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박수소리와 장미

최근에 듣게 되어 관심을 갖게된 발라드(자유로운 형식의 서사적인 가곡이나 기악곡. 대중음악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감상적인 노래) 노래 가운데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과 ‘휘파람’ 이라는 노래가 있다.

수년전에 목소리가 청아하고 예쁜 열다섯살 여중생 김윤희(지금은 아마 여대생)와 이문세가 듀엣으로 부른 이 노래 ‘그녀의 웃음소리뿐’ 하고 ‘휘파람’을 특히 나는 좋아한다.

매우 서정적인 노랫말에 깊은 감성으로 부르는 이 노래의 가사 가운데 ‘그저 그녀의 웃음소리뿐’이라는 소절이 있다. 그런데 그 노래의 이소절을 들으면서 나는 재미 있는 생각을 한다.

우리집에선 ‘그저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아니라 “그저 그녀의 박수소리뿐”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분들은 우리집에 한번 와보면 곧 알게 된다. 우리 집에선 박수소리가 매일 매일 자주 자주 들린다.

짝짝짝짝…만약 우리집에 누가 방문을 했다면 종종 들려오는 뜬금없는 박수소리에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누구라도 아마 당연히 그럴 것이다. 나도 처음 그 박수소리를 들었을땐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치매를 앓는 우리 어머니가 시도 때도 없이 박수를 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올해의 어느날 부터 였을 것이다. 수개월전 쯤이었다. 어느날 어머니가 방에서 박수를 막 치시기에 나는 무슨일이 있나 하고 어머니 방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냥 침대에 드러누워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나 의미가 없이 그냥 손바닥을 딱딱 마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어머니 방에서 들려오는 박수치는 소리는 우리집에 울려 퍼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소리가 되었다.

이제 남편도 나도 어머니의 박수소리에 매우 익숙해졌다. 남편은 어머니가 박수를 쳐대면 농담까지 덧붙인다. 어머니 방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면 남편은 “여보, 어머니가 밥달라는 신호야 하하하…”

그러면서 남편은 어머니의 이런 돌발행동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사실 어머니가 박수 치시는 것은 좋은 거야 박수치면 손바닥이 내장기관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건강이 좋아지거든”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우리 집안엔 크고 작은 에피소드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벌어진다. 어느날 나는 어머니 방을 치우다가 침대밑에 음식오물을 뱉어 놓은것을 발견했다.

물티슈를 꺼내어 오물을 닦으면서 나도 모르게 “아유~ 이게 또 뭐야 내가 못살아요”했다. 그런데 내가 전혀 예기치 못하게 어머니는 곧바로 순발력있게 내 말을 받아친다. “내가 때려죽였어 왜 못살아?”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니의 변함없는 재치 있는 언어 구사 능력 때문이다. 그럴땐 어머니는 전혀 치매에 걸린 사람 같지 않은 사람처럼 멀쩡해 보인다. 뇌의 어느 부분은 기능을 발휘하고 어느 부분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 주일 오후에도 그랬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변을 세번이나 보셨는데 두번은 내가 처리해 드렸지만 세번째는 내가 모르는 사이 변을 보신 모양이다. 어머니 방문을 열었더니 이걸 어쩌나 실로 엄청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대변을 방에서 보고나서 혼자 처리 하려고 했는지 이불과 잠옷과 방바닥에 새까만변(변비약을 드셔서 변이 까맣다)이 뒤범벅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런데 내가 놀란것은 어머니의 손이었다. 오른손이 손등까지도 온통 똥칠이었다. 손으로 변을 막 주무른 모양이었다 손톱 밑에까지 까만변이 끼어 있었다.

나는 순간 아연실색 했지만 이 일을 신속히 처리해야 했다. 그러나 혼자 처리 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마침 집에 있던 남편을 불렀다. 이젠 가능하면 나혼자 어머니가 저질러 놓은 사고를 처리하지 않고 남편을 불러서 함께 수습을 할 생각이다. 그래야만 남편도 어머니의 치매 진행에 대한 이해를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에겐 엉망이 된 방을 치우라고 부탁했다. 그리고서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빨리 대변에 범벅이 된 손을 씻겨 드려야 했다. 나는 부드러운 수세미에 세정제를 묻혀서 어머니의 손을 몇번이고 닦았다. 그리고 치솔로 어머니의 손톱밑에 낀 까만변을 닦아 내었다.

손 세정제를 뿌리고 손을 닦아 드리면서 내가 한마디 했다. “어머니 이거 똥이잖아요 병균도 많은데 이걸 왜 만졌어요?” 그러자 우리 어머니의 그 순발력 있는 대답이 또 내게 돌아왔다. ”응 내가 먹을려구 왜?” 어머니는 완전히 어기짱을 놓고 있었다. 아니면 그런 와중에서도 농담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를 씻긴후 목욕탕 밖으로 나오자 이불과 잠옷과 옷등 어머니가 대변을 묻혀논 빨래감이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다. 이런 빨래감은 세탁기에 돌릴 수도 없다. 손빨래를 한 다음에라야 세탁기에 넣어 빨 수 있다.

알츠하이머환자(치매)는 퇴행성 뇌질환이 많이 진행되면 판단력 및 일상생활수행능력이 계속적으로 저하된다. 어머니는 이미 치매 말기증상까지 와서 스스로 독립된 생활은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런데도 언어 능력은 우위를 보이는 것이다. 아주 가끔씩이긴 하지만…

인지기능의 저하를 불러오는 알츠하이머병(치매) 이란 일상생활조차 하지 못하도록 이렇게도 분별이 없어지는 것인지 참으로 알츠하이머(치매)병은 무서운 병이다. 육체는 건강해도 뇌에 이상이 생기는 병이니 어쩌면 육신의 질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수년전 ‘시의찬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는 왕년의 톱스타 윤정희씨가 국내에 들어와서 촬영한 영화여서 나는 관심을 가지고 보러갔다.

영화에서 윤정희씨는 이혼하고 돈벌러간 딸의 아들 즉 외손자를 키우면서 살고 있다. 그녀는 요양 보호사를 하면서 문화센터에 나가서 ‘시’를 습작한다. 시짓기에 골몰하던 그녀에게 어느날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알츠하이머(치매)병이다.

그녀는 자신이 요양 보호사 이기에 아마도 치매가 시작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를 더욱 잘 알았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부산에서 일하고 있는 딸에게 편지를 보내 손자를 돌보러 돌아오라고 하고는 어느날 다리에서 강으로 몸을 날려 자살함으로 생을 마감하는 시그널을 끝으로 영화는 끝난다.

내가 이 영화를 보았을땐 우리 어머니가 치매에 걸릴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때였다. 아니 친정 부모님이나 시아버님은 치매에 걸리지 않아서 나도 이 병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었다.

그런데 8년전쯤인가 어느날 어머니가 밖에서 헤메고 있다고 새벽 두시경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치매 증세가 시작된 것이다. 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도 어머니는 종종 집에서 없어져서 나와 남편의 속을 태웠다.

어느 비오는날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으러 나는 미친사람처럼 거리를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어머니가 없어져 경찰에 신고하고 난리가 난적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니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 아래층 사는 청년이 모시고 왔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치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젠 치매에 걸린지 8년을 넘기고 있는 어머니는 중증의 치매증세를 보인다. 특히 대소변을 못 가리는 대변실금은 보호하는 가족을 가장 힘들게 하는 증세이다. 온통 이불이며 옷이며 자신의 몸이며 똥칠을 해 놓으면 씻기고 방을 치우고 침구를 빨아야 한다. 최근에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불을 빨게 된다. 그야말로 아기같은 어린애가 되어 버린것이다. 그러나 작고 귀여운 어린애가 아닌 커다란 어른어린애이다.

’휘파람’이라는 노래에서 떠나간 애인을 그리워하며 “그대여 나의 어린애 “ 라고 노래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우리 어머니가 ‘나의 어린애’이다 나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약하고 무능하고 안쓰러운 ‘나의 어린애’ 말이다.

저녁에 자리에 누운 어머니의 등에다가 붙이는 패취(치매방지약)를 붙여 드렸다. 이럴때면 나는 일부러 손바닥으로 어머니의 등 전체를 맛사지 하듯이 만져 드린다. 손가락을 세워서 살살 긁어 드리기도 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이구 좋다” 하면서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한참 등을 만지는 스킨쉽을 한 후에 이불을 잘 덮어 드리고 어머니의 이마에 뽀뽀를 해 드리면서 “어머니 사랑해요. 잘 주무세요.”한다. 그러면 어머니의 얼굴에 어린애 같은 천진난만한 흡족한 미소가 떠오른다.

어머니 방의 전등을 꺼 드리고 어머니 방문을 닫고 나오는데 문득 그런 깨달음이 왔다. “아…그렇구나 예수님이 치매 걸린 어머니 모습으로 우리집에 찾아오신 거구나. 예수님이 내 사랑이 필요해서 우리 집에 와 계신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나를 힘들게만 한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문득 ‘휘파람’의 마지막 소절 “그대여 나의 장미여~”가 기억이 났다. 오늘 내 마음에는 어머니가 한송이 장미로 피어나고 있었다. 내사랑을 그리워하는 한송이 어여쁜 장미로…

내 인생의 여정에서 지금은 날마다 나의 장미인 어머니를 돌보고 사랑해야 할 때이다. 그 장미가 활짝 피어나 천국의 향기를 흩어 놓기까지 그 장미를 돌봐 주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중이다.

거실로 나온 나에게 어머니의 방문 저쪽에서 또 들려온다. ‘그녀의 박수소리’가…그 박수 소리는 마치 “나를 더 사랑해 줘”라고 오늘도 나를 부르는것만 같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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