늘을 날 수가 없다.

이상적으로 매우 탁월하다는 공산주의는 현실에 맞추면 이루어질 수 없는 천상의 이론이다. 거창한 학문적 용어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 이치에 미루어보면 그 허구성은 쉽게 인식된다.

‘모두가 공평’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똑같은 조건을 갖지 않은 세상에서는 불공평과 무력감을 창출한다. 일손이 90인 사람과 10인 사람이 공평하게 50씩 분배 받으면, 90인 사람은 40을 착취당하고 10인 사람은 40을 노력 없이 얻는 불공평 속에서, 90을 할 사람은 의욕을 상실하고 10만 일하게 된다. 100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을 20만 창출하는 사회가 되어 버려서,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에서 물자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말과 어긋난다.

‘필요에 따라 나눠 갖는 세상’도 물자의 풍족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이 모아 놓은 것을 착취하지 않고서야 노동의욕 상실의 사회에서 어디서 물자가 나온다는 것인가. 만일 10인 사람에게 40을 더 일하라 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그들의 이론에서 어긋나게 된다.

이것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신의 체제를 수정해야 하는 뼈아픈 경험을 하게 했던 이유이며, 공산주의는 이미 버려진 구태의연한 이상적 허구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킨 마르크스 조차도 “공산주의자들은 타인의 소유에 대한 탐욕을 체제로 해소하려는 것”이라 비판하며, 인류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 했던 것은 그가 이 달콤하지만 허상인 체제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것을 내세워 현혹한다면 그것은 인류에 대한 기만이다. 그 기만의 선봉에 선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가지지 못한 것을 착취하려는 심보”가 강한 사람들이어서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도 행하라”는 행동강령을 지닌다.

그렇듯 도덕성이 결여되어서일까, 해적처럼 비논리를 논리로 둔갑하여 선원을 모으고 한 국가의 대통령이든, 철없는 여자아이든 영혼을 죽이는 이지매를 하며 인간이기를 포기한 언사를 일삼는다. 궁극적으로 종교를 말살하려는 무신론자이기에 천벌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 또한 없는 것인가.

흉하게 자신을 타락시키는 것은 마르크스 말처럼 ‘가진 자’에 대한 증오심의 발로 내지는 소유한 자를 이유 불문하고 적으로 규정짓는 투쟁의 사관에서 기인할 것이다. 빼앗는 기술만 발달하고 희생과 소명감을 키우지 못하는 허기진 자들, 가진 자들의 것을 다 소모하고 나면 타락과 궁핍으로 비참에 처할 모습으로 빠르게 내달리고 있다.

아그네스 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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