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가장 잘한 결정

그날 아침도 나는 변함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노란색의 주간보호센터 차량이 벌써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늘 그렇듯이 이미 차량에 타고 있던 몇 분의 노인들을 향하여 인사를 했다. “어르신들 안녕 하세요!” 그리고 이제 어머니를 차에 태워 드리면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마음이 착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주간 보호센터에 보내드려야 하나 아니면 보내 드리지 말아야 하나 엄청난 고민이 짧은 순간이지만 내 가슴속으로 밀려 들었다.

“아니 이미 다 이야기가 끝난 것인데… 왜 고민하고 그래” 내 마음 한켠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전부터 고민하면서 결정을 내린 일이었다. 오늘 어머니를 주간보호센터에 보내 드리기로 한 것 말이다.

남편 K선교사도 물론 그날은 어머니를 주간 보호센터에 보내야 한다고 하였고 다른 가족들 의견도 같았다. 그날은 다름 아닌 우리가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지은나교회 입당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입당감사예배에 당연히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지 웬 고민이냐고 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정을 안다면 내가 왜 그런 고민을 하게 되었는지 여러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다.

우리 어머니는 벌써 6년째 알츠하이머병 이라고 부르는 치매를 앓고 있다. 그런데 치매가 좋아지는 법은 별로 없다. 치매진행을 더디게 하는 약을 써도 치매는 점점 진행이 될 뿐이다.

최근에 어머니는 더욱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붙어 있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그런데 입당 감사예배를 드리는 그날 내가 어머니 옆에만 붙어 있을 수가 없었다.

대구에서 내 딸도 올라 왔지만 아직 아기인 제딸 로아를 돌보기도 버거운 형편이었다. 그러니 천상 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에 보내 드려서 그곳에서 돌보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최근에 벌써 두 번씩이나 어머니는 사람이 옆에 붙어서 지키지 않으면 사고를 내셨다. 교회에서 화장실이 아닌 엉뚱한 곳에 들어가서 소변을 보았기 때문에 매우 곤란했던 일이 근자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 내가 어머니로 인해 마음이 안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 어떻게 하나… 내 깊은 내면에서는 한참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감사하고도 기쁜 날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입당감사예배를 드려야 당연한 거야 하는 마음이 더 강했지만, 혹시라도 후에 벌어질지도 모를 부정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또 자신이 없어졌다.

손님들이 있는데 어머니가 실수라도 하시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될 경우 남편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의 내게 쏟아질 비난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갈 요양보호사는 내가 고민하는 이야기를 듣더니 “저희가 주간 보호센터에 모시고 가서 잘 돌보아 드릴께요. 그게 어머니도 목사님도 편하실 거예요.” 한다.

그렇게 내가 마음속 씨름을 하고 있는 가운데 요양보호사는 어머니를 벌써 주간보호센터 차량에 앉혀 드렸다. 이제 안전벨트만 매면 차는 붕~ 하고 출발할 직전의 순간이 되었다.

나는 계속 번민이 되었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어머니를 주간 보호센터에 그냥 보내 드려야 하나… 보내 드리지 말고 오늘 있을 지은나교회 입당예배에 참석케 해 드려야 하나… 참으로 결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최후 결정을 내가 하지 않고 어머니께 맡기기로 하였다. 이미 주간보호센터 차량의 좌석에 앉은 어머니께 나는 여쭈어 보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빨리 결정을 해야만 주간보호 센터 차량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오늘 우리 지은나교회 입당예배라 사람들이 많이 오거든요. 어머니 교회가서 입당예배 참석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그냥 편하게 센터에 다녀오고 싶으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날듯하며 ‘나 교회 갈래!’라고 대답하신다. 그래, 이제 더 이상 갈등할 필요가 없어. 어찌 되었든 어머니를 오늘은 주간 보호센터에 보내 드리지 말고 입당예배에 모시고 가는거야. 내가 가족들의 비난을 감수하자.

나는 주간보호센터 요양 보호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미리 결정하고 알려 드렸으면 차량이 안 와도 되는건데…” 그러나 요양 보호사는 “아니 괜찮습니다.” 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살짝 염려가 되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아마 이 결정은 두고두고 결코 후회하지 않는 잘한 결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집으로 들어오자 남편도 놀라는 눈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도 내심으로는 어머니가 입당예배에 참석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인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주간 보호센터에 보내 드리라고는 했지만 말이다.

입당감사예배를 드리는 동안 나는 어머니를 맨 뒷좌석에 앉혀 드렸다. 혹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신속히 조처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꽤 길었던 예배를 끝까지 잘 참석하셨다.

점심도 사람들과 어울려 잘 드셨고 교회로 다시 와서 갖은 즐거운 모임에도 참석하셨다. 특히 ‘예수이야기꾼’ C목사님의 성경구연 이야기를 들으실 때 어머니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즐거워하셨다.

성경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기도 하시고 깜박이기도 하신다. 그리고 놀랐다는 듯이 입을 벌리기도 하신다. 또 옆에 앉은 여 목사님에게 얼굴을 돌려 웃으며 동의를 구하신다. 성경 이야기에 빠져 들으신 것이다.

어머니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기뻤다. 어머니를 오늘 입당예배에 참석하도록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구나. 근래에 보기 드물게 어머니가 저렇게도 기뻐하시는걸 보니 나도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 K선교사가 모임이 끝나고 나에게 사례를 했다. “여보, 정말 고마워 어머니를 오늘 입당예배 참석하도록 해 주어서.. 참 잘했어요.”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나보다 어머니를 얼마나 더 사랑 하시는지를 생각했다.

사실 전날에도 나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렸었다. 입당예배에 손님들이 많이 온다는 것과 내가 어머니와 옆에서 함께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설명 드렸다. 그래서 주간보호센터에 가셔서 편하게 있다 오시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하고 묻는 나에게 어제는 담담히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라고 대답을 하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입당예배 당일 아침 어머니는 교회에 가고 싶다고 하신 것이다.

바로 어머니의 영적 갈구는 교회에 가고 싶은 것 이었던 것이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손님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우리 부부는 이야기 도중에 어머니 이야기도 나누었다.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음… 어머니가 천국에 확실히 가시겠네…. ” 라고… 내가 마음속으로 남편의 뒷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교회에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시니 말이지.”

집을 향하여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문득 아파트 정원 길옆의 분홍, 하양, 다홍색으로 활짝 피어 있는 철쭉과 영산홍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그 봄꽃들이 더 생동감 있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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