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칼럼] 아기를 먼저 낳아야, 결혼식을 시켜주겠다

“아 글씨 야가 아기를 안 가진다요, 좀 물어봐 주소,”

신안군의 한베가정의 여성집을 방문했을 때, 한 시어머니의 하소연이다. 이 집에 시집간 신부의 이름은 Q,. 안테나의 반경이 넓어 누가 무얼 필요로 하는지 금방 알아차리고 채워주는 배려심 넘버원에, 싹싹하면서도 순종적인 여성이었다. 그래서 누가 데려가는지 참 복도 많다고 생각했기에 우리 센터를 거쳐 가는 수많은 신부들 중에 내 가슴에 남아있는 몇 명 안 되는 신부였다.

“Q어이, 왜 임신을 안 하려고 하니?” 라고 묻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결혼식을 아직 안했어요. 결혼식을 한 다음에 아기를 가지고 싶어요.” 라고 한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시아버지가 호통을 친다. “먼저, 임신을 해, 그러면 결혼식 시켜 줄께.”

내 속에서 부화가 솟아난다. “아니, 아버님, 이 며느리가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겁니까? 정당한 요구에요. 결혼을 했으니 결혼식을 시켜 달라는 건데, 아기를 먼저 낳아야 결혼식을 해준다니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결혼을 하는 경우, 일단 두 남녀가 서로 눈에 맞으면 그 자리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다. 하객은 없다. 그리고 합방을 하고 베트남에서 혼인신고를 한다. 그러나 이건 결혼식이 아니다. 진짜 결혼식은 신부네 마을에 들어가서 천막치고 동네방네 사람들 다 불러서 하루 종일 음악 틀어놓고 음식접대하며 하객을 맞이해야 이것이 진짜 결혼식이다. 대부분의 신부들은 이 결혼식을 하고 오는데 이 부부는 결혼정보회사에서 짜여진 각본에 의한 혼인 신고용 결혼식만 하고 온 것이다.

“왜 결혼식을 안 하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 돈이 워디 있간디, 한 500만원 든다며?”
시아버지의 대답이다. 결국 돈이었다. 500만원들이고 결혼식까지 했는데 자식을 못 낳으면 어떡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먼저 아기를 낳으라는 것이다. 이조시대의 ‘씨받이’ 가 떠올랐다. 이건 현대판 ‘씨받이’ 가 아닌가? 시아버지는 완고했다. “그래? 그럼 아기 안 놓아도 좋다. 나도 결혼식 안 시켜 줄란다.” 라며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서 큰 소리를 친다.

“결혼식을 시켜 달라고 하는 것은, 잘 살아보겠다는 것 아닙니까? 온 동네에 자신이 결혼했다는 것을 선포하고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것인데, 왜 안 해준다는 것입니까?” 라고 하자, “난 그래도 못 믿어요. 하여튼 아기부터 낳아야 결혼식 시켜 줍니다.” 라고 단호하게 자른다.

씁쓸한 발걸음을 옮기며, 그 집 아들에게 귓속말로 단호하게 말했다. “부모 이기는 자식 없으니 당신이 책임지고 결혼식 올리시요” 나는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Q의 울먹임이 나의 가슴을 때리고 있다.

 

김보라 선교사(호프선교회)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편집국

시니어 타임즈 US는 미주 한인 최초 온라인 시니어 전문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