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마지막 결혼식을 준비하며

아침부터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나는 우산을 쓰고 동네 네일아트점을 찾아갔다. 미리 예약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도 이젠 뭐든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서 미리 미리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해 두어야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평생 수고해온 내 두손을 네일아트를 하는 분에게 내밀었다. 정성껏 내 손톱을 갈고 정리하고 소독하고 바르고 말리고 한시간 가까이 수고를 한다. 결혼식을 앞둔 혼주니까 핑크톤으로 하되 너무 단조롭지 않게 반짝이펄을 한손에 두 개씩 손톱에 발라 주었다.

생전 안해보고 살아온 네일아트 이지만 정성껏 손톱을 다듬고 메니큐어를 발라주니 예쁘다. 내가 여자인데 왜 안좋을까? 사치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안해서 그렇지. 마지막으로 아들 결혼시키면서 손톱까지 호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손톱을 예쁘게 했으니 발톱도 하기로 했다. 왕좌에 앉듯이 손님을 높은 의자에 앉히고 네일아트를 하는 분은 바닥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서 내발톱을 열심히 다듬고 소독하고 나서 짙은 빨강색의 메니큐어를 발라준다.

깨끗하게 다듬어지고 정리된 다섯개 발가락의 발톱이 산뜻한 빨강색으로 빛난다. 나는 속으로 오호~ 샌달을 신으면 아주 예쁘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발톱도 메니큐어를 해보길 잘했어. 이럴때 아니면 언제 내발을 호사시켜 줄 수 있겠어.

평생 나의 몸을 지탱시켜주고 어디든 가도록 쓰임 받은 발이 아니던가. 언젠가 선교지에서 발이 병이나서 걷지를 못해 휠체어를 타고 귀국했던 생각이 났다. 네일 아트를 하면서 나는 걸을 수 있는 건강한 발과 발톱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K선교사는 진즉에 아들 며느리가 맞추라고 안내해준 일산의 맞춤 양복점에서 아마 일생 가장 비싼 양복을 맞추었을 것이다. 며느리를 얻는 것도 감사한데 남편은 맞춤 양복에 맞춤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두개 선물로 받았다.

오래전 여고교단에 섰던 남편은 여학생들로부터 인기가 짱이었다. 어느해인지 스승의날 여학생들은 각자 학생 수 만큼의 장미꽃과 여러 선물을 자신들의 국어선생님인 남편에게 선물했었다. 그 일은 국어 선생님으로서 남편의 인기를 말해 주었다.

여고생들은 남편에게 두개의 별명을 붙여 주었다. 하나는 이야기를 잘 들려 준다고 해서 ‘스토리김(Story Kim)’이라고 불렀다. 다른 하나의 별명은 ‘베스트드레서(Best dress)’였다. 양복이 잘 어울리는 국어 선생님인 남편에게 여학생들은 그렇게 불렀다.

고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신학대학원을 들어가서 신학을 하고 목사와 선교사가 되어 선교지로 갔을때부터 남편은 베스트 드레서가 아니었다. 후줄근한 티셔츠나 남방을 입고 다니면 영낙없는 중국사람이었다.

중국사람들은 혹 나에겐 홍콩사람이냐? 대만사람이냐? 라고 물었지만 남편에겐 누구도 외국 사람이냐고 묻지를 않았다. 남편은 영낙없는 중국사람 같은 복장과 모습으로 다녔었기 때문이다.

목회자를 비롯해 일반 남성들도 말쑥한 양복을 입는 우리나라 정서에서 후줄근한 남방차림으로 한 교회의 선교부를 방문했을 때 선교부의 집사님이 “선교사님 중국사람처럼 잘 어울리시네요” 라고 한말을 들으며 나는 그것이 칭찬이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하지만 거의 새옷을 안해입다싶이 하는 남편에게 유일하게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데 그것은 자녀들을 결혼 시킬때이다. 15년전 큰딸을 결혼 시킬때 새 양복을 사 입었고 4년전 작은딸을 결혼시킬때 새양복 한 벌을 사 입었다.

그러나 이미 그 옷들은 남편이 입을 수 없는 옷이 되었다. 나잇살이 들어 몸이 불어 맞지를 않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아들이 결혼을 하게되어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맞춤 양복을 선물한 것이다. 기성복의 두배 이상인 맞춤 양복을 맞추러 일산으로 갔다.

양복을 맞추고 가봉을 하고 찾으러 갔다. 도합 세번을 방문해서 양복을 한벌 받은 셈이다. 나는 감개가 무량했다. 저렇게 양복이 잘 어울리는 ‘베스트 드레서’에게 내형편에는 옷하나 못해 주었는데 이번에 좋은 맞춤 양복을 선물해준 며느리가 고마웠다.

맞춤양복을 입어보는 남편을 보며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그거 아들 결혼식에도 입지만 내년에 당신 칠순기념으로 겸사 겸사 해 입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내년이 남편의 칠순이다.

남편의 칠순을 맞아 나는 야무진 기도를 하고 있다. 아직 한번도 성지순례를 못가본 남편이 내년에는 꼭 성지순례를 갈 수 있도록 말이다. 성지순례는 가능한 일찍 가야 한다. 걷는것이 많아서 체력이 많이 필요 하기 때문이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 혼주인 남편과 나 스스로를 준비하는 것부터가 사뭇 가슴 설레는 일이다. 결혼식의 모든 일정과 프로그램은 아들과 며느리가 알아서 하고 있으니 우리는 우리가 준비할 것만 하면 되었다.

아들이 순서 가운데 아빠에게 덕담과 축복기도를 부탁해서 남편은 그 초안을 잡느라고 고심을 한다. 아들의 결혼식에서 덕담을 하고 인사말을 하고 축복기도를 하는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은 잘해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전직이 국어 선생님이니까 그것도 스토리김(Story Kim)이라는 별명으로 여학생들에게 불리울 만큼 인기 있는 국어 선생님 이었으니 좋은 말과 글을 만들어낼 것이다. 기대가 된다. 우리 가정의 마지막 결혼식이니 말이다.

네일아트로 손톱과 발톱을 예쁘게 다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인생을 생각한다. 42년전 결혼해서 삼남매를 낳아 키웠는데, 어느듯 삼남매가 모두 자신의 가정을 갖게 되었다. 이게 왠 복일까? 부슬 부슬…축복의 비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내린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 1:4)”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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