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사랑의 급수

몇 주전의 일이다. 큰딸이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 우리 차가 가다가 섰어요. 17년 된 레조 이젠 안 되겠네요. 이 차를 내가 계속 타다가는 다음엔 나를 영안실에서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딸의 성향이 위기 중심적인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나는 가슴 섬뜩한 말을 하는 딸이 야속스러웠다. 그래서 “원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영안실에서 만난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구 그래…”

물론 나는 딸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오래된 중고자동차의 위험성에 대해서 말이다. 그 이야기라면 나보다 더 철저하게 몸으로 경험해본 사람이 또 있을까? 2007년 선교지에서 비자제한으로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들어온 후 나는 차량이 절실히 필요했었다.

당시 나는 몸이 지치고 쇠약해져 있었다. 특히 무릎이 많이 안 좋았다. 때문에 자동차가 정말 필요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정말 빠르게 응답이 되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한 달도 채 안되었을 때였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목회자들의 기도모임에 가서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기도제목을 내 놓았다. 그런데 그 기도제목을 듣고서 기도모임에 참석한 목사님 한분이 자신의 교회 성도님의 차량을 얻을 수 있도록 소개해 주었다.

2007년 당시 그 중고차는 하얀색으로 97년식 세피아 투였다. 좀 험하게 타서 무척 낡아 있기는한 자동차였지만 나는 감지덕지 고마운 마음으로 그 차를 무료로 받아서 6년 반 동안이나 탔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이 중고자동차에 얼마나 문제가 많이 발생했는지 모른다.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차가 서서 큰일 날 뻔 했던 일도 있었고, 바퀴가 터져서 바람이 새는 것도 모르고 고속도로를 가는데 뒤에서 오던 차가 빨리 달려와서 크락션을 울리면서 나에게 알려주어 위험을 모면한 적도 있었다.

이런 오래된 중고차를 타고 장거리를 뛰는 나를 보고 큰딸은 질색을 한다. “엄마 제발 기차타고 다니세요. 중고차 타고 장거리 다니면 큰일 나요. 그래서 “딸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요즘 나는 혼자 대구에 갈 때는 무궁화호를 이용하여 종종 대구에 내려갔다가 올라온다.

KTX는 빠르기는 하나 너무 요금이 비싸고 기차 여행하는 맛도 덜하기 때문에 나는 완행열차인 무궁화호를 즐겨 탄다. 무궁화호는 시간이 배나 느린 대신에 기차표 값 또한 배나 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독서하거나 글쓰기 좋은 시간이라 손해보는 것 없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딸네는 고장이 잦은 레조에 너무 고치는 값도 많이 들어가고 무엇보다 어린 아이 둘을 태우고 다니기에 영 마음이 안 놓이는 모양이었다. 아마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나래도 그랬을 것 같다.

그렇다고 집을 산지가 얼마 안 되는데 덥석 새 차를 사기도 부담이 많이 되는 모양이었다. 사위와 딸이 몇 날 며칠 동안 중고차를 열심히 알아보는 눈치여서 나도 도울 요량으로 네이버 검색을 해서 적당한 차량을 찾아내어 소개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소개하는 차량은 시세보다 값이 싼 허위매물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3년 된 SUV차량을 천만원대에 팔겠다는 인터넷상에서 소개하는 딜러의 말을 딸과 사위는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사위는 위의 자동차 경우 2천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이라는 것이다.

중고차라고 하더라도 제값을 치루고 사야 제대로 된 차량을 살 수 있다는 거였다. 결국 사위는 직장 동료 지인의 소개를 받아서 믿을만한 딜러에게 생산된 지 2년 되고 3만 킬로 정도를 탄 더뉴쏘렌토를 구입하기로 했다.

사위와 딸이 구입하게 된 더뉴쏘렌토는 옵션도 최고는 아니었지만 그다음 정도의 옵션으로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2년을 탔기 때문에 새 차에 비해 천만 원 이상 싼 가격으로 사게 된 것이다. 나는 딸과 사위가 제 값을 치르고 중고자동차를 사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매우 안심되었다.

왜냐하면 이런 자세로 세상을 살아나가면 누구에게든 사기를 당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무수한 사기사건들은 대부분 치러야 할 값보다 뭔가를 싸게 구입 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속이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신차의 소형차 값을 주고서 이년된 중고차인 더뉴쏘렌토 SUV를 샀지만 딸과 사위는 아주 만족해했다. 어린 아이들 둘을 카시트에 안전하게 태우고 다닐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승용차 보다는 트렁크가 많이 넓어서 유모차나 자전거 같은 아이들의 물건들을 마음껏 싣고 다닐 수가 있다고 좋아했다.

딸과 사위가 차량을 구입하는데 나는 돈으로 지원해 주지는 못했다. 다만 기도해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모두 흡족해 하는 차량을 구입하는 것을 보고 함께 마음이 기뻤다.

동시에 시대가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자동차가 필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정을 세운 젊은 부부에게는 내 집 마련이 꿈이었다. 그만큼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면 자동차가 필수가 된 것이다. 더욱이 자녀를 갖게 되면 더더욱 자동차는 필수품이 된다.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질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는 나라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딸과 사위가 구입한 더뉴쏘렌토 SUV자동차는 분명히 중고차 이지만 급이 다르다. 중고차면 중고차지 무슨 급이 있느냐고 묻고 싶은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번에 딸과 사위가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깨달아진 것이 있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도 하지만 부모 된 자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신 자식사랑…그 깊은 배려의 마음에 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사위와 딸은 둘 다 MK(선교사자녀)출신이다. 부모가 후원에 의지해서 생활하는 선교사의 자녀는 사회에 진출하면 그때부터 독립해서 살아가야 한다. 물론 대학에 다닐 때부터도 MK들은 자신들의 특기인 언어(영어, 중국어 등)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며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딸과 사위는 대학에서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지만 결혼 후 살아야 할 방도는 두 사람의 건강한 마음과 몸뿐이었다. 그래도 길은 열렸다. 사위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공군장교가 되는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였다. 영어를 잘하는 사위는 통역장교로 합격한 것이다.

딸은 당시 우리가 사역하던 선교지인 C국에 들어와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 아빠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사위는 서울로 근무신청을 할 수도 있었지만 군인사택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대구로 근무신청을 했다.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말이다.

15평의 군인 아파트는 5층단층에 맨 위층인 5층에 있었다. 하지만 사위와 딸에게는 그 집은 신혼의 보금자리로서 최적격인 집이었다. 딸은 안방에서 잠을 자려고 하면 오래된 아파트의 천장에서 쥐들이 뛰어놀곤 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단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애틋한 마음이 든다.

딸은 지금은 넓고 좋은 아파트를 사서 살고 있다. 하지만 딸은 신혼시절 그 작은 오층에 있던 단층 아파트에서 살 때가 무척 행복했었다고 말하곤 한다. 집이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이었겠지…

딸은 비교적 일찍 결혼했지만 큰딸 로아를 얻은 것은 결혼 후 9년 반 만이었다. 그리고 3년 후에 둘째인 아들 로이를 얻었다. 나이가 들어 자녀를 얻어선지 딸과 사위 두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모습이다.

사위는 빤한 월급에 아파트 사느라고 많은 대출을 받아서 원금과 이자를 갚고 두 아이 키우느라 여유가 없다. 두 사람은 신앙생활에도 철저해서 십일조 감사헌금 내면서 양가 부모님 용돈까지 보내면서 생활한다. 그렇게 빠듯하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17년 된 자동차를 폐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사위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직장에 다니면 되니까 이참에 자동차를 없애서 처분해볼까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매주일 아이들 데리고 교회에 가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필요했다. 더욱이 우한발 코로나19 사태로 대중교통 이용은 어린아이들의 안전에도 염려스러웠다. 무엇보다 그동안 낡긴 했지만 신혼 초부터 계속 자동차가 있다가 쓰임새가 더 많아진 지금 자동차가 없다면 생활이 많이 불편해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 있는 딸네 가정을 보면서 나는 내심으로 부담이 덜 되는 중고차를 구입했으면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속으로는 했지만 딸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당사자인 본인들이 가장 잘 선택할거라 생각해서 이었다.

그리고 딸과 사위는 더뉴쏘렌토 SUV 자동차를 선택했다. 이번에 새로 산 자동차의 선택은 무엇보다 어린자녀인 로아와 로이의 안전에 초점을 맞추어졌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속 깊은 마음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새 자동차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년밖에 안탄 자동차에 값은 천만원 이상이 저렴하게 샀으니 중고차지만 가성비가 괜찮다고 할 수 있다. 딸과 사위의 현재의 형편에는 버겁지만 12살까지 카시트에 타야 하는 사랑하는 로아와 로이의 안전을 위해서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서 자신들의 형편보다 넘치는 비싼 차를 산 것이다.

그래서 중고차도 급수가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2년 된 중고차, 5년 된 중고차, 10년 된 중고차, 내 차처럼 20년 된 중고차 분명 누군가가 사서 타다가 팔았기에 중고차이긴 하지만 중고차의 급은 상당히 다양하고 다르다.

맨손으로 일어선 사위고 딸이다 보니 자신들을 위해서는 무척 아끼고 산다. 딸이 결혼 전에 70만원인가 주고 샀던 매우 낡은 프라이드 자동차는 결혼 하고도 한참을 탔다. 그런데 그 프라이드가 고장이 잦아서 고민할 때 사위의 직장 상사가 새 차를 사면서 딸네가 좀 전까지 타고 다니던 레조를 무료로 주었다.

결혼 13년 만에 로아와 로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은 값을 지불하고 새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괜찮은 2018년식 SUV 더뉴쏘렌토 자동차를 구입한 것이다. 사위와 딸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신들이 탔던 예전의 자동차에 비해서 자동차의 급수를 확~ 올린 것이다.

늘 보고 싶어서 내 눈에 삼삼한 로아와 로이가 이제 그래도 안전한 차량을 타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 또한 기쁘기 그지없다. 부모의 자녀의 안전을 고려하는 마음은 현실을 벗어난 선택을 하게 한다. 바로사랑의 급수가 자동차의 급수를 확실하게 올려준 것이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시 127:3-4)”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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