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키라도 크지 말지

사람들은 보통 키가 크기를 소원한다. 특히 부모가 키가 작을 경우엔 자신의 자녀들이 키가 작을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만큼 남자든 여자든 키가 크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키가 작기를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토요일인 오늘 오전에 나는 어머니를 목욕시켜드렸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계속해서 “키라도 크지 말지”라는 말을 몇번 이나 반복 하신다. 어머니의 자각은 당신이 키가 크고 수족이 길어서 내가 어머니를 씻기는데 힘들어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하는 말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는 참 불가사의할때가 많다. 어떤땐 치매를 앓는 사람이라기엔 너무 소견이 멀쩡한 말을 하다가도 어떤땐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시기 때문에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은 것이다.

최근 어머니는 기저귀를 갈아 주고 물티슈로 몸을 깨끗이 닦아주는 나에게 “울엄마네” “울엄마네” 라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었다. 당신의 치부를 닦아주고 돌보는 나의 손길에서 어머니는 오래전 아기때 겪었던 자신의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토요일인 오늘은 어머니가 주간보호센터를 가시지 않는 날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침을 차려 드리고 기저귀도 새것으로 깨끗이 갈아 드렸다. 보통 토요일 오전에는 잠을 주무시던 어머니가 오늘은 거실로 나오셨다. TV를 보시겠다는 것이다.

나는 TV를 켜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가 소파에 앉으시는데 냄새가 지독했다. 이상하다 좀전에 새 기저귀로 갈아 드렸는데 금새 실수를 하셨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쿠~ 기저귀에 대변이 묻어 있었다.

물티슈로 몸을 닦아주는 정도로 안될것 같아서 어머니의 손을 이끌어 화장실로 들어 갔다. 그런데 화장실 안에는 기가막힌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화장실 나무 깔판위 여기 저기 똥칠이 되어 있고 벽에도 잔뜩 똥물이 뿌려져 있었다.

변기 뚜껑을 열었더니 변기에도 온통 똥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순간 머리속이 하애졌다. 무얼부터 치워야 하지 하면서 정신없이 변기를 닦고 벽을 닦고 깔판을 닦아내고 샤워기로 물을 뿌려 닦아 내었다.

나는 부러 우는 소리를 좀 내면서 “아이고 어머니 이게 뭐예요. 왜 화장지가 옆에 있는데 화장지로 닦으시지 손으로 똥을 만져서 이렇게 사방에 발라 놓았어요? 내가 이거 다 치워야 하잖아요. 왜 그러셨어요 엉엉…”

어머니가 전에도 이렇게 똥칠을 하고 사고를 친것이 한 두번도 아니었다. 나는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일부러 좀 우는 소리를 내면서 황당해 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좀 충격을 받고 이렇게 똥칠하는 일을 하지 않게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대충 변기며 벽이며 깔판이며를 닦아내고 일단 어머니를 씻겨야 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화장실 청소를 전체적으로 해야 한다. 어머니의 머리를 감기고 샤워겔을 거품 수건에 묻혀서 온몸을 닦아 드렸다. 어머니는 목욕하는 것은 좋아 하신다.

기다란 어머니의 팔을 닦고 긴 다리를 쭉벋게 하고 비누거품을 묻혀 닦아내었다. 아기를 씻기는 것이야 간단 하지만 어른을 씻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고 나도 허리가 아프다.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힘들어도 이런 일을 남편을 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을 씻겨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마른 수건으로 어머니의 몸을 닦아내는 나를 보면서 계속해서 혼자 소리를 하신다. “키라도 크지 말지” “키라도 크지 말지” …어머니는 하나에서 열까지 다 내손이 가야만 한다. 스스로는 씻겨논 자신의 몸을 마른 수건으로 닦는 일조차 어머니는 못한다.

씻기고 닦이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말리고… 모두 내 손길이 가야 한다. 어머니는 당신이 방금 사고를 치고 내가 힘들어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미안한 마음의 표시를 “키라도 크지 말지”라고 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머리를 마른 수건으로 닦으면서 내가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예요. 어머니가 작기라도 했으면 내가 씻겨 드리기 좋았을텐데…” 이렇게 어머니의 “키라도 크지 말지”라는 말에 대꾸해서 받기는 했지만 나는 어머니의 반응이 매우 놀라왔다.

알츠하이머(치매)병은 이처럼 몹쓸병이다. 감정은 다 작동을 하는데 인지가 망가져 있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대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변기 바로 옆에 있는 화장지를 이용해서 변을 닦아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나는 거의 매일 어머니의 침구를 빨다싶이 한다. 어른 소변은 조금만 묻어도 냄새가 지독하기 때문에 침대의 매트는 거의 매일 빤다. 어머니의 몸에서 그리고 어머니의 방에서 오줌 냄새가 나지 않게 하려면 내가 부지런해 질 수밖에는 없다.

그런데 오늘처럼 대변칠을 사방팔방 해놓고 사고를 쳐 놓으면 소변칠을 해서 침구를 빨고 처리를 하는 것보다 거의 세배는 힘이 드는것 같다. 어머니가 사고쳐 놓은 것을 치우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에게 어머니가 “이번에 두 번째지?” 한다.

내가 아무 대답도 안했더니 또 “이번에 두 번째지?”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렇게 대변칠하고 사고친 것이 두 번째, 즉 두번 밖에 안했다는 뜻이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 어머니 두 번째가 뭐예요. 스무번 째는 되었겠다.” 이렇게 답을 하면서도 어머니가 나에게 미안해 하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마다 어머니를 일어나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침마다 어머니 방에 들어서면서 나는 창문의 블라인드를 올리고 “자, 일어 나세요. 아침 드셔야지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십중팔구 어머니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안먹어”이다.

그때부터 우리 고부는 실갱이가 벌어진다. “어서 일어 나셔서 아침을 드시고 약도 드셔야 해요.” 라고 내가 말하면 어머니는 곧바로 “아까 먹었어” 하신다. 내가 “언제 드셨어요. 밥 안드시면 기운 못차리셔요. 어서 일어나세요” 하면 우리 어머니의 기막힌 대답이 또 돌아온다.

어머니는 나에게 “내가 밥 안먹고 죽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대단히 상투적인 말투이다. 아마도 어머니가 젊었을때 이런 말투를 많이 들으신 모양이지 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참동안 이런 실갱이를 벌이고서야 어머니를 일으켜서 잠옷을 벗기고 겉옷을 갈아 입힐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친히 인도해서 앉혀 놓아야만 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언제나 “밥 안먹겠다.”또는 ”내가 먹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해놓고는 차려드린 밥과 반찬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신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바라 보면서 “정말 큰애기에 다름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가 당신을 씻기는 나에게 미안한 감정을 담아 했던말 “키라도 크지 말지” 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왜냐하면 전에 종종 내가 어머니를 씻기고 나면 허리가 몹시 아플때마다 속으로 어머니가 좀 작았으면 씻기기 쉬웠을텐데…하고 생각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을 어머니의 입을통해 그대로 들은 것이다. “키라도 크지 말지” 물론 어머니는 젊었을 때 보다 키가 많이 줄었다. 아마 5센티는 줄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족이 줄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허리가 굽어져 키만 줄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머니보다 작은 며느리가 자기보다 큰 시어머니를 씻기고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행동은 하나도 못고치면서(치매병으로 인해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말로만 한몫 보시는 중이다.

며느리인 나를 향해서 “울엄마네” “키라도 크지 말지” “이번이 두 번째(대변사고친것)지? “ 등등… 아무래도 어머니를 돌봐 드리다가 어머니가 천국으로 이사 가시면 나는 치매 앓던 우리 어머니의 ‘치매어록’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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