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유학생의 하숙비와 생일선물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누구에게나 매년 어김 없이 찾아오는 생일날.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그 첫날을 우리는 일생동안 기념하며 살아간다. 생일, 그 날이 없었다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소중한 날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지난 10월 3일 개천절은 내 생일 이었다. 이날 나는 가족과 함께 동네에 있는 채선당에 가서 쇠고기 샤브샤브로 조촐한 점심을 먹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나간 모처럼의 외식 이었다.

식당에서 어머니를 내 옆에 앉혀 드렸다. 음식을 공궤하기 위해서 옆에 앉혀 드리는게 편해서였다. 어머니는 내가 육수에 잠궜다가 건네주는 쇠고기와 야채와 국수와 만두를 열심히 드신다.

문득 열심히 맛있게 음식을 드시는 어머니가 참 사랑 스럽게 여겨졌다. 별 생각이 없으신 듯이 식사에만 여념이 없으신 어머니를 보며 나는 농담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 마디를 툭 던져 보았다.

“어머니, 오늘 며느리 생일인거 아시죠?” 어머니는 전혀 몰랐다는 듯이 “아, 그래?” 하신다. 요즘은 무슨 말을 들으셔도 곧 잊어 버리시기 때문에 아침에 이미 이야기를 해 드렸지만 안들은것 처럼 반응을 하시는 것이다.

“네 제 생일이예요. 축하해 주셔야죠” 했더니 어머니는 새롭다는 듯이 “그래 생일 축하한다.” 하신다. 나는 그 다음 단계로 장난기가 또 발동한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며 또 한마디 던진다.

“어머니 생일 선물 주세요. 며느리 생일 선물 없어요?” 내 말을 들은 어머니의 얼굴 표정이 갑자기 난감하다는 듯이 바뀌더니 자신 없어 하는 조그만 목소리로 “없어” 하신다. 나는 푹~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서 묵묵히 밥을 먹던 남편 K선교사가 어머니를 거들기 위해 나선다. “어머니, 내가 너의 생일 선물이다. 라고 하세요.”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아들을 빤히 쳐다 보신다.

남편은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상기하고 있는 것이다. 생일날 아침 대구 사는 큰 딸이 페이스 타임을 걸어왔다. 외손녀 로아에게 할머니 생일 선물을 드리라고 하자 로아가 자기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 쓴 글씨를 보여 주기 위해서 겉 옷을 번쩍 쳐들었다.

그 티셔츠에는 “Grandma’s favorite gift “라고 쓰여 있었다. 곧 로아 자신이 바로 내게 선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얼마나 깜찍하고 귀여운 행동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남편은 로아가 했던 것을 그대로 어머니에게 적용시켜 어머니가 나의 선물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하하.. 호호.. 웃으면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집으로 오는 길에 투썸 플레이스에 들렸다. 큰딸이 보낸 케익상품권으로 케이크를 찾아오려고 했더니 자기네는 특별 매장이라 현금으로만 거래를 하지 상품권으로 거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딸이 사 준 케이크보다 1/4정도 되는 작은 케이크 한 조각을 6,300원에 샀다. 그래도 조각케잌도 케잌이니 초를 달라고 했다. 집에 와서 케잌에 촛불 6개를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나이 먹는 숫자가 의미 없어져서 이젠 매년 6개만 초를 꼿을 생각이다.우리 가족은 삼등분한 조그만 케이크 한 조각과 망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내 생일을 축하 했다.

그러나 이처럼 소박하게 내 생일을 축하 했지만 나는 그 어느 해의 생일 보다도 충만하고 행복한 의미 있는 생일을 보냈다. 그것은 나에게 온 생일 선물로 한국에서 유학하는 한 유학생을 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내가 어머니와 식사하는 사진을 본 MK사역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백선생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저도 생일 케잌하나 보내도록 계좌좀 알려 주세요.” 그리곤 케잌값을 20만원이나 보내 왔다.

나는 “백선생님 생일케잌 7년치 한꺼번에 보내셨네요. 감사 합니다.” 했다. 다음에는 평소 친분이 있는 김포에 사시는 여목사님이 전화를 걸어 주셨다. “목사님, 생일 축하 해요. 생일 선물로 강대상 하나 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하신다.

그리고 좀 있다가 웃으시면서 “강대상은 교회에 해 놓는 것이고 개인 생일 선물도 하나 해 드리고 싶어요.” 하신다. 나는 분에 넘치는 생일 축하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최근 내가 고민 하고 있는 일이 떠 올랐다.

그것은 그동안 내가 도와 오던 중국 유학생에 대한 생각이었다. 나는 수년 동안 후원을 모금해서 신학 박사 과정에 있는 이 유학생의 하숙비와 용돈을 지원해 왔었다. 매월 50만원을 송금해 주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고정적으로 후원을 해 주는 분이 있었고 논문이 통과 안되면 매학기 다시 내야 하는 논문지도비 80만원도 몇 차례나 지원해 준 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달 하숙비가 모금이 안되고 있었다.

9월30일 내야 했을 하숙비를 못 내고 10월을 넘겼으니 그 형제가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아침 저녁 밥을 얻어 먹기가 얼마나 면구스러웠을까…이틀전인가 그 형제는 내게 “하숙비 오늘 아침도 재촉해서 난감하네요(눈물)”라는 문자를 보내 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 형제에게 기도하자고 했지만 나역시 정말 고민이 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나는 전혀 뜻밖에 두분에게서 20만원씩 40만원의 생일 선물을 받았으니 이것을 그 형제의 하숙비로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0만원을 더 보태서 50만원을 얼른 그 형제에게 보내 주었다. 아마도 중국 유학생 형제가 그 날 저녁은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말이다.

보통 생일 선물은 3만원~5만원 선에서 많이 한다. 나도 가족들의 생일 선물값을 5만원 선에서 하고 있고 가족들도 그 선에서 하는게 상례이다. 케잌을 보내오는 분들도 대부분 3만원~5만원짜리 케잌을 보내온다.

그런데 올해 나는 뜻밖에도 평소 보다 몇 곱의 많은 생일 선물값을 받은 것이다. 물론 받는자 보다 주는자가 더 복이 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내게 생일 선물을 보내신 분들이 생일 선물을 받은 나보다 더 복이 있는 분들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은 셈이 되었다. 나에게 도우라고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중국 유학생을 내생일 선물 값으로 도와 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비싼 케이크를 자르고 고급레스토랑에서 생일을 축하한 대신 한 유학생의 한달 하숙비 그러니까 한달 식량을 해결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이번 생일에는 분위기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젊은 시절 즐겨 먹었던 스테이크를 자르고 싶었었다. 왜냐하면 생일이니 그만한 호사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바꾸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채선당에서 샤브샤브를 먹으며 조촐하고 따뜻한 식사를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아주 기분 좋은 생일이 되었다. 글을 쓰는 내 귓가에 아름다운 바이얼린의 선율이 흐른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이다. 그래 시월은 정말 아름답구나.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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