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 [34] – 월간조선의 5·18 보도 오류

[LA=시니어타임즈US] 본지는 2019년 1월부터 518사건과 관련한 신간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The War of 5∙18 History between Moon Jae-in and Chun Doo Whan)>을 저자와의 합의 하에 연재를 시작한다.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은 5.18사태 전문가인 김대령 박사의 16년간의 연구 결산으로 지난해 11월 26일을 기해 출간됐으며, 인터넷 서점 아마존(www.amazon.com)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편집자주>

제5장 ∙ 문재인이 바로잡아야 할 5·18 기록

6. 월간조선의 5·18 보도 오류

1985년에 조갑제 기자를 단장으로 하는 月刊朝鮮특별취재반이 광주에서 이광영의 거짓말을 받아 적어 『월간조선』 1988년 3월호에 그대로 실었다. 여기 수록된 증언록에서는 이광영은 박금희 양의 사망사고 장소가 양림동이 아닌 백운동이며, 양림동 기독병원에서 헌혈한 후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백운동에서 맞았으며, 헬기에서 총을 쏘는 것을 자기가 보았다고 거짓말하였다.

이 플래카드는 광고구실도 했다. 「전 도민은 오후 3시에 도청으로 집결하자」「도청을 탈환하자」등등의 글귀로 썼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10∼15가지의 구호를 써갈겼다. 오후 2시까지 미친 듯 그 작업을 했다.

온몸은 페인트투성이가 됐다. 나는 오후 2시쯤 2명이 타고 있는 지프차에 합승, 도청쪽으로 향했다. 백운동 로터리를 지날 때 군용 헬기에서 총을 쏘는 게 보였다. 여학생이 인도에서 어깨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우리는 그 여학생을 차에 태우고 기독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은 밀려온 환자들로 난장판이었다. 의사들은 응급용인 하트만 링겔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여기서 「할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적십자 활동을 하자고 시민들을 설득했다. 한꺼번에 수십 명이 자원했다.

『군대에 갔다 온 분들만 나오십시오』 15∼16명의 자원자 가운데서 내가 3명을 지명했다. 우리 지프에 타고 있던 3명을 합해서 6명의 적십자 자원 봉사팀이 생긴 것이었다. 우리는 적십자 병원에서 의사 가운, 적십자 마크, 완장 등을 얻어 팔뚝에 차고 또 지프에도 붙였다 (月刊 朝鮮 특별취재반 1988, 463).

이광영은 자기가 5월 21일 적십자대를 창설하였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가 적십자대를 창설하였는지의 여부를 『월간조선』은 전혀 확인해 보지 않았다. 광주는 이광영에게 연고자 없는 객지였고, 그 날이 그가 광주 시내를 본 첫 날이었는데 어떻게 적십자 부대를 창설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아래 51번 사진에서 의사가운을 입고 지프차를 타고 있는 난동자들은 의사들이 아니다. 그들은 적십자 병원에서 의사들의 가운을 강탈하여 착용하였다.

사진 51 ▲ 무장괴한들이 군용지프 범퍼 위에 가톨릭병원에서 강탈한 적십자 마크를 부착하여 만든 적십자대 차 사진에서 운전석 쪽의 철모 쓴 자는 무장공비 기관총 사수로서 현재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임이 확인되었다. The militia wearing a soldier’s helmet inn the fake vehicle of the Red Cross. has been proved to be a North Korean soldier.

『월간조선』 1988년 3월호에서 이광영이 “어떤 여고생이 헌혈하겠다고 해서 기독병원까지 태워다 주었다. 몇 시간 뒤 다른 차가 시체를 하나 싣고 가는데 우리가 얼마 전에 태워다 주었던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고 하였다. 몇 시간 뒤란 적어도 세 시간 뒤를 일컫는다. 같은 달 『월간경향』 139쪽에서에서 이광영은 동일 여고생을 여중생이라 부르며 양림동에서 그녀를 기독병원으로 태워다 준 시각이 오후 6시 이후라고 하였다. 그 후 전남대병원으로 가 그 병원 환자들을 시내 각 병원에 분산 입원시킨 후 부상자를 싣고 기독병원에 다시 오니 그 여학생이 죽어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같은 페이지와 그 다음 페이지에서 그는 자기가 그 시각에 정반대 방향으로, 즉 기독병원에서 광주천변도로를 지나 시청 4거리로 이동한 것이었다고 횡설수설하였다.

사진 52 ▲ 위 사진의 무장공비 기관총 사수가 광주 의사로 보이는가? 그는 5월 21일 오전에는 적십자병원 의사들에게서 강탈한 의사 가운을 입고 지프차 타고 다녔다. A Kwangju militia from North Korea armed with his machine gun.

이광영은 국회 청문회에서는 전남대 병원의 환자들을 다른 곳으로 분산 수용한 적은 없고 환자 한 명을 싣고 기독병원에 갔더니 병원 앞에 박 양이 죽어 있었다고 했다 (제145회 국회 청문회 1989, 29:17). 이광영의 말은 심지어 국회청문회 도중에도 바뀌었다. 그가 그 날 기독병원에 가게 된 경위에 대해 그렇게 말해 놓고서도 입에서 침이 마르기도 전에 말이 확 바뀌어 저녁 6시에 교도소 앞에 도착하였다가 저녁 7시에 기독병원에 도착하였고, 그 후에는 시청 4거리로 갔다가 무장단체가 쏘는 총에 척추를 맞은 채로 기독병원으로 차를 몰고 온 것이라고 하였다(제145회 국회 청문회 1989, 29:18-19).

이렇듯 1988년 3월 양대 월간지에 크게 실린 이광영의 증언은 실제로는 증언이 아니라, 매번 그의 입에서 다르게 횡설수설하며 쏟아져 나온 광주괴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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