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잠못 이루는 밤

벌써 새벽 한시가 되어가는 시각이다. 막 자려고 자리에 누웠다. 그때 자다가 일어나서 어머니 방을 다녀온 남편이 나에게 한마디를 툭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남편의 그 한마디에 나는 그만 잠이 화다닥하고 다 달아나 버렸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순간 내게 찾아든 감정은 분한 마음이었다. 결국 열심히 어머니를 모셔봐야 남편은 저정도 밖에 나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내심 저런 마음을 평소 갖고 있었을꺼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더 화가 났다. 좀전까지 졸렸는데 이제 정신은 말똥해지고 잠은 다 달아나 버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는 가운데 이번에 두번째로 며느리의 비애를 느꼈다. 내가 어머니가 낳은 친자식이 아니고 며느리이기 때문에 어머니 속으로 낳은 자녀들로 부터 그런 말을 듣고 그런 대접을 받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는 백날 잘해도 며느리인 모양이다. 만약 내가 어머니의 딸이었다면 남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론이 길어지니까 독자들은 도대체 무슨일이 그날밤 그 집에 있었던거야 하고 의문을 갖으실 것이다.

어제 저녁 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신 어머니에게 저녁을 차려 드렸다. 저녁을 잘 드시고 한참동안 TV를 보시던 어머니가 주무시려고 당신방으로 들어 가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얼마후에 화장실로 들어 가시더니 다시 어머니 방으로 들어 가셨다. 이번에는 내가 화장실에 갔는데 구린내가 진동을 하였다. 어머니가 대변을 보고 물은 내리셨지만 냄새가 아주 지독했다.

나는 휴지통을 열어 보았다. 어머니가 차고 있던 기저귀가 그곳에 들어 있었다. 아차 어머니가 대변을 보신후 사고를 치셨구나 싶었다. 부리나케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기저귀를 빼낸채 어머니가 입고 있던 내복에도 윗도리 쉐터에도 온통 변을 묻히고 있었다. 초비상이다. 그냥 물티슈로 닦아낼 정도가 아니었다. 옷뿐 아니라 몸에도 변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아이구… 어머니 몸을 씻어야겠어요.” 하며 나는 어머니를 목욕탕으로 모시고 갔다. 아예 머리도 감겨 드리고 비누칠을 해서 전신 목욕을 해 드렸다. 어머니를 씻겨 드리는 나에게서 땀이 풀풀 났다.

어머니에게 새 내복과 잠옷을 입혀 드렸다. 그리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어머니 손톱과 발톱을 좀 깍아 드리라고 말이다. 그리고서 나는 목욕탕을 청소했다. 어머니가 기저귀를 뜯어서 목욕탕 사방에 뿌려 놓았기 때문이다.

마치 생선 알같은 기저귀에서 나온 물질이 목욕탕 곳곳에 뿌려져 있어서 물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목욕탕에 깔아 놓은 매트 발판을 다 걷어내고 청소를 하였다. 그런데 한바탕 그런 일을 하고 나면 나도 이젠 나이가 있어선지 몸이 지친다.

거실로 나온 나는 머리를 감아서 아직 촉촉한 기운이 있는 어머니의 파마머리를 내 두손을 넣어서 손가락으로 빗처럼 머리를 쓸어서 넘겨 드리면서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 목욕해서 개운하고 기분 좋으시지요?” 어머니는 “응”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 하신다.

어머니를 방에 눕혀 드리고 이불을 덮어 드렸다. 아직 겨울 이불은 두꺼울것 같아서 차렵이별을 두개 겹쳐서 덮어 드렸다. 그리고는 남편과 운동을 하러 나갔다. 동네 근처 공원을 산책을 하고 교회로 가서 잠시 기도를 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어머니가 방 밖으로 나오셔서 물을 달라고 하신 모양이다. 남편이 물병에 물을 담아서 가지고 어머니 방에 들어가보니 어머니가 이불도 제대로 안 덮고 쪼그리고 침대에 누워 계시더라는 것이다.

남편은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속상했나보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내가 어머니에게 불친절하게 해서 어머니가 화를 낸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오후에 치과에 갔었다. 어머니가 최근에 틀니를 어딘가에 버려서 찾지 못하고 결국 틀니를 맞추러 치과에 갔다

남편이 말했다. “저녁에 어머니 모시고 치과에 가서 틀니 맞추고 나왔을때 어머니가 고맙다고 하셨어. 그걸로 보면 어머니가 비록 대변처리는 잘 못 하셔도 사리 분별은 하시는 거야” 나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하고 듣고 있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어서 남편은 “그런데 어머니에게 변 묻었다고 하고 목욕 하셔야 한다고 당신이 말했을때 어머니가 아마 수치심을 느꼈을 거야. 그래서 화가 나서 이불도 안덮고 그렇게 쭈구리고 누워 계셨던것 같아” 그말을 듣고 있는데 나는 순간 커다란 망치로 뒷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저렇게 소설을 쓰는것 같이 자기멋대로 오해를 하고 있을까 한마디로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심으로 어머니를 섬기고 보살폈던 내 마음을 어쩌면 저렇게 곡해하고 아프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과 배신감 그리고 무언가 내 진심을 도적 맞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신뢰해 주어야 할 남편이 저렇게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안절 부절 힘들게 했다.

이달 말이면 우리 부부는 결혼한지 40주년이 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으면 나는 갓 시집와서 시댁 식구들에게 내가 익숙하지 않고 또 내가 시댁식구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집살이 하던 새댁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든다.

그리고 며느리는 영원히 며느리일 뿐인가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시집 식구들에게 잘해도 “너는 남의 식구야” 라고 대접 받는 그런 기분말이다. 수개월 전에도 해외에 사는 시누가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갔다.

그런데 어머니 방을 치우다가 우연히 시누이가 어머니에게 써놓고 간 글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나를 몹시 불쾌하게 하였다. 글의 내용중에 “올케가 엄마에게 좀더 잘해 주면 좋을텐데… 할 수 없지. 엄마가 참고 살아” 이런 내용이었다. 그때도 정말 속이 부들부들 떨릴만큼 화가 났었다.

나는 그때도 며느리로서의 자괴감을 느꼈다. 일년에 한번이나 찾아올까 말까한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인 나에게 수고의 인사는 차치하고 그런 말을 해서 어머니와의 사이를 소원하게 하면 안되는것 아닌가 말이다.

그때도 어처구니 없어하며 쓰린 속을 쓸어 내렸던 씁슬한 기억이 있는데… 그래도 시누이는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니니 화가 나도 혼자 속으로 삭이고 지냈다. 딸인 자신이 오랫만에 어쩌다 찾아와 본 어머니가 병증이 심해진것을 보고 속상하니까 며느리인 내가 잘 못 모셔서 그렇다고 오해한 것일수도 있겠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사람도 아닌 남편이 나에게 어머니를 잘못 모신다고 오해를 하며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럴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시간은 벌써 새벽 세시가 다 되어간다.

남편은 코를 골며 잠을 자는데 나만 잠못 이루며 속상해 하고 있다. 정말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 상상도 할 수 없는 오해를 당한것이다. 목욕시켜 드리고 기분 좋아 하셨던 어머니인데 어머니의 돌연한 행동들은 최근 어머니가 치매가 깊어지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머니는 갑자기 박수를 막 친다거나 옷을 아예 다 벗고 누워 계신다거나 전에 안하던 행동을 하셔서 나도 깜짝 깜짝 놀라기 일쑤이다. 특히 최근에 많이 심해 지셨다. 그러나 나는 그저 어머니 치매가 점점 심해 지는 과정이구나 하고 있는대로 받아 들이고 대응한다. 반면 남편은 그것을 곡해하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나를 어머니에게 수치심을 주어 화나게 만드는 그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속상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난 열심히 어머니를 보살피느라고 애를 쓰고 있는데 알아주기는 커녕 저런 오해를 하다니…

남편은 내가 어머니를 모시면서 일어났던 험한일들을 다 모른다. 어머니가 이런 저런 사고를 일으켰을때 내가 내가 남편에게 미주알 고주알 다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색내는것 같아 보일까봐도 그렇지만 그저 하나님만 알아 주시면 되지 하고 속으로 삭일때가 어디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어머니의 상태가 안좋아진 부정적인 모습을 맞닥뜨린 남편은 어머니가 그런행동을 하는것을 나에게서 그원인을 찾고 책임을 추궁하고 있는 것처럼 나에겐 느껴졌다.

그래도 요즘 어머니 상태를 남편도 알아야 할것 같아서 오늘은 비교적 자세히 어머니가 대변 처리 못한 일과 목욕탕에 기저귀를 뜯어서 뿌려놓은 일을 이야기 했더니 남편은 기분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역시 사람은 좋은 소리만 듣고 싶고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은 모양이다. 최근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가족이 한집에 살아도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을 다른 가족은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육아같은 경우도 그렇다. 아내가 힘들게 육아를 감당하고 있지만 직장에 나가 있는 남편은 잘 모른다 아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무슨 무슨 일이 일어 났었다고 이야기해 줄때만 비로서 아내의 애로사항을 남편도 알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 모시는 것도 직접 시중드는 아내의 애로사항을 남편은 모른다. 더욱이 함께 살지 않고 자주 오지도 않는 다른 형제들은 더더욱 모른다. 그런데 점점 치매가 심해지고 돌발행동을 하는 어머니의 상황을 말해주면 어머니의 자녀들은 별로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취약해진 자신들의 어머니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내 심정은 지금 모래알같다. 어머니를 성심껏 모신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에 후추가루가 잔뜩 뿌려진 느낌이다. 씁슬하고 슬프고 힘들고 맥이 빠진다. 내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해 놓고도 잠이오는지 정작 남편 자신은 쿨쿨 잠을 잔다.

휴~별 수 있나 나도 자야지 그나저나 이제 자서야 새벽기도 가도록 일어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결혼해서 40년 동안 함께 살아도 절대 안바뀌는 남편 그리고 시댁식구들이다.

나는 남편을 포함한 시댁 식구들을 변화 시킬 수 없다는 것을 비교적 빨리 감지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래서 속상해 하지 않고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냥 포기하는게 빠르다는걸 오래전에 깨달았다. 그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를 이해해 주거나 나에게 잘해 줄것을 아예 포기하면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대로 변화되지 않아도 평안을 유지하며 견딜수 있다는 것을 나는 신앙안에서 터득했다. 그래서 나는 밝게 살 수 있었다.

그래도 결혼 생활 연륜이 깊어 지면서 우리 부부는 별로 부딪히지 않고 살아온 편이다. 일단 상대방의
단점을 말하지 않으니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일은 정말 어처구니 없고 억울하고 화가 났다.

이런일이 종종 생길때 내가 제일 잘하는것은 하나님께 일러 바치는 것뿐이다. “하나니임~저사람 보래요!나를 괴롭혀요!!” 하고 기도하고 털어버린다. 자꾸 마음에 담아두면 나만 생병날테니말이다.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 씩씩 거리며 분한 마음을 삭이며 앉아서 글을 쓰다가 가만히 나를 돌아 보았다. 혹 내가 그동안 어머니를 모시는데 있어서 너무 자기의를 내세우며 모셔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회개하라고 하나님은 남편의 입을 통해 충격요법을 쓰신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억울해서 이렇게 정신이 말똥해지고 잠도 못 자고 있는데 내가 회개해야 한다고? 하긴 내가 아무리 어머니에게 잘한다고 하더래도 하나님의 기준에 안들었다면 모두 헛일이겠지… 그렇지만 난 오늘 매우 억울한걸. 그리고 누군가의 위로도 필요 하다구 흑흑…슬프다.

하지만 내일도 희망의 태양은 떠오르겠지 그리고 뭔지 모르지만 좋은일도 있겠지.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니까…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애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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