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명절 증후군, 추석과 흔들의자

올추석 보름달은 유난히 밝고 둥글다. 우리가 높은층 아파트에 살아서 하늘과 가까워 추석보름달이 더욱 잘 보여서일까. 높은 가을하늘에 둥실 떠 있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수없이 지내왔던 추석을 추억해 본다.

명절 맞을 준비를 하면서 안방 베란다에 흔들의자를 내다 놓았다. 남편 서재에 있던 흔들의자이다. 명절에 가족들이 오니 서재를 침실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베란다에 흔들의자 하나를 내다 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휴식공간이 되었다.

지인의 전화를 받을 때도 베란다는 조용한 공간이라 좋았다. 확장형인 우리집에는 유일한 베란다가 안방에 달린 베란다이다. 그곳에 의자 하나 놓으니 이렇게 멋진 휴식공간이 되다니… 하긴 나만 이곳을 이렇게 잘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남편도 집안에서 어디론가 없어져서 찾아보면 이곳 안방 베란다 흔들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하거나 창문을 조금열어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잠을 자고 있다. “이곳 생각보다 좋은 공간이 되네…”라고 중얼 거리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우리집에 이번 추석에도 멀리 해외에 사는 시누이가 찾아 왔다. 시누이의 자녀들인 조카와 조카사위도 왔다. 조용하던 집안이 북적대었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는 좀 적응이 안되시는듯 불안한 정서적 반응을 보이신다.

그래도 가끔 기억이 돌아오시는듯 딸과 외손자를 알아보시는것 같다. 부모님은 자녀들의 구심점이다. 해외에 나가 살고 있던 자녀이든 국내에서 살고 있는 자녀이든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자녀들은 부모님을 보러 온다.

하지만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면 구심점이 없어진다. 나의 친정만 해도 여러 형제가 추석이나 구정에는 꼭 친정아버지가 계시는 청주로 모였었다. 집이 좁고 불편해도 아버지 때문에 자녀들이 사방에서 다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소천 하시고 나니 명절의 구심점이 없어졌다. 물론 아버지집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구심점이 되어 주었던 부모님이 안계시니 형제들이 굳이 모이지를 않는 것이다.

형제들도 이젠 나이 들어서 며느리 사위 보고 손주를 보면서 각자의 집안의 구심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집엔 92세 되신 어머니가 살아 계시니 형제들과 손주들이 찾아 온다. 때문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나는 바빠진다.

어찌됐든 찾아온 형제들도 조카들도 손님이니 음식을 대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추석이면 녹두 빈대떡을 백장씩 부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절 음식을 이것 저것 만들고 일을 하다보니 피곤하다.

한 이틀 손님을 치르고 추석날이 지난 이튿날 나는 입에 혓바늘이 돋고 혀끝이 곪았는지 아파왔다. 좀 과하게 일을 해서 내 체력이 저하되고 면역력이 떨어진 모양이다. 맏며느리인 나는 명절 음식은 늘 내가 했었다.

물론 해외에서 선교사로 살았던 기간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아무튼 여러 형제가 있다면 명절을 쇠는 것도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어떤 집에서는 명절날 모일때 각자 음식을 한 두가지씩 해 가지고 와서 함께 차려서 먹는 집도 있다.

또 내친구는 맏며느리였지만 명절날이나 부모님 생신을 형제들집을 돌아가면서 한다고 하였다. 두번의 명절과 부모님 생신에 형제들이 한번씩 모이기 때문에 한 해에 거의 모든 형제들의 집을 한번씩은 가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식을 차리는 비용은 형제들이 거두어서 모이는 집에 주어 경제적 부담은 덜어 준다는 것이다. 형제라도 서로 오고가지 않는 집이 많은 요즘인데 참 지혜로운 발상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생신이라면 모이는 자녀 집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생신상을 차려 드린다는 것이다.

집집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얼마든지 지혜롭게 가족 모임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동안은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맏며느리인 내가 모시는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모셔왔다. 물론 경제적인 부담도 다 내가 감당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의 형제들이 4남매나 되니 어머니를 모시는데 필요한 비용도 함께 내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공궤하는 비용은 우선 순위에 두어야만 할 수 있다. 쓸거 다 쓰고 남으면 하려고 한다면 하기 어렵다.

마치 기독교인들의 십일조 생활과 같다. 먼저 수입의 십일조를 떼어 놓고서 나머지를 가지고 지출계획을 세우듯이 부모님을 공궤하는 비용도 정한 금액을 먼저 떼어 놓아야 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살아왔기때문에 잘 안다.

자신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않는 자녀들은 잘 모른다. 특별히 부모님에게 관심을 가지는 자녀가 아니라면 말이다. 부모님이 만약 틀니를 끼신다면 틀니를 잃어버리거나 했을때 새 틀니를 얼마를 주고 해 드려야 하는지…

또 부모님이 넘어지시거나 부딪히면 엑스레이를 찍고 씨티를 찍고 치료하는 병원비가 얼마나 들어 가는지, 만약 부모님이 치매환자라서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기저귀값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등등…

이번 추석에 우리집을 방문한 형제들중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치매환자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도 만만한 일이 절대 아닌데 경제적인 부담까지 지고 살게된다면 아무리 맏며느리라고 하더래도 기쁨으로 그일을 할 수는 없다.

어머니가 배아파서 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과 그의 형제들인데 왜 내가 병든 시어머니 수발에 그 비용까지 다 떠맡고 힘겨워 하는 것인지… 내가 아무 말없이 십여년을 감당 해오니 형제들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표현하지 못한 내 책임이다.

추석음식 준비에 그동안 어머니 병 수발에 내가 지쳐서일까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에 일엽편주가 고요히 떠가는 평안한 호수가의 풍경이 아니다. 내안 어디에선가 “나도 힘들어!! 나도 지칠줄 알아!!나는 철의여인이 아니야!!”라고 외쳐 댄다.

실제로 내 몸도 이제 이곳 저곳 아프다. 왼쪽 무릅은 벌써 오래전부터 아프지만 병원에 갈 생각도 않하고 있다. 팔을 너무 썼는지 오른쪽 어깨가 계속 뻐근해 오면 근육을 풀어주는 크림만 애꿎게 발라 주고 있다.

작은 베란다에 내 놓은 흔들의자에 앉아서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내 인생의 시간표를 가늠해 본다. 앞으로 내 생애에 얼마나 더 명절을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젠 물불 안가리고 무섭게 일하던 시절은 지났다는것을 스스로 시인해야 한다.

지혜를 모아 내년 명절엔 ‘명절증후군’ 없는 명절을 맞이할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사시는 동안은 형제들이 부모님을 모시는 비용에 함께 동참해 주어서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인 내가 기쁨으로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시 143:7)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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