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행복한 점심

태풍이 온다더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오늘 새벽기도 하러 갈 때도 비바람이 세게 몰아쳐서 아파트 건물을 끼고 걸었다. 높다란 아파트 건물이 비바람을 막아주어서 우산을 들고 걷기가 훨씬 좋았다.

이처럼 바람 부는 날, 모처럼 도시락을 싸서 교회로 가져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엔 교회가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남편 K선교사는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오곤 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도시락을 준비해서 가져가면 남편은 참 좋아한다. 교회에서 밥을 먹으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오면 그다음 시간은 좀 풀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간단한 점심을 준비했다. 그래도 이것저것 준비를 해 놓고 보니 반찬이 예닐곱 가지나 되었다. 숙주나물을 볶고, 후랑크쏘세지에 양파를 넣고 볶다가 토마토케첩과 진간장으로 양념을 해서 새콤달콤하게 만들었다.

달걀후라이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달걀도 두개 부쳤다. 그 나머지는 있는 김치류의 반찬을 담으면 되었다. 며칠 전 담아 놓은 아삭 아삭한 오이소박이를 담았다. 오이소박이도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중 하나이다.

그리고 어제 막 담근 배추맛김치도 담았다. 참 구운 김도 챙겨야지. 마지막으로 검정강낭콩을 넣어 지은 밥을 담았다. 껍질을 깎아서 밥솥에 넣어 찐 감자도 밥을 담은 그릇 한쪽으로 꾹눌러 담았다.

쇼핑백 한군데에 다 담았더니 밥과 반찬들이 제법 무거웠다. 밥과 반찬을 쇼핑백 두 군데 나누어 담았다. 그렇게 하면 무거운 것을 들어서 팔에 주는 무리를 줄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교회 카페 탁자에 점심을 차려놓고 남편을 불렀다. “점심 드세요.” 남편이 카페로 들어서서 차려진 점심을 보더니 입이 딱 벌어진다. “와~ 한상 가득이네 정말 맛있겠다.”

아침을 금식한 남편의 배가 얼마나 밥 들어오기만을 기다렸을까 상상이 간다. 나는 남편에게 물을 한 컵 떠다 주면서 어서 점심을 들으라고 권했다. 남편의 얼굴에 잔잔하고 행복한 그래서 흐뭇해 보이기조차 하는 미소가 떠오른다.

남편은 여러 반찬 중에 제일먼저 초록색 풋고추를 집어 빨간 초고추장에 꾹 찍더니 한입을 먹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풋고추가 진짜 다네”한다.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호호…풋고추가 달다니… 배고픈 사람이 뭐는 안 맛있을까”

도시락 점심은 금방 바닥이 났다. 남편은 숙주나물을 다 먹고 숙주나물에서 나온 국물까지도 다 먹고 오이소박이를 다 먹고 남은 국물까지도 다 먹고서야 수저를 놓는다. 이사람 많이 배고팠었구나. 나는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마침 플레인요거트 두개가 보였다. 후식으로 딱 좋았다. 무설탕 플레인 요거트에 딸기잼을 한티스푼 넣고 믹스너트를 한 움큼 넣어서 남편에게 주었다.

그러고 나서 커피를 내렸다. 커피향이 카페에 가득 퍼진다. 이렇게 우리는 소박하지만 결코 소홀하지는 않은 점심을 먹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비로소 남편의 얼굴에 배부른 후에 오는 흡족한 여유로움이 넘실거린다.

아내의 정성에 감동을 했을까 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곧장 카페의 싱크대 앞으로 간다. 반찬통이며 밥통이며 이것저것 꽤 많이 쌓여 있는 설거지할 그릇들을 K선교사가 씻기 시작한다. 나는 커피 잔에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준비해온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 남편에게 매일은 어렵겠지만 한 주일에 한번이나 두 번쯤 이렇게 오늘처럼 도시락을 마련해서 가져다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같은 사람이 같은 요리를 하는 것이긴 하지만 늘 집에서만 먹는 것 보다 환경을 바꾸어 이렇게 도시락을 만들어 와서 교회에 와서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생은 재미있어야 한다. 늘 먹는 점십밥 이지만 장소를 바꾸어 변화를 주는 것이다.

신속하게 설거지를 마친 남편에게 내가 제안을 했다. “우리 한시부터 두시까지 한 시간 동안 성경 읽을까요?” 남편은 곧 응수한다. “좋지” 우리는 원탁에 마주보고 앉아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요즘 성경 통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읽어오던 것을 이어서 읽으면 되었다. 읽는 방법은 잠시 기도를 한 뒤 남편이 한 장 읽고 내가 한 장을 읽는 방식으로 진행을 한다. 목이 자주 마른 나는 꼭 물 한 컵을 옆에 두고 성경읽기를 시작한다. 나는 성경 한 장을 읽고 나서 물 한 모금을 마신다.

육신의 양식을 배불리 먹고 영의 양식인 성경을 먹고 있는 우리는 오늘만큼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거의 시간이 다되어 갈 때 내 핸드폰 전화벨이 울린다. 우리 집 주방에 싱크대 수리신청을 해 두어서 아파트서비스센터 사람이 온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먼 옛날 도시락 싸 가지고 학교에 다니던 추억이 떠올랐다. 알루미늄 도시락에 보리밥과 장아찌와 콩장을 넣은 소박한 도시락 이지만 우리는 이 점심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겨울이면 교실에 있는 커다란 무쇠 난로 위에는 점심시간을 한 시간 남겨 놓고 아이들이 도시락을 가져다가 얹기 시작한다. 네모난 알루미늄 도시락이 차곡차곡 쌓인다. 밥이 누러 구수한 냄새가 나면서 점심시간을 맞이한다.

도시락에 대한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이 생각났다. 할아버지가 농사를 지어서 살았던 우리 집은 늘 보릿고개가 있었고 가을에 벼를 베어 추수하기 전까지는 봄에 수확해 두었던 보리로만 살아야 했다. 그러니까 봄부터 가을 추수 전까지는 꽁보리밥을 먹는 것이다.

얼마나 쌀밥이 먹고 싶었던지… 그런데 온 식구가 쌀밥을 먹는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바로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생신날이다. 그날 하루만큼은 엄마가 쌀밥을 지었다. 또 미역국과 여러 가지 반찬을 마련했다.

당연히 그날은 도시락도 쌀밥을 싸 주었다. 반찬도 평소보다 훨씬 화려했다 전도 있고 튀각도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생신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학교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날이 바로 공휴일이었던 것을 모르고 학교에 간 것이다. 그런데 나와 같이 착각하고 학교에 온 친구를 만났다. 나는 이 특별한 도시락을 안 먹고 그냥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학교 근처 동산에 올라가서 도시락을 먹자고 했다. 친구는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 나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젓가락을 만들어 친구에게 주고 함께 내 도시락을 먹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쌀밥 도시락과 맛있는 반찬을 이렇게 친구하고라도 나누어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아마 어릴 때부터도 내속엔 나누기를 좋아하는 DNA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초등학교 때 종종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을 몰아서 집에 데리고 오곤 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무언가 대접하고 싶은데 가난한 우리 집엔 먹을 것이 없었다. 부엌에 가서 가마솥을 열어보니 꽤 많은 밥이 있었다.

친구들을 불러들여 다 퍼 먹이고 난 저녁에 엄마에게 된통 야단을 맞았다. 그 밥은 남는 밥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족들이 먹어야 할 밥이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그날도 친구들을 몽땅 몰아서 집으로 데리고 왔었다. 친구들에게 뭘 먹일까 하고 벽장을 뒤졌더니 동그란 한알한알 봉지에 쌓인 초콜릿색의 환이 담긴 커다란 봉지가 나왔다.

우리는 그때 소백산 자락 밑의 아주 깡시골에 살았었는데 도시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사다 놓으신 것 같았다. 하나 까서 먹어보니 화하고도 달달했다. 친구들을 불러 과자라며 절반도 넘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에게 혼나고 방에서 쫓겨나서 어두운 마루에서 무서움에 떨며 벌을 서야 했다. 그 달달한 초콜릿색 환은 과자가 아니라 우리 형제들이 아프면 먹이려고 아버지가 비상약으로 도시에 나가셨을 때 사다 놓으신 약이었던 것이다.

행복한 도시락 점심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비약이 되었지만 지난날 그처럼 가난 했던 시절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을 지나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부를 누리는 GDP 3만 달러라는 풍요한 오늘을 일구어 내었다.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나라이다.

그런데 그런 훌륭한 나라가 지금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나랏빚은 늘고 있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 또한 늘고 있다. 나라가 잘 살면 개인이 좀 가난해도 묻어갈 수 있지만 나라가 망하면 개인도 온전할 수 없게 된다.

우리교회 근처엔 맛집이며 식당가가 즐비하다. 얼마 전엔 식당들도 이웃들이니 팔아주기 위해서 음식점을 바꾸어 가며 골고루 한 그릇씩 사 먹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젠 ‘행복한 점심’이라는 별명을 붙인 도시락 모드로 갈 수 밖에 없을 듯하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 6:25)”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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